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이후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이 가시화되는 시기를 우리는 ‘건강수명’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은 2016년 기준 각각 82.1세, 73.2세를 기록했다. 즉, 우리가 죽음을 구체적으로 자각하게 되는 시간은 9년인 셈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삶을 마무리 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그간 부족했던 실정이다. 이에 <한의신문>은 대한한의사협회와 웰다잉시민운동 간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문화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맞아 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문화 정착과 한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 1% 그치지만 전 국민 참여 필요
政도 ‘국민 행복 추구권’ 위해 입법 등 지원 나서야
전인적 치료가 한의학 강점…할 수 있는 역할 한의계가 찾아야
옛 임금 주치의도 한의사…웰다잉 접근 힌트로 삼자
차흥봉 웰다잉시민운동 이사장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이루고자 웰다잉 운동 확산에 나선 차흥봉 웰다잉시민운동 이사장(前 보건복지부 장관·사진). 그는 국민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한의계도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의학은 전인적 치료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만큼, 호스피스·완화의료 분야에서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술을 펼칠 수 있도록 한의계가 노력해야 한다는 시각에서다.
이를 위해 그는 한의계의 연구 활동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줄 정부의 ‘책임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다음은 차흥봉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이사장께서 생각하는 웰다잉이란 무엇인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죽음도 품위 있게 맞이하는 인격적 운동이다. 사람이 사는데 있어 죽음을 품위 있게 맞이한다면 인간으로서 완생(完生)이라 볼 수 있지 않겠나. 그러지 않고 허망하게 죽는다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사람까지도 힘들어진다.
웰다잉을 하게 되면 본인도 좋고, 주변 가족도 좋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좋다. 말 그대로 단순한 다잉이 아닌 ‘좋은 죽음’이다.
우리 조상들도 ‘오복(五福)’의 하나로 ‘고종명(考終命, 하늘이 부여한 천명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함)’을 꼽았다. 서양 문화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의 고유한 가치 중 하나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Q. 웰다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보건복지 분야에서만 50년을 일했다. 교수도 하고, 공무원도 하면서 늘 현장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노인복지, 노년학을 전공했다. 이를 공부하다 보면 노년 생활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연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 자신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웰에이징을 생각하는 연장선상에서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마침 2016년에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에서 통과가 됐다. 그 때 국회를 중심으로 웰다잉 시민운동이 시작됐다. 원혜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5선)을 중심으로 한 웰다잉 운동단체가 만들어졌고, 자연스럽게 나도 참여하게 됐다.
Q. 웰다잉시민운동의 활동 계획은?
그동안 웰다잉 운동을 펼쳐온 단체는 많이 있었다. 다만 뿔뿔이 흩어져 운동을 했다. 이런 단체들을 규합해 하나의 큰 시민운동으로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홍보가 중요하다. 언론, SNS 등을 통해 웰다잉시민운동을 홍보할 것이다. 또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만큼 교육도 중요하다. 초, 중, 고 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는 활동을 많이 전개해 나갈 필요도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웰다잉이라는 내용으로 들어간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대부분은 임종 직전에 이뤄지기 때문에 그 때는 본인이 의식이 없거나 의사표현을 못할 수도 있다.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본인의 의사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게 중요한데, 이 의향서 작성법을 도와주는 일을 할 계획이다. 유언장 쓰기나 유산 기부, 엔딩노트 등 웰다잉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 확산에도 적극 나설 생각이다.
Q. 웰다잉 확산을 위해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인적 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한의약이 가진 특징이다. 말기나 임종 직전에 있는 환자에게는 무엇보다 전인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지점에서 봤을 때 한의계가 말기 환자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분명 웰다잉 국면에서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내가 대만 화련에 있는 중의병원에 간 적이 있다. 중의병원의 규모도 굉장히 컸지만, 무엇보다 호스피스 병동이 컸다. 그때 중의치료를 통해 임종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 한의계도 중의병원을 모델로 삼았으면 좋겠다. 한의학적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정착되도록 물론 정부도 도와줄 책임은 있다. 다만 한의계에서 선결해야 할 문제는 한의의료서비스를 어떻게 과학화해서 적용하느냐가 과제일 것이다. 이건 양의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Q. 웰다잉 문화 정착을 위해 국가가 나설 일은 무엇인가?
국민 개개인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짓도록 국민 행복 추구권 차원에서 돕는 건 국가의 책무다.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든 것도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없애자는 측면에서 제도설계를 했다. 다만 국민들이 연명의료결정을 더욱 촉진하도록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독려해야 한다.
필요하면 입법을 통해서도 도울 수 있다. 하나의 기관을 설립해서 웰다잉 운동을 지원하도록 할 수도 있을 테고, 연구기관을 설립해 연구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또 유산 기부 활성화를 위한 법률제정도 있다. 유산 기부도 웰다잉의 하나다. 유산 기부는 우리나라 상속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니까 상속법을 개정해서 법률적으로 유산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도록 입법이 필요하겠다.
호스피스·완화의료도 그렇다. 호스피스란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얼마 안 된다. 법률도 최근에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전국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 기관이 부족하다. 전국 웬만한 의료기관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병동이 생길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대상 질환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현재 대상 질환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등 총 4개). 더욱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
또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문제도 있다. 사실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계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건보 적용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건보 적용을 추진해야 한다.
Q.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 국민의 약 1%만이 신청했다. 몇 %까지 올라야 비로소 웰다잉 문화가 정착됐다고 보는가?
30%에 도달했을 때 웰다잉 문화가 정착됐다고 본다. 하지만 이건 1단계다. 나중에는 국민 3명 중 2명까지 신청해야 된다고 본다. 종국적으로는 전 국민이 참여하면 좋겠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Q. 더 남기고 싶은 말은?
한의계에서 웰다잉 문화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한의사들이 많이 연구해야 한다. 나는 한의학이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계가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사업모델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웰다잉이라는 말이 서양 문화에서 유래됐기 때문에 생소할 수 있겠지만, 뜻을 풀어서 보면 ‘고종명’이다. ‘고종명’은 우리의 언어다. 한의계에서도 자기 용어로 만들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옛날 임금을 치료하는 주치의는 한의사였다. 임금이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궁중에서 애를 많이 쓰지 않았겠나. 그게 한의학이 웰다잉에 접근하는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백성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떻게 하면 웰다잉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임금의 주치의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