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가 22일 한의사 박 모 원장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냄으로써 한의의료기관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활발히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이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진료하더라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의사 박 모 원장은 2010∼2012년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해 환자의 질병 상태를 파악한 것이 의료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기소된 바 있다.
이에 검찰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27조 제1항을 적용했으며, 박 모 원장은 검찰의 처분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재판 과정에서 한의사 박 모 원장은 “한의사들은 초음파 진단기기와 관련한 교육을 받을 뿐 아니라 한의의료행위 범위 내에서 진단기기를 사용했다”며 “초음파 진단기를 쓰는 것은 국민건강의 보호·증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1심 판결에서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경우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가 있다”며 박 모 원장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박 모 원장은 이에 불복한 항소했으나 2심 판결에서도 “일반인이 한의사도 의사와 동일한 목적과 방법으로 초음파 검사를 한다고 오인할 가능성이 크고 그러한 오해 때문에 서양의학적 방법에 따른 진단과 치료를 도외시할 우려가 높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22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을 뒤집어 향후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전원합의체는 또 “헌법재판소는 과거에 두 차례에 걸쳐 한의사가 현대 진단기기 등을 사용하여 진료 의뢰를 한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고 밝힌 뒤 “그러나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와 비교할 때 최근 국내 한의과대학의 진단 방식을 사용하는 교육 과정이 지속적으로 보완 강화돼 왔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이 사건에 관하여 한의사인 피고인은 환자의 복부에 한의학 진단의 보조적 수단으로 이 사건 초음파 기기를 사용했다”면서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특히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의료기기 특성과 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춰 한의사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면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 경위 목적에 비춰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해 적용 응용 행위와 무관함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새로운 판단 기준은 한방의료행위 의미가 한의사 입장에서 명확하고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죄형 법정주의 관점에서 진단용 기기가 한의학적 관련이 없다는 명백한 경우가 아닌 한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됨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새로운 판단 기준으로 보면 한의사인 피고인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 환자 신체 내부 촬영해 화면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한의사의 면허 이외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이유로 “한의사 진단기기 사용 금지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특히 “한의사에게 초음파 진단기기 허용한 것은 의료법 1조에서 정한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건강증진에 기여할 뿐 아니라 헌법 10조에 근거한 국민 선택권을 합리적 범위에서 보장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다만, “제도적 입법적으로 해결이 바람직하고 정비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무면허로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