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波隱 한상억)으로부터 ‘있음(being)과 됨(becoming)의 차이란 무엇인가(difference bewteen Being and Becoming)’란 제목의 글을 받았다. 그는 자주 과학철학과 관련된 주제의 글을 보내온다. 몸을 주제로 한 ‘감정과 감성’, ‘늙음’ 등이 그것이다.
칸트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갈파한 이성론을 중심으로 니체, 쇼펜하우어, 데카르트, 샤르트에 이르기까지 근대 서양 과학철학자들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글을 영어로 써서 글의 깊은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솔직히 말해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가며 읽기도하고 때로는 대학생(현재 UBC 영문학과 3학년 재학)인 손녀에게 묻기도 한다.
현대문명 위기 극복을 위한 사고방식의 과감한 전환 필요
나는 1980년대 대학(원광대 한의학과)에 있을 때, ‘인식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한의학을 어떻게 서양과학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계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났을 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과학운동(New Age Science Movement)’이었다. 신과학운동은 이제까지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자연과학사상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유기체적 세계관에 입각한 과학사상을 모색하는 운동이었다.
‘신과학’이란 용어는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일기 시작한 ‘새시대 과학(New Age Science)’에서 따온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과학문명의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이 무분별한 자연의 이용과 개발을 재촉하여 오늘날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물질적 부를 향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자연의 고갈과 같은 전지구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고방식의 과감한 전환의 필요를 인식하면서 일어난 운동이 바로 이 신과학운동이다. 그때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 쿤의 <과학혁명>, 카프라의 < 생명의 그물>, <전환점> 등이며, 유럽에서는 벨기에의 프리고진이 <있음에서 됨으로>를 발표하였고, 영국에서는 니덤의 <과학과 문명> 등이 나왔으며, 철학계에서는 미국의 화이트헤드가 <과정철학>을 발표했다.
지금 우리가 널리 쓰고 있는 ‘패러다임’(paradigm)’이란 용어가 나온 것도 이때다.
이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를 말하는 것으로 미국의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쿤(Thomas Kuhn)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1962)에서 새롭게 제시하여 널리 통용된 개념이다.
신과학, 과정철학 나오면서 한의학적 사유 새롭게 설명
또한 과정철학은 화이트헤드가 철학 전반을 여러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다룬 책으로 데카르트의 심신이론을 극복하기 위해 ‘과정’이란 개념을 존재론적 측면과 함께 지각론적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다. 따라서 그동안 한계에 부딪쳤던 존재가- 존재에서 생성으로, 있음이- 있음에서 됨으로, 혼돈이- 혼돈에서 질서로 인식전환 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에서 과학사를 전공한 송상용 교수 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과학사학회를 조직하였고, 범양사에서는 김용준 교수가 주관하는 <과학사상>이란 잡지가 나와 이러한 과학사상 및 과학철학을 소개했다.
한편 영국의 캠브리치 대학 니덤 교수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중국의 과학이 서양에 뒤떨어진다는 서양과학자들의 인식을 불식케 했다. 또한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동양의 과학문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다.
한의학은 기계론적, 분석적, 인과론적, 환원론적 인식이 아닌 유기체적, 종합적, 직관적 논리로 그동안의 고전과학적 인식으로 설명할 수 없었는데, 신과학이나 과정철학이 나오면서 서양의 ‘존재적 논리’와 전혀 다른 한의학의 ‘생성적 논리’가 직관적 사유, 상징적 사유, 과학적 사유, 전일적 사유, 상보적 사유, 생명적 사유 등의 측면에서 유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나는 한의학자로서 과학사학회, 의사학회, 과학철학회, 의철학회에 가입해 서양 과학자들과 함께 학회 활동을 해왔다. 현재도 의사학회, 의철학회 고문으로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때 <과학사상>에 주로 글을 발표했다.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의 저자 카플러를 만나기 위해 미국 버클리대학을 찾은 것도 이때다. 파은의 ‘있음과 됨의 차이’의 글을 읽으면서 80년대 당시 생각이 떠올라 잠시 당시의 학문적 분위기를 적어봤다.
그런데, 파은의 ‘있음’과 ‘됨’에 대한 글은 프리고진의 <있음에서 됨으로>가 아닌 칸트의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로부터 시작됐다. ‘인간적 이성(Human reason)’은 단순히 개념적 사유를 할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 오직 본능적 충동에 의해서만 행동하는데 비해서, 인간은 의무의식(義務意識)에 의해서 행위를 하는 것이 본질적 특징이며 따라서 이는 인간적 행위가 어떤 이성적인 힘에 의해서 지도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존재적 인간 ‘있음’과 ‘됨’은 도덕적, 윤리적 인간 완성의 과정
파은은 “Being is sense, Becoming is endless trial to be moral person”라 하면서 있음은 지금의 있는 나의 상태이고, 됨은 지금의 나의 상태에서 도덕적 인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라 했다.
존재적 인간과 생성적 인간, 즉 ‘Being’과 ‘Becoming’을 도덕적, 윤리적 인간 완성의 과정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이는 중국 유학의 수신(修身)과정과 같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이러한 이성론을 중심으로한 윤리도덕적 관점은 프리고진, 화이트헤드, 쿤 등의 근대 과학철학자에 의해 과정철학 및 신과학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파은을 통해 서양 철학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아울러 나의 연구생활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이점에 대해 파은에게 감사하며 언제 한번 만나 밤 새워가며 토론할 기회를 갖기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