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평 동신대 한의과대학 학과장
[한의신문] 지난 6월 마지막 날, 부산 동구 수정동을 다시 찾았습니다. 부산광역시한의사회(이하 부산시회)에서 준비 중이던 다큐 촬영을 위해 방문한 지 4개월 여 만이었습니다.
2월 방문 때, 잠깐 들렀던 문서고에서 찾았던 자료들로 그 사이 연구가 진행되어 결과물이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부산행도 또 어떠한 자료가 있을까 하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계획 세우기부터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2박3일, 온전히 자료들과 씨름하려니 책 덕후에게는 이보다 좋은 시간이 있을까요.
1950년대 부산은 한의계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국민의료법의 제정과 오인동지회(五人同志會)의 활약, 부산동양의학전문학원(釜山東洋醫學專門學院) 운영과 검정시험의 실시, 한의협의 결성 그보다 앞선 부산시회와 경남도회의 결성까지…. 그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면 현재 한의사의 위상과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만한 큼직한 일들의 연속이었죠.
부산시회는 1950년대 초량동에 첫 보금자리를 한 이래로, 1970년 회관 신축 이전도 있었지만 초기의 자료를 그대로 보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서고는 그 사이 75년 여 시간을 품고 켜켜이 쌓아왔던 셈이죠. 그러기에 부산시회 문서고 조사는 단순히 부산시회의 역사를 알아가는 일일 뿐 아니라 한의사의 뿌리를 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이금희, 전현지 두 명의 학부 연구생과 함께 문서고 서가를 하나씩 열람하면서 정리해 나갔습니다. 감탄을 자아내는 자료도 때로는 잡동사니 같은 자료도 만났지만, 어쩌면 삶의 순간들이 늘 감탄을 빗는 일들만 아니듯, 반복적인 일상의 일들이 쌓여서 다음 전환을 위한 계기를 마련되기도 하는 법이죠.
이전에 부산동전 연구를 진행하면서, 부산동전이 문을 닫으면서 소장하던 장서들을 부산시회에 기증했다는 기록을 보았는데, 이번에 그 실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부산동전 구(舊) 장서는 1930년대, 1940년대 만주,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10종이 조사되었습니다. 해부학 교재도 2종이 있어서 해부학이 한의사들의 주요한 학습 분야였음도 재확인되었습니다. 장서에 남은 부산동전 직인과의 만남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1960년대 이전의 자료들은 특히 의미 있게 봤습니다. 부산시회 회지를 철한 '재건의보', 부산시회 초기 규정집인 '제규정집' 등…. 특히 국민의료법 통과에 관한 경과보고 등 자료에는 1951년 당시의 생생한 흔적들도 남아 있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서울시한의사회가 1962년부터 발행한 회지 '새소식'과 1963년부터 한의협에서 간행한 협회보 합본도 눈에 띄었습니다.
1962년 면허 신고에 의하여 만들어진 '각 년도별 회원 신상 신고서'에서는 초기 한의사들의 친필 서명들도 보였습니다. 면허 4번(1974년 1번으로 갱신)인 이우룡 선생을 비롯한 선배 한의사들이 생생하게 살았던 흔적이었습니다.
또 1950년대부터 부산 동대신동에서 동주한의원을 운영했던 하재관 원장님은 이번 조사에서 인상을 깊게 남긴 분입니다. 그 분은 중국의서인 '백병변증록'을 번역한 '백병변증록요역' 원고를 서가 한 칸 남겼더군요. 원고지 등에 자필로 빼곡히 채워둔 번역 문장들. 그 분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평생을 의서를 번역하면서 씨름했을 노고가 전해져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서고에 목판본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조선후기의 '편주의학입문', '동의보감' , '의종손익' 완질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수집용 도서가 아닌 지부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레 기증되거나 들어왔던 자료들로 문서고가 채워졌던 까닭이겠죠.
부산시회 문서고의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 흘러갈 것입니다. 미래의 어느 연구자는 이번 조사의 흔적도 과거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겠죠. 근대 한의학의 발자취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는 이곳을 찾아 새로운 발굴을 할 수 있겠죠. 문서고 열람 기회를 주시고, 조사기간 동안 환대해 주신 송상화 회장님, 김영호 부회장님 등 여러 부산시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끝으로 조사에 함께한 학부생들의 소감을 덧붙입니다.
☞ 이금희(동신대 한의대 본2)
한의학의 역사가 이어져 온 흐름 속에 학생의 신분으로 함께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특히 '동의보감'과 '편주의학입문'을 비롯한 고서를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세월의 흔적이 남은 종이 위에서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글자들을 통해 기록이 지닌 힘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귀중한 자료들이 앞으로도 잘 보존되기를 바라며,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교수님과 부산시한의사회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전현지(동신대 한의대 본2)
부산시한의사회 문서고를 정리하며, 부산 한의학이 지나온 역사와 그 흔적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어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교수님과 함께 부산동전에서 기증한 고서들을 발견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기록을 보존하고 사료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한의학의 역사를 이어가는 중요한 일임을 느꼈으며, 좋은 기회를 주신 교수님과 부산시한의사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많이 본 뉴스
- 1 한국한의약진흥원 통폐합, 한의약 '육성'인가 '고사'인가?
- 2 한의사의 PDRN약침 사용…“문제 없다”
- 3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
- 4 ‘예방접종관리법안’ 추진…한의사, ‘이상반응 감시체계 주체’로 명시
- 5 우울증 '웃는 표정 감소'…뇌회로 및 후성유전체 연관성 확인
- 6 한의학 전문 AI ‘한의비서’ 서비스 시작
- 7 日 일왕가의 절망 치유한 19세기 漢方醫, 현대 통합의료에 질문을 던지다
- 8 ‘장애인 건강권 1차 계획’…장애인 주치의, 다학제 통합관리 체계로 전환
- 9 “공공의료 개편·통합돌봄 확대 통해 지역의료 강화”
- 10 국무회의 앞둔 ‘8주룰’…“추간판·힘줄 파열도 ‘경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