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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6일 (금)

문화 향기 가득한 한의학 ⑤

문화 향기 가득한 한의학 ⑤

2020 별주부전-간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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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기 원장

- 그린요양병원, 다린탕전원 대표

 


“생의 말을 들으실진대 방문(方文)이나 하여 올리리이다. 상한 병에는 시호탕이요, 음허화동에는 보음익기전이요, 열병에는 승마갈근탕이요, 원기부족 증에는 육미지탕이요, 체증에는 양위탕이요, 각통에는 우슬탕이요, 안질에는 청간명목탕이요, 풍증에는 방풍통성산이라. 천병만약에 대증투제함이 다 당치 아니하옵고, 신효할 것 한 가지가 있사오니 토끼의 생간이라. 그 간을 얻어 더운 김에 진어하시면 즉시 평복되시리 오리다.”

 

왕이 가라사대, “어찌하여 그 간이 좋다 하느냐?” 대답하여 여쭈오되, “토끼란 것은 천지개벽한 후 음양과 오행으로 된 짐승이라. 병을 음양오행의 상극(相剋)으로도 고치고 상생(相生)으로도 고치는 법이라. 토끼 간이 두루 제일 좋은 것 이온데 더구나 대왕은 물 속 용신이시오 토끼는 산 속 영물이라. 산은 양이요 물은 음이올 뿐더러 그 중에 간이라 하는 것은 더욱 목기(木氣)로 된 것 이온즉 만일 대왕이 토끼의 생간을 얻어 쓰시면 음양이 서로 화합함이라. 그러므로 신효하시리라 하옵나이다.”(별주부전 중, 용왕 처방대목)

 

별주부전.jpg

 

어디 간장인들 크면 얼매나 크겄소?


벼룩의 간을 빼먹지! 아니 어의인 잉어선생, 전생에 나와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수? 좋은 처방 줄줄이 잘도 나열하시더구만, 그럼 그 중에 하나 첩약지어 드리면 될 것을, 아니 하필 어디 처방 내신 게 토끼의 생간이라! 참으로 얼척없고 억울하오. 보시오 샌님들, 이내 몸통이 요만하데. 어디 간장인들 크면 얼매나 크겄소? 간이라 해봐야 기름장에 한 입 거리도 못되거늘, 더구나 명성인들 어디 내세울 것이 있소? 저 지리산에서 오신 곰 선생의 웅담에 해당하겠소, 전남 흑산도의 홍어 아씨의 애저에 해당하겠소. 천하에 용왕님이 초야의 무명의 토끼의 간을 욕심내다니. 이 토생원의 체면이 말이 아니잖소. 죽을 뻔했네 그려, 휴~ 아니 그렇소? 옳소! 

구사일생, 용궁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탈출한 토끼, 이내 동물들 사이에 스타가 되었다. 그의 용궁 여행기는 지상의 동물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가 지날 때마다 이웃의 동물들이 그의 도포자락을 잡고 이야기를 청한다. 하여 본격적으로 산골 장터목에 돗자리를 폈다. 

 

자신의 무용담으로 일명 전문 이야기꾼, 전기수로 전업에 성공한 것이다. 구성진 남도 창법으로 엮어낼 때 마다 그의 주위에는 청중들이 모여 들었다. 부잣집에서는 토 생원을 자기 집에 모시려고 하녀들에게 연통을 보내었다. 그가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웃었다 울었다하며 공감하는 바, 추임새와 한탄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것이다. 타고난 입담과 부지런함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왜 하필 이내 간이었소? 


어언 세월은 흘렀다. 잘 나가던 인기도 잠시, 21세기는 산천개벽의 시대다. 왕년의 대 스타 도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청중들은 핸드폰 코박고 현란한 유투브에 몰입되었다. 거기에 코로나란 독감이 유행하더니 모두가 패닉이다. 얼굴을 보지 않는 비대면이니 어디 청중이나 대중 강좌가 가당찮을까?

참으로 인생사 새옹지마로다. 그제는 죽을 지경이었건만 어제는 그리도 화창하더니 오늘 이르러 적막하구나. 이제 원풀이 다했소. 이내 건강이나 챙겨야겠소. 도심 속 숲속 정원으로 유명한 남도의 그린요양병원에 입소하거늘, 오늘 진맥을 청하기에 그와 마주했다.  

가슴이 화끈거리고 답답해오면서 우측 갈비 밑이 묵직한데요, 이 병이 무엇이요? 토 선생이 묻는다. 관형찰색과 맥과 복부의 진찰로 진료를 한 후에 조심스럽게 진료소견을 밝힌다. 증상은 간양상항(肝陽上航)에 의한 화병(火病)으로 사료됩니다. 

아마도 인기의 상실에 따른 스트레스와 누적된 과로가 원인으로 간에 무리가 오는 징조로 보여 집니다. 이왕 이리 입원하셨으니 휴식과 화평으로 간의 안정과 회복이 필요합니다.  

 

간 때문에 죽을 뻔 했다가 간신히 살았건만, 이제는 간에 병이 온다! 허 참으로 기구한 인연이구려. 그 놈의 간 말이요. 그런데 선생님, 하나 물어봅시다. 궁중 어의인 잉어의 처방이 맞기는 하오? 왜 하필 이내 간이었소? 다 재미있자고 지어낸 이야기이지요. 뭐 굳이 변명해 보자면 어의였던 잉어 선배의 판단은 이미 대사에 나와 있고요. 

 

제가 풀어 보건데 용궁이 어떤 곳인가요? 바다 속이거늘, 육지의 귀한 약재와 그 약재를 찾아서 산천을 헤맨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차선의 방법이 토 선생을 모시고 한바탕 한풀이나 해보자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덕분에 인생의 희노애락과 생로병사를 다 겪어 보셨으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토 선생도 고개를 끄덕인다. 창밖에는 한 여름의 녹음만이 더욱 무성하다. 왕년의 대 스타의 앞날에 푸르름 가득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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