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원 원장
대구광역시 비엠한방내과한의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방내과(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이제원 원장으로부터 한의사가 전공하는 내과학에 대해 들어본다. 이 원장은 한의학이 질환의 내면을 탐구하고 생명 활동의 조화를 돕는 데 탁월하다면서,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물 의존을 줄이고 환자의 근본적인 건강 회복을 이끄는 일차의료 주치의로서의 생생한 임상 기록을 공유해 나갈 예정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리로이 후드(Leroy Hood)는 시스템 생물학을 기반으로 '4P 의학’을 제시했다. 이는 질병이 발생한 후 증상을 치료하는 기존의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의료에서 벗어나, 질병을 예측(Predictive)하고, 선제적으로 예방(Preventive)하며, 환자 개인의 특성에 맞추고(Personalized), 환자가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Participatory)하게 하는 의료로 나아가야 한다는 현대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최근 한 달 동안 밖에서 일하면서 땀을 흠뻑 흘리며 찬물만 다량 들이켰어요. 오늘 퇴근 후 감자떡 2개를 먹었는데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하더니, 스마트워치로 잰 심박수가 180까지 치솟았습니다." 야간 진료 중이던 진료실로 60대 남성 환자가 다급히 내원했다.
환자는 심방세동으로 시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발하여 시술을 권유받았던 병력이 있었다. 그 후 본원에 내원하여 한의학적 치료와 식습관 교정 등 포괄적 개입을 통해 체중을 15kg 감량하고 1년 넘도록 심방세동 관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분이었다. 환자가 사용 중인 약물은 플레카이니드, 카르베딜롤, 아픽사반, 피마사르탄, 아토르바스타틴이었다.
내원 전 스마트워치에서 분당 최대 180회까지 측정되었던 심박수는 내원 당시 심전도에서 분당 133회의 동성 빈맥으로 확인됐다(그림 1A). 감자떡 섭취와 증상 발생 사이에 시간적 연관성은 있었지만, 최근의 심한 발한과 수분·전해질 섭취 양상을 함께 고려하여 추가 검사를 통한 원인 평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환자는 가슴 답답함이 처음보다 덜해졌다며 응급실로 전원은 원하지 않았다. 밤 중에 증상이 재발하면 즉시 응급실로 가실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炙甘草湯을 처방하면서 4시간에 한 번씩 유선으로 직접 혈압과 맥박수, 자각 증상 여부를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그림 1. 플레카이니드(Flecainide) 관련 약물 유발성 부정맥(Proarrhythmia)의 발생 및 경과
(A) 내원 1일 차: 분당 130회 이상의 동성 빈맥(Sinus Tachycardia).
(B) 내원 3일 차: 심방조동(Atrial Flutter)으로 전환되면서 심실조기수축(PVC)이 동반됨. 플레카이니드 관련 약물 유발성 부정맥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불안정한 심장 리듬이 관찰됨.

그림 2. 항부정맥제 중단 및 포괄적 한의 개입 후 동율동 회복 및 유지 소견
(A) 내원 11일 차: 분당 60~70회 수준의 정상 동율동(Normal Sinus Rhythm, NSR) 회복.
(B) 내원 18일 차: 분당 58회의 안정적인 동성 서맥(Sinus Bradycardia) 소견. 플레카이니드(Flecainide) 중단 후 안정적인 동율동이 유지되는 모습.
다음 날, 자각 증상은 없었지만 심박수는 분당 130 ~ 150회 수준으로 빈맥이 지속됐다. 최근 한 달 동안 과도한 땀 흘림 이후 염분 없이 물만 마신 점을 고려, 플레카이니드의 체내 축적 및 이에 따른 약물 유발성 부정맥 가능성을 먼저 의심하고 플레카이니드 복용을 일단 중단하도록 권고했다. 그리고 상태의 위중함을 설명하기 위해 본원에 다시 내원하시도록 했다. 내원 3일 차에 시행한 심전도에서 심방조동(Atrial Flutter)과 함께 심실조기수축(PVC)이 동반(그림 1B)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응급실로 전원을 위해 진료의뢰서를 발급하며 환자 및 그 배우자와 응급실 내원의 이득과 위험에 대해 논의했다. 환자와 배우자는 반복적인 시술과 약물치료 중심의 대학병원 치료 과정에서 자신의 생활 습관과 전신 상태까지 함께 고려한 관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껴 응급실 가기를 극구 거부했다.
“응급실에 가봤자 검사만 잔뜩 하고 결국에는 시술해야 하거나 아니면 약만 늘어날 것이 뻔합니다. 더 이상의 시술도, 약이 늘어나는 것도 싫습니다. 지금 증상이 없으니, 원장님께서 조금 더 살펴주세요."
내과의사로서 '전원과 원내 케어 사이'에서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환자가 전원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진정 환자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일단,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단의 근거를 삼기 위해 정맥 채혈을 통한 진단의학적 검사를 시행했다.
Troponin-I 0.040ng/mL, CK-MB 3.80ng/mL로 다행히 심근효소는 정상 범위에 있었다. 하지만 BUN 32mg/dL, Creatinine 1.31mg/dL, K 5.4mmol/L, Cl 110mmol/L 등 이상 소견이 관찰됐다. 최근 심한 발한 이후 충분한 전해질 섭취 없이 수분만 섭취해 왔다는 병력과 BUN/Cr 상승을 고려할 때, 체액량 감소에 따른 신전성 신기능 저하가 동반됐을 가능성을 우선 고려했다. 이 상황에서는 신장 기능 저하에 따라 플레카이니드의 제거가 지연되고 체내 축적될 가능성과, 이에 따른 약물 유발성 부정맥이 가장 우려됐다.
무엇보다 이러한 결과를 확인한 후에도 응급실 평가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에 환자와 배우자에게 응급실 전원의 필요성과 잠재적 위험을 다시 설명하고 전원을 권고했으나 환자는 이를 거부했고, 이에 자각 증상, 혈압, 심박수의 변화를 4시간 단위로 면밀히 추적하면서 악화 시 바로 응급실로 전원하는 조건부 경과관찰을 시행했다. 부정맥 원인 약물인 플레카이니드의 복용은 계속해서 중단할 것을 지시하고, 炙甘草湯에 附子를 더하여 처방했다.
내원 11일 차에는 심박수가 분당 60~70회로 감소하며 정상 동율동을 회복했다(그림 2A). 이후 한약제제를 점차 감량했고, 일주일 후 다시 시행한 심전도에서도 분당 58회의 안정적인 동성서맥 소견을 보였다. 이처럼 플레카이니드 중단과 함께 신기능 및 전신 상태가 회복되면서 부정맥이 소실된 시간적 경과는 플레카이니드 관련 부정맥 유발 가능성을 뒷받침했다(그림 2B). 이후 대학병원 외래 검사에서도 추가적인 항부정맥제 없이 안정적인 정상 동율동이 유지되고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처음 고혈압약 하나로 시작했던 약이 5~6개로 늘었고, 그럼에도 시술받아야 했습니다. 내과 한의원에 와서야 약을 줄일 수 있었네요. 근데 왜 대학병원에서는 약을 줄여주려 하지 않나요?"
환자가 던진 이 질문은 오늘날 보건의료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다. 질병을 인체의 조화와 균형의 문제로 바라보는 한의학적 철학이 현대 과학의 도구 및 객관적 데이터와 결합하면, 4P 의학이 지향하는 '예측, 예방, 맞춤, 참여'의 원칙은 더욱 구체적인 환자 중심적 치료로 구현될 수 있다.
한의사는 과거의 유산에 안주하는 자가 아니라, 현대 과학의 다양한 진단 도구와 객관적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여 인체의 복잡성을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의사이다. 한의사가 도구의 차별 없이 환자의 삶 전반을 조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 보건에 이바지하는 진정한 대안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표 1. 빈맥 발생 당시 환자의 진단의학적 검사 결과
체액량 감소와 신기능 저하를 시사하는 BUN/Cr 상승 및 경도의 고칼륨혈증을 확인하여 플레카이니드(Flecainide)의 체내 축적 및 약물 유발성 부정맥 가능성을 고려함. 심근효소는 정상 범위로, 검사 당시 뚜렷한 심근손상 소견은 확인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