한의학은 고령친화적(age-friendly)인가?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큰 외삼촌께서 뇌교경색(pontine infarction)으로 목포 H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을 접한 건 2월 중순이었다. 우측 상하지 운동마비도, 삼킴장애도 다행히 경미한 상태. 2남4녀로 구성된 외삼촌의 자제분들(나에게는 외사촌 언니오빠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현재 입원 중인 목포 H병원의 담당 주치의의 전언을 내게 공유해주었다. 그 의사는 “급성기는 잘 넘기셨지만 고령이고 부정맥이 있으니 바로 귀가하지 마시고 재활 혹은 요양병원으로 옮기셔서 1∼2주 요양하신 후 퇴원하시라”, “재활로는 옮기되 한방병원으로는 가지 마시라. 심장 안 좋으신 어르신, 한방으로 갔다가 한약이나 침치료라도 하는 날에는 어떻게 악화될 지 나는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족분들은 기력도 회복하셔야 하고 나의 추천이라면 그 길이 최선일 게 분명하니 뭐든 의견을 달라고 하였다. “거의 모든 한방병원은 협진 담당으로 내과나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의사들이 1∼2명 근무 중이니 심장 걱정은 접어 두시고 급성기 잘 보내셨고 증상 경미하시니 한방병원으로 옮기셔도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다.
동료 교수로서의 인연이 있었던 동신대학교 목포한방병원 김 병원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10년도 더 된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어색함 1도 없이 흔쾌히 그리고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신다. 입원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듣고 바로 언니, 오빠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한까 목포지부 운영회장을 맡아도 무리가 없어 보이는 한의학에 대한 반감이 기준치를 한참 초과해 계신 목포 H병원의 의느님을 뒤로 하고 신속하게 퇴원 수속이 진행되었다. 그 다음날 밤이었을까? 간병을 전담하고 있는 사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나라 고령인구, 2035년 30% 상회 전망
“미숙아. 여긴 호텔이다야!! 목포 H병원 다인실은 비위 약한 사람들은 5분 아니 1분도 있기 어려울 정도로 더러웠거든. 환자들에 보호자들 거기에 간병인들까지 뒤섞여서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정말 힘들었어. 아부지 간병하는 거니까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었는데 며칠간 진짜 밥맛이 떨어져서 식사를 못 했더니 3kg나 빠졌다니까!! 강제로 다이어트했지 뭐. 여기 오시니까 울 아부지, 하루만에 기침도 덜 하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재활치료실도 왔다갔다 잘 걸으시고, 환경이 좋아서 그런가? 선생님들이 잘 해 주셔서 그런가? 암튼 상태가 한꺼번에 다 좋아지셨어. 나도 허리치료 같이 받으려고 한다. 너무 고맙다. 잠깐만, 삼촌이 너 목소리 듣고 싶다고 하신다야.”
“인자 살살 걸을만 항께 살것다잉, 당장 집에 가서 염전도 봐야 쓴디 느그 언니들이 요로코롬 못 가게 잡고 난리다야. 시금치도 궁금하고 말이여. 밥을 급히 넘길랑께 기침이 자꼬 날라캐싸야. 인자 싸목싸목 묵을라고 맘 묵었응께 괜찮겄제잉? 당장 퇴원을 해야쓴디잉. 병원에 갇혀 있응께 깝깝시러 죽겄다. 그거 말고는 다 괜찮응께 걱정말고잉. 엄니 아부지한테 나 괜찮다고 안부 전해라잉”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외삼촌의 목소리는 37년생 어르신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쩌렁쩌렁 짱짱 그 자체였다. 역시 백세를 넘기신 어르신들이 다수인 장수 집안의 장남답게 외삼촌은 구순 가까이에 뇌경색을 겪으시고도 “고깟 중풍? 감기처럼 이겨내브렀다” 금세 툴툴 털어내시고 염전으로 시금치밭으로 마실을 댕기실 게 분명하다. 다행이다. 과정은 위태위태했지만 결과는 늘 그러하듯이 해피엔딩일 것이다.
내국인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2020년 16.1%에서 2025년 20%를 넘고, 2035년에는 3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데, 한국은 2025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2040년(75년생들이 65세)엔 3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셈이다(‘2020∼2040 인구전망’ 발표 : 통계청 자료). 초고령사회의 풍경은 풍경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보다는 사태라는 자못 심각한 단어로도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의 비극일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경고를 서슴치 않는 국내외 인구학자들이 꽤 많다.
한의학이 고령친화적이라는 추정 근거는?
한의학이야말로 고령친화적일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이러한 추정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도 아니라면 근거 없는 막연한 기대일까? 당신 집 드나들 듯 동네 한의원을 습관적으로 다녀가시는 어르신들의 행렬을 보며 떠올린 관습적인 추정에 불과한 것이었나? 뇌경색 급성기 치료가 종료된 그래서 추가적 재활이 필요한 86세 어르신 환자에게 한방병원은 가지 말라며 안티한의학적인 본인만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한 목포의 그 의사를 떠올리며 “한의학은 과연 고령친화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려 본다. 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선생의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와 일본 노인정신의학 전문의 와다 히데키 선생의 『80세의 벽』 두 권을 번갈아 읽으면 답이 좀 보이려나?
두 의사 모두 지나치게 전문화, 세분화된 현대의학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드러난 현상 자체에만 주목한 나머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신체 문제를 정신적이지 않은 영역으로 판단해 진료 범위에서 제외하고, 내과에서는 검사상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바로 신경성으로 분류해서 대응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증상을 치료해도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지 않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몸은 더 아프고 다니는 병원과 복용하는 약과 건기식의 개수만 한없이 늘어난 채로 고령-초고령 노인에 진입하게 된다. 늙으면 아픈 게 당연하므로 여기저기 아픈 데는 모조리 찾아 다니며 기어이 검사를 해 내고 치료가 되는지 안 되는지 아무튼 손에 들려 준 한 보따리의 약을 다 먹다보면 성큼 죽을 날이 방 안에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 대부분의 노인들의 마지막 모습인 것이다.
정 교수는 미국병원협회와 미국노인병학회에서 제시한 “4M: What matters(삶의 목표), Mobility(이동성), Mentation(마음건강), Medical issues(건강과 질병)”을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하며 4개 각각의 항목에서의 “내재역량” 즉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만이 노화의 속도를 줄이는 핵심이라 주장하고 있다. 삶의 내재역량을 높이지 않고 병원만 다니고 약만 먹는다면 노화에 가속도가 붙은 채 몸도 마음도 아프기만 한 노인이 되는 일만 남아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를 예방하는 실천 방법은 특별할 것 1도 없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런 뻔한 지침도 서울아산병원의 교수님이 언급하시니 무슨 대단한 법칙처럼 읽히겠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실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지나치게 전문화·세분화된 현대의학 문제점 지적
올바른 자세습관과 운동습관 기르기, 마음 챙김과 몰입(몰입근육, 몰입환경) 그리고 건강한 수면 챙기기, 식습관과 술담배 조절하기 등이다. 습관의 관성을 이겨내고 내재역량을 기르고 이 역량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추가적으로 많은 항노화요법들은 거짓된 신화이니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맹신하거나 추종하지 말라고 덧붙이고 있다.
기력 없고 집중력이 떨어져 건망증이 심한 한 노년기의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병원에서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후 뇌영양제 처방을 받아서 뇌영양제를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상하게 식욕은 더 떨어지고 신경마저 바짝 곤두섰다면, 이번에는 며칠 후 배가 아파서 병원에 다시 들러서 소화제를 추가로 처방받았지만 몇 주 복용하고 나니 변비만 더 심해졌다고 호소한다면? 기본 검사와 뇌 정밀검사 상에는 여전히 이상이 없다면? 위와 같은 환자가 한의사들 앞에 놓여진다면 어떤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진단과 치료는 고령친화적이며 의사들의 기존 치료보다도 접근성이나 효과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될 수 있을까?
『80세의 벽』의 저자 역시 비슷한 케이스를 예로 들고 있다. “순환기 내과에서는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라고 말하고 약을 준다. 수치가 떨어지면 면역 기능이 저하된다. 암의 진행이 빨라지거나 감염증 노출이 쉽다. 결국 혈관계 사망은 줄어도 암이나 폐렴 사망자가 늘어난다. 하나의 장기를 치료하더라도 다른 쪽에 문제가 생긴다. 치료한 장기는 좋아졌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건강이 나빠 지는 모순된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노년기의 환자들을 정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관리하면서 개별 장기를 정밀 진단해서 특정 장기만을 위한 처방과 치료는 불가능했더라도 진료를 받기 전보다는 뭔지 모를 다양한 증상들이 전체적으로 좋아졌다는 어르신들의 반응을 자주 접하는 의료인들이 바로 한의사들일 것이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은 개별적이더라도 변증이든 체질이든 전체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가며 제반 증상들의 점진적인 개선과 경과 관찰을 하는 것이 임상 한의학의 목표라면 여러 약제간의 충돌로 인하여 약의 개수를 줄여가면서 다양한 증상을 비약물적 방법으로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의학은 고령-초고령 환자들에게 적합한 의학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와다 히데키는 본인이 30여년 넘게 노인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진료를 하였음에도 의사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의사도 가려 만나라고 말한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상태가 나빠졌는데도 의사가 “좋은 약이니까 그냥 먹어라”, “약 끊고 죽고 싶냐”라고 말한다면 그 병원은 가지 말고, 진료받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게 하거나 심리적으로 피로감이 들게 하는 의사라면 궁합이 맞지 않는 곳이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충고한다. 특히 80세 이후 건강검진은 의미가 없으니 수치는 수치일 뿐, 개인마다 다르고 노년기의 정상-비정상의 경계는 건강-비건강의 경계가 아니며 의학은 불완전하니 본인 소신대로 살아가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전체적인 시각서 질병에 접근하는 ‘한의학’
정기, 비정기 검진에 목을 매고 먹는 약 가짓수를 세는 것을 소일거리 삼으며 달력을 새로 넘기면 병원 가는 날짜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가장 먼저 표시하고 약 복용을 한 번이라도 놓치면 불안에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어제 그 약을 안 먹어서 그렇다고 약을 제 때 챙겨주지 않은 가족들을 비난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실 흔한 어르신 한 분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80의 벽을 넘기셨는데도 바깥 외출이 자유로우시다면 그 자체로 그 어르신은 건강함의 상징이다. 더 이상 검진을, 병원 방문을, 약먹기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도 여생의 안녕에도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와다 히데키는 주장한다.
최근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에서 개발된 듀피젠트(성분명 두필루맙)라는 주사치료의 놀라운 치료효과와 효과 만큼이나 비싼 비용이 함께 보도된 적이 있었다(“바로 냄새가.. 너무 좋아” 주사 한 방에 70만원, 2023년 2월13일, SBS뉴스). 1회 주사비용이 70만원인 이 주사제는 중증 아토피 피부염, 제2형 염증성 천식, 만 18세 이상 비용종을 동반한 성인 만성 부비동염의 치료제로 자리매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급여 적정성을 지속적으로 심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하니 회당 주사제의 가격은 대폭 낮아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물론 1개월에 1∼2회씩 지속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급여화가 되어도 그 효과가 탁월하더라도 평생 맞아야 하는 주사라면 환자들의 입장은 또한 제각각이겠지만 기존의 약물, 수술에 별 호전이 없었다가 주사 한 번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고 아토피로 인한 그 끔찍한 증상들이 완화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비용면 빼고는 환호와 감탄 뿐이라고 한다.
아토피, 천식, 부비동염은 폐를 다스려야 한다며 00탕만이 살 길이라는 버스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70만원짜리 주사 한 방이 현대의학에서 난치로 분류된 많은 질환들에 한의원으로 가볼까 하는 틈새적 시도 즉 대안으로서의 한의학을 향한 발길마저 뚝 끊기게 만들어버린 느낌이다. 드라마틱한 주사 한 방은 위에서 언급된 듀피젠트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성 난치 알러지성 질환들을 보다 간편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주사제들의 출시가 줄줄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폐를 다스리고 근본을 치료해야 뿌리를 뽑는다(本治)는 한의학적 접근법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까? 아니, 이미 그 유효함을 다한 것은 아닐까?
국회의 또 다른 한의진료실(의원회관)에서 근무하시는 친애하는 나의 동지 이 원장님이 몇 주 전에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을 읽어 보았냐며 안부를 물어온다. 소설은 내가 애정하는 장르가 아니라 아직 못 읽어보았다고 답을 하니 어느 평일 직접 주문한 책을 가슴에 품고 내 진료실 앞까지 친히 와 주셨다.
“전기고문으로 아버지의 정자는 활동성을 잃었고, 병원에서는 임신 불가 판정을 내렸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장터 주막에서 지리산에서 죽은 동지의 형을 만났다. 그는 한의사였다.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토로했더니 한의사가 약 한 제를 지어주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 약을 먹고 내가 태어났다. 그날 이후 최씨 성을 가진 그 한의사는 우 리 집안의 명의로 등극했다. 어쩌면 진짜 명의였을지도 모른다. 삼 년 넘게 나를 괴롭힌 생리통을 약 한제로 멈춘 것도 그였다.”
1990년 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이후 33년만에 나온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 작가는 이 소설 역시 아버지의 장례식을 모티브로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설에 짧게 등장하는 약 한 제로 임신을 성공시키고 생리통을 멎게 하신 한의사는 실존 인물일 수도 가공의 인물일 수도 있다. 한약 한 제로 이런저런 증상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대목을 읽을 때, 가슴이 뛰는 이유는 한의사라면 이런 기가 막힌 치험례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의학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기적같은 치험례를 안겨준 의사였느냐?!”(안도현님의 『너에게 묻는다』 시를 개사함) 기적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 불리우는 것이겠지만 무탈한 일상을 기적이라 여기며 나는 오늘도 치료실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