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동 교수 상지대 한의과대학
時論 - 한의계의 역량과 혁신, 그리고 변화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에 배치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증거중심의료는 초연결사회에서 한의사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 요소
현재 한의계는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현 집행진들이 끄집어낸 부분도 있지만 언제라도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동안 저자는 80년부터 지금까지 한의학을 해오면서 과거에 비해 한의학과 한의사의 의학적, 사회적 영향력이 감소되거나 침체되어감을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상당수가 한의계 내부의 역량 부족이나 혁신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한다. 한의학은 1차의료 영역, 건강 관리나 증진, 맞춤의료, 상당한 질병에서 우수한 치료 효과, 비침습성과 안전성 등에서 매우 우수하다. 반면에 앞으로 발전하고 혁신해야 하는 부분도 매우 많다.
의학의 핵심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다. 치료는 진단을 전제로 한다. 정확한 진단은 치료보다 수천배 중요하다. 아니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잘못 치료하는 것보다 그냥 두는게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정확한 진단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환자와 관련한 정확한 자료가 많을수록 좋으며 또한 현대의료기기의 활용이나 (할 수 있다면) 서양의학과의 연계강화가 반드시 중요하다.
전체가 곧 ‘나’라는 공동체적인 인식을 해야
다음은 유효성과 안전성에 근거한 치료다. 각자의 주관적, 경험적 치료에서 표준화, 평균화되고 증거기반의료(EBM)에 근거한 치료를 해야 한다. 한 환자를 두고 한의사마다 병명도, 치료도 다르다면 누구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이전에는 의료인 각자의 경험과 실력으로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이로 인한 많은 시행착오, 과장 및 편견, 비과학적 의료로 환자나 학문 발전에 큰 장애가 발생했다. 그러나 최근 Data와 Evidence 중심의료에서는 평균의료, 증거기반의료를 통한 시행착오의 최소화 및 의료의 안정화, 재현성, 예측성 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오래전부터 바꿔지고 있다.
최근 한의계도 세계보건의료의 이러한 측면을 중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이고 발빠른 변화와 참여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처럼 Data 및 증거중심의료는 보건의료계 내부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SNS, Youtube 등의 초연결사회에서 한의사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모든게 드러나고 평가되는 시대에서 한의사 개개인의 잘못된 의료행태는 바로 한의계로 부정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기술발달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결과로 인터넷시대의 최대 피해자는 한의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체요, 전체가 곧 ‘나’라는 공동체적인 인식을 해야 한다.
건강보험 비참여가 환자의 의료행위 왜곡
한의사의 첩약보험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는 자국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국가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재 침 등 일부만 건강보험제도에 참여한 결과 한의사는 침놓는 사람, 침쟁이로 전락했다. 또한 환자들은 진료비의 이중적 지출과 부담으로 한의의료기관을 외면하고 있다.
첩약 등 건강보험 비참여가 환자의 의료행위를 왜곡시킨 결과다. 사람들은 실제 지출하는 돈보다 자신들이 얼마나 더 싸게 샀는지를 매우 중시하는 심리가 있다. 이 같은 소비자의 가격 민감성을 간과하면 안된다.
첩약 비보험화의 더욱 큰 문제는 한의사의 치료능력 감소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 침과 한약은 각기 치료 분야가 다르며, 특히 한약의 사용 없이는 치료효과를 최대화할 수 없다. 한의사들은 그동안 첩약 참여조건으로 수입 등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치료효과에 미치는 영향은 큰 관심이 없었다. 의학에서 치료효과가 적거나 없다면 무슨 존재의미가 있겠는가?
자기만 옳다는 아집과 독설이 세상을 망쳐
한의계 지도자들도 서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회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안정적으로 대응했으면 한다. “무릇 지도자는 다소 소극적인 것이 좋다. 적어도 정책을 결정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공적을 내세울 목적으로 일을 마구 벌이는 것이다.” 老子가 말한 지도자론이다. 반드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세계의료는 국가주도의 사회보장제도 같은 제도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Data중심과 증거기반의료를 지향하고 있다. 한의계도 이러한 방향에 적극 동참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의사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공자는 학문하는데 있어 意, 必, 固, 我의 병폐가 있는데 이중 “‘意’는 근거없이 멋대로 상상하는 것이고 ‘必’은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고, ‘固’는 아집에 얽매이는 것이고, ‘我’는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라고 했다.
좀 더 유연하고, 올바르고, 실용적인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의계는 사회 전체로는 지도자급이지만, 보건의료계 내에서는 약자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에 배치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자기 확신을 더욱 강화하는 ‘확증 편향’이 있다.
특히 온라인 소통이 일상화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사실과 주장이 마구 뒤섞이며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가 어렵다. 서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기는 아집과 독설이 세상을 망친다. 최근 한의계는 협회와 회원간, 회원과 회원간 정치권의 여야처럼 갈등의 골이 심각하다.
역사적 교훈으로 볼 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 과거, 경험, 祕方, 조상, 獨陰, 獨陽이 아니라 전체, 미래, 과학, 표준, 증거, 국가와 사회, 공존과 상생, 조화적 가치의 추구이다. 자연계에서 약자의 생존법은 오직 ‘단결(서로 힘을 합하는 것)’ 뿐이다. 한의계는 문제들을 잘 대처하고 좋은 방안을 준비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