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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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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32

슬기로운 와병(臥病)생활, 보름동안 글쓰기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길고 짧은 인생행로에 누구나 한번쯤은 신병으로 누워 지낼 수밖에 없을 때가 있을 것이다. 대략 350년 전쯤인 1678년에 원치 않은 질병으로 집안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던 36세의 한 젊은 선비가 평소 자신이 관심을 두었던 이런저런 얘기들을 적어놓은 글이 있다. 그 선비는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이고 그 글은 보름 동안에 걸쳐 지어졌다 해서 순오지(旬五志) 혹은 십오지(十五志)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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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붙여 놓은 서문에는 자신이 병으로 누워 지내면서 평소 글하는 선비들로부터 전해 들었던 갖가지 말들(詞家雜說)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閭巷俚語) 등을 기록하여 병석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고 근심을 잊고자 하였다고 밝혔다. 마침 읽고 외우기(讀誦)의 선수로 이름난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 서문을 지어 붙였는데, 조선 후기에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4)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았던 동명이인이다. 

아무튼 김득신의 서문에 따르면, 저자 홍만종은 어린 시절부터 도가의 장생불사하는 선술을 몹시 좋아했다고 적었다. 또한 유불도에 두루 밝고 우리나라 역사와 예술, 문장과 음악에 관한 글을 모아두고 심지어 이름 있는 명사들의 별호(別號)와 시골의 사투리(方言)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찾아보고 기록해 두었다고 밝혀놓았다. 


홍만종의 ‘旬五志’, 민가에 떠도는 속담들 기록


이런 설명에 과히 어긋나지 않게, 본문은 조선의 개국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동사(東史)』와 『위서(魏書)』를 동원하여 단군 탄생과 조선건국 신화가 적혀 있는데,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서 한 마리의 곰이 하느님(天神)에게 사람이 되게 해 줄 것을 애원하여, 신령한 약(靈藥)을 먹고 갑자기 여자로 돌변하였다고 적혀있다. 

우리가 읽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영약이 바로 달래와 쑥이라고 했으니 계절은 이즈음처럼 봄이었을 것이고 들판에 새로 돋은 봄나물이야말로 겨우내 웅크려 지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마치 하늘이 내려준 신비로운 약처럼 귀한 선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필자는 종종 한의학역사박물관을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 의약의 시원으로 설명하곤 한다. 

내친 김에 책속에 담긴 의약 관련 내용을 몇 가지 들춰보기로 하자. 신라말엽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스님이 당나라의 선승들과 나눈 산천비보(山川裨補)설은 동국산수에 3800군데 점을 찍어 삼국 분열을 막고 국운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급한 병이 생기면 혈맥을 찾아서 침도 놓고 또는 뜸질도 해야만 병을 고치게 된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인간의 몸에 기와 혈이 흐르는 경맥이 있듯이 산천에도 요혈이 있어 소통이 원활해야만 국사가 풀린다는 얘기인데, 자연환경과 인간사회의 조화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깨우침을 준다.


“자신의 병을 고치려거든 마음을 반드시 바르게 해야”


본문 중반을 넘어서자 저자 자신의 처지를 의식한 듯, 많은 부분에서 수신양생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스스로 병 고치는 비결로써, “만일 자신의 병을 고치려거든 먼저 마음을 다스리고, 또한 그 마음을 반드시 바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치심법은 퇴계 이황을 필두로 조선 선비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택당 이식으로부터 받은 수련법 100여 가지를 골라 전한다고 밝혀놓았다.

 그 방법은 조식법(調息法), 탄진법(呑津法), 도인법(導引法), 보화탕(保和湯) 등인데, 이는 필시 세종대 간행된 『의방유취』 양성문이나 『활인심법』 등을 통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자인 홍만종은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옥사에 연루되어 외직으로 축출되었다가 사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아 몸이 병약해진 나머지 환로에 뜻을 버리고 문학과 단학수련에만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듬해부터 어지럼병을 얻어 내내 고생하였으며, 와병 중 도교에 심취하게 되어 1666년 『해동이적(海東異蹟)』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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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話叢林’, ‘東國地志略’ 등 명저 다수 남겨


병으로 두문불출하며 이식, 김득신, 홍석기 등의 문우(文友)들과 시문을 나누던 그는 1673년 시평론집인 『소화시평(小華詩評)』을 저술하였다. 33세 되던 숙종 원년(1675) 진사과에 급제하였지만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고 서호(西湖, 지금의 서울 마포 일대)에 머물며 『순오지(旬五志)』를 지었다. 그는 일반적인 시문보다는 역사·지리·설화·시화 등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1705년에는 우리나라 역사를 간추려 엮은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을 엮었으며, 70세가 되던 1712년에는 역대 시화를 집대성한 『시화총림(詩話叢林)』을 편찬하였다. 이 외에도 『동국악보(東國樂譜)』 · 『명엽지해(蓂葉志諧)』 · 『동국지지략(東國地志略)』 등 주옥같은 명저를 남겼다.

영조 원년(1725) 83세까지 천수를 누렸으니, 평생 갖가지 지병으로 시달린 것을 감안하면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장수를 누린 셈이다. 아마도 젊어서 일찌감치 출세욕을 버리고 양생술을 연마한 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은 보름동안 병석에서 누워 지내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스스로 위안을 얻고자 지어졌다고 한다. 벌써 일년 반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역병의 유행에 우리 자신을 위한 글쓰기로 자득의 묘를 발휘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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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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