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우리나라의 응급의학과 급성기 진료가 현대의학 중심으로 고도화되는 동안 일본의 지역 거점 종합병원 현장에선 △외상 △급성 통증 △발열성 질환 △수술 후 장관 기능 저하 등 세부 영역에서 한방의 역할을 임상적으로 검증하고,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동양의학회(JSOM) 제76회 학술총회가 열린 가운데 13일 도야마 국제회의장에선 ‘급성기 종합진료에서의 한방치료, 효과를 발휘하는 때(急性期総合診療の漢方―効く時と効かない時―)’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외상 환자에서 한방약 사용의 효과(이리에 야스히토 부장·성례 요코하마병원 응급과) △‘그 한 포의 한방약, 효과가 있을까?’-ER·응급병동에서 본 급성기 한방치료의 실제(고부치 다케쓰네 교수·후쿠이대 부속병원 응급부) △응급외래 및 급성기 병동에서의 작약감초탕 활용과 적용 확대(요시나가 료 부장·이즈카병원 동양의학센터 한방진료부) △급성기 소시호탕의 적응증과 효과 증진 전략(가시마 마사유키 부장·구마모토 적십자병원 종합내과)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한방을 양방이 상대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병태를 보완하는 임상 도구로 규정했으며, 응급실과 급성기 병동에서 환자가 마주치는 지속적인 통증·발열·부종 증상에 대한 완화는 회복 속도는 물론 삶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 “외상 후 미세순환장애·혈종 관리…血·水 감별이 핵심”
이리에 야스히토 부장은 응급의학에서 한방의 역할을 “양방의학이 상대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병태를 보완하는 치료”라고 규정하며 한방약의 급성기 활용 기전으로 △항염증 작용 △미세순환장애 개선 △체액 분포 이상 교정을 제시했다.
그는 “외상 후 조직 손상과 미세순환장애 개선 측면에서 현재도 활용 가치가 높다”며 응급실 외상 환자 관리에서의 치타박일방(治打撲一方)을 소개했다. 이는 국소 통증, 종창, 피하출혈, 어혈성 병태를 목표로 하는 대표적 급성기 처방으로, 본인의 응급실에서 연간 274건이 활용됐다.
주요 근거로는 늑골골절 환자 170명 대상 다기관 무작위 비교시험에서 통증 개선 기간이 14일에서 7일로 단축(p<0.001)됐으며, 안면부·둔부 혈종과 광범위 타박상 환자에서 혈종 흡수와 종창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그는 이어 수독(水毒)·기허(氣虛)·소양병(少陽病)의 병태 감별의 중요성과 함께 만성 경막하혈종에 대한 오령산 근거도 제시했다. 오령산은 AQP4(아쿠아포린-4) 관련 기전 연구가 축적되고 있으며, 대규모 데이터베이스 연구와 메타분석에서 재발 위험을 약 28% 감소(OR 0.72)시키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상반응 증가 또한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출혈·어혈이 중심인지, 수분대사 이상이 중심인지 구분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이라며 “결국 치료 성패를 좌우하는 질문은 ‘혈의 문제인가, 수의 문제인가’에 대한 정확한 병태 판단”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이리에 야스히토 부장, 고부치 다케쓰네 교수, 요시나가 료·가시마 마사유키 부장
◎ “진단 전 증상 조절의 무기…응급현장 한방 First Choice”
고부치 다케쓰네 교수는 응급의학과 통합진료에서 한방을 ‘진단 이전 단계의 증상 조절’과 ‘급성기 이후 기능 회복’을 담당하는 임상 도구로 규정했다. 그는 “한방은 만성질환에 국한되지 않고, 발열·권태감·식욕부진·복부증상을 신속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며 응급현장에서 복잡한 변증보다 대표 증상과 대표 처방을 연결하는 ‘First Choice’ 접근을 강조했다.
발열·오한·두통·어깨결림·경부 근육 긴장을 동반한 환자에는 갈근탕, 기침·근육통·관절통이 두드러지는 환자에는 마황탕을 제시하며 “두 처방의 핵심은 발한 유도”라며 이미 땀이 많거나 고령인 환자에서는 신중한 사용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소화기 증상 영역에서 응급실과 병동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처방으로 △육군자탕(기능성 소화불량-위 운동 기능 개선, 식욕 증진) △오령산(만성 경막하혈종 재발 억제) △대건중탕(장운동 촉진 통한 복부팽만·복통 개선, 수술 후 장폐색 예방)을 꼽았다.
변비 치료와 관련해선 “목표는 배변 횟수 증가가 아닌 통증 없는 배변”이라며 △일반 변비에는 대황감초탕·승기탕류 △복부 냉증 장운동 저하에는 대건중탕 △건조성 변비에는 마자인환·윤장탕 △변비형 과민성장증후군(IBS-C)에는 계지가작약탕·계지가작약대황탕·소건중탕 등을 권고했다.
고부치 교수는 “급성기 한방의 본질은 응급실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증상에 대한 실용적 대응”이라며 “초기 감염, 식욕부진, 장운동 저하, 변비 등 CPG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작약감초탕은 시작일 뿐”…병태 따라 확장되는 급성기 수증치료
요시나가 료 부장은 종아리 경련, 열경련, 급성 요통, 복통, 월경통, 담석 산통, 요로결석 산통 등 급성 통증과 경련성 병태에 폭넓게 활용되는 작약감초탕에 주목했다.
응급임상에서 열사병으로 전신 경련이 발생한 44세 남성(BUN 22mg/dL, Cr 2.1mg/dL)에 수액치료와 작약감초탕 5g 투여 후 신속한 근육경련 소실과 Cr은 다음날 0.9mg/dL까지 회복됐다. 열경련 환자 3명도 모두 빠른 증상 개선을 보였으며, 중증 열사병 입원환자 3명에서는 약 15분 만에 경련이 해소됐다.
요로결석 산통 환자를 대상 전향적 관찰연구에선 작약감초탕군(11명)이 NSAIDs군(14명)보다 투여 15분 후 통증 감소폭이 유의하게 컸으며(P<0.05), 뇌간경색 후 난치성 딸꾹질 환자 5명도 복용 1~5일 내 전원 호전되고 재발은 없었다.
난치성 통증 환자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제시됐다. 변형성 경추증·요추증·고관절증을 동반한 50대 여성은 기존 진통제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으나 냉증성 경련성 통증으로 판단해 침 치료와 작감황신부탕을 투여한 뒤 다음날 통증이 현저히 감소했다. 또 간병 스트레스를 동반한 76세 여성과 고도 난청·기관지확장증이 있는 69세 남성에서도 황신부제 계열 처방 전환 후 하지 통증과 전격통이 개선되고 보행 기능이 회복됐다.
그는 “급성기 한방치료의 본질은 환자 병태에 맞춰 처방을 확장하는 데 있다”며 작약감초탕→작약감초부자탕→작약감초부자대황탕→작감황신부탕으로 이어지는 처방 전개를 제시했다.
특히 “한열, 기혈수, 허실을 다시 평가해 다음 처방으로 이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응급실에서 시작된 한방치료가 입원 치료와 퇴원 후 외래 관리까지 연결될 때 한방의 장점이 가장 크게 발휘된다”고 강조했다.

◎ “한열·기혈수·허실 따라 진화…급성기 한방 처방의 확장 알고리즘”
가시마 마사유키 부장은 소시호탕을 단순 해열제가 아닌 ‘지속성 염증과 면역반응 조절을 위한 병태 중심 처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시호탕의 핵심 적응증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바이러스성 발열 △감염 후 염증 상태를 제시했다. 오한과 발열의 반복, 권태감, 식욕저하, 오심, 맥현, 흉협고만, 경부 림프절 종창 등이 중요한 임상 단서라는 설명이다.
실제 증례에서도 소시호탕은 지속성 염증 상태에서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EBV·CMV 감염 의심 24세 여성에선 WBC가 1만1753→8839/mm³, CRP가 5.77→1.20mg/dL로 감소했고, 코로나19·인플루엔자 동시 감염 환자에서는 CRP가 14.59→4.59→1.33mg/dL로 떨어지며 식사량이 회복됐다. 코로나19 후 흉막염 의심 환자와 게실염 환자에서도 발열·통증 개선과 함께 염증수치 감소가 확인됐다.
가시마 부장은 소시호탕의 주요 표적으로 △대식세포·림프구 우세 염증 △감염 후 지속 면역반응 △교감신경계 항진 상태를 제시하며 “체온 자체보다 병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증상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현대의학적 진단과 추적검사는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며 적절한 환자 선별과 병태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태형 국제동양의학회 부사무총장은 응급의학과 급성기 진료 영역에서 한방약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는 JSOM의 시도를 한국 의료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시마 마사유키 부장은 한방이 본래 급성기 질환 치료를 위해 발전해 온 의학 체계인 만큼 뛰어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며 “이 같은 일본 의사들의 인식은 아직 한국 의료계의 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평했다.
이어 고부치 다케쓰네 교수의 발표를 들며 “응급 상황에서 현대의학적 진단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단계라도 환자의 증상 완화와 회복을 위해 한방치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며 “감기 초기, 수술 후 복부 증상, 다양한 소화기 질환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JSOM의 노력은 한국에서도 한·양방 협력 모델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