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 한의학을 대중문화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을까? 채한 부산대 한의학과 교수는 사상체질 이론을 바탕으로 <오징어 게임> 속 캐릭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한류 콘텐츠와 현대 스토리텔링에 새로운 도구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편집자 주>
채한 교수
부산대학교 한의학과
Q.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A. 수필가이면서 부산대학교 한의학과 교수로 있는 채한입니다. 젊어서는 분자신경생물학 연구원으로 미국 하버드에서 연구 활동을 했었고요, 최근 코로나 유행 때는 원격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방송통신대에서 에듀테크 분야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요즘은 중앙아시아에서 국제보건 개발협력 G2G 사업으로 한의약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양국 정부 간 조율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곧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5년 넘게 작업해 온 동의수세보원 한(漢)-한(韓)-영어 대역본의 아마존 이북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Q. <오징어 게임> 캐릭터 특성 분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이번 연구는 일회성 분석이 아니라 3단계로 발전해 온 진화형 프로젝트의 최신 버전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뽀롱뽀롱 뽀로로>의 2D 캐릭터들을 대상으로 시도해본 연구(PMCID: PMC5478256)로, 임상연구를 통해 발전시켜왔던 사상 생리심리학 결과들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확인해본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이었지요. 사상성격검사(SPQ)와 체질량지수를 사용해 82.0%의 사상체질 진단 정확률을 보인 임상연구를 이론적 배경으로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한의학의 영역을 넓히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비디오 게임 <오버워치> 캐릭터에 적용해본 시도인데,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에도 적용 가능할지, 그리고 게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구자가 이론적 배경만으로 분석할 수 있을지 궁금했거든요. 놀랍게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미디어 인식에서의 캐릭터에 대한 남녀의 인지 차이까지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미디어 심리학까지 확장 가능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인 <오징어 게임>에서는 실제 배우들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성격, 주인공과 대립자의 성숙하거나 미성숙한 특성까지 분석했습니다. 나아가 한국의 한류(K-wave)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과학적 방법으로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제마의 생리심리학으로 한국인의 정서와 심리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입니다.
Q. 주요 캐릭터 중 특별히 흥미로웠던 사례나 관찰된 특징은?
A. 주요 캐릭터를 사상체질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렵고, 연구자로서도 흥미로운 주제가 아닙니다. 단순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지요.
이번 연구에서 가장 큰 관심은 임상 현장에서 복잡하고 현실적인 성정을 분석한 결과가 왜 한의사마다 다르게 나오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한의사마다 체질 진단이 다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죠. 앞서 설명한 사상성격검사(SPQ)는 인간의 음양 기질을 행동, 인지, 정서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봅니다.
결과적으로, 조상우(박해수)를 소양인으로 진단하는 원장님들은 인지(빠르고 독립적이고, 유연하며, 확신을 갖는 양적 사고방식) 특징에 가중치를 과도하게 부여했기 때문이고, 소음인으로 분석하는 원장님들은 행동과 정서를 포괄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차이를 간단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한 결과가 이번 연구의 성과입니다.
Q. 사상의학과 미디어 심리학의 융합 연구는 처음인데.
A. 사상의학은 단순히 한국 전통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한류를 설명하고 이끌어 나아갈 이론적 기반입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사상의학의 잠재력을 재발견하고 활용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Q.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에서 사상의학 이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A. 사상생리심리(논문의 표1)를 활용하면 인물 캐릭터의 성격을 빠르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생활사적 에피소드와 인물 간 상호작용을 추가해서 극적 개연성을 높여주는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 필요하지요.
먼저, 주인공은 성숙한 모습(표의 왼쪽)을, 대립되는 악역은 미성숙한 모습(표의 오른쪽)을 선택합니다. 그 다음, 하위 척도(행동, 인지, 정서)에서 적절한 표현형들을 선택하여 조합합니다. 등장인물들이 평면적인 애니메이션에서는 세 특징을 모두 높거나 또는 모두 낮은 수준에서 설정하고, 영화처럼 복합적인 등장인물에서는 다양한 수준들의 특징을 조합하여 설정합니다. 호흡이 길고 인물들의 특성이 변해나갈 시간이 충분히 확보된 드라마 시리즈라면 이러한 특징들이 개연성을 갖고 변화하도록 설계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의 조상우는 미성숙한 모습을 가진 A형 프로파일(낮은 행동 점수, 높은 인지 점수, 낮은 정서 점수)로 설계되어 있으며, 주인공의 절친인 안티테제로서 투자에 실패한 펀드매니저라는 서사를 갖고 있습니다. 방식이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동시에 효과적입니다.
Q. 이번 연구에 대한 국내외 반응은?
A.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이번 연구의 가치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연구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첫 반응으로 보입니다. SPQ가 20문항으로 구성된 짧은 검사라는 점, 심신 특징을 2차원적으로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Q. 후속 연구 계획도 궁금하다.
A. 현재 기존 음양 교육 프로그램(PMCID: PMC11504730)을 벤치마킹한 사상체질 진단법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으며, 스웨덴 연구팀과는 서양 드라마에 이 방법론을 적용하는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Q. <오징어 게임> 시즌 2 캐릭터 분석도 계획 중인지?
A. 새로운 캐릭터가 정신병리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SPQ 연구를 우울증, 화병, 청소년 문제행동 등 임상 병리와 진단 모델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캐릭터를 활용한 생리심리학 및 정신병리학 교육은 서양에서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근거기반(Evidence-based) 임상 교육 기법입니다.
Q. 한의신문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한의학의 꽃이 임상 현장에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다양한 분야 또한 한의학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존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로운 논법에 적응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껍데기를 깨고 나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것이 바로 음양의 원리이자 생명의 원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