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대전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본과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로멘토링이라는 교내 상담프로그램이 있다. 각 교수자에게 할당된 학생 수가 있고 학생들이 그에 맞춰 수강신청 하듯 신청하여 자율적으로 학생들과 미팅을 하며 진로 상담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상담을 해 보면 매년 학생들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의사 국시 공부 방법에 대한 질문, 졸업 이후 어디에 취업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남학생 같은 경우 공보의 가는 시점에 대한 고민 등 몇 가지 특징적인 주제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하지만 가장 오래 학생을 괴롭히는 고민은 병원에 들어가 수련을 할 것인가 아니면 로컬에 나가 바로 취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고민거리는?
졸업 후 병원 수련을 할 것인지, 한다면 어느 전공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학생들은 이미 한의과대학 재학 중에 상당히 여러 번 선택이 바뀌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의대에 입학할 때부터 특정 전공의 한의사 전문의를 목표로 6년을 달려온 학생도 어느 순간 마음이 바뀌어 인턴 지원을 포기하고 로컬로 나가는 경우도 많고, 6년의 재학기간 동안 전혀 전문의를 생각하지 않다가 갑자기 인턴을 지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생들의 고민과 생각들을 듣다가 한의대의 진로교육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졸업 이후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은 학생들은 기껏해야 먼저 경험해보고 고민했던 선배에게 연락하여 물어보는 적극성을 띄어야만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그나마 취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 역시 객관성이 매우 떨어진 정보일 가능성이 높고, 같은 질문에 상반된 내용의 정보가 주어지면 다시 방황하게 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학생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과정 안에 진로교육을 더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빡빡한 학사 커리큘럼 안에 진로에 대한 교육과정을 넣는다는 것이 다소 무리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다른 일반학과에 비해 이미 한의대를 졸업한 순간 어느 정도 진로가 정해진 것인데 어떤 진로교육이 필요하느냐는 반대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한의학과 한의사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변화된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의료 전문직의 다양한 역할을 습득하고 대비하게 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를 지망할 때 특정 전공을 선택하는 기준을 본인의 흥미와 적성, 구체적인 전문의로서의 목표 등을 생각하고 계획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의대, 진로교육 상당히 활성화돼 있어
의대의 경우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고 있다. 연세의대는 오래 전부터 진로교육이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데,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교육과정 내/외로 구분하여 진행하고 있다.
교육과정 내의 프로그램으로는 학습공동체 지도교수와의 면담으로, 학생들의 에세이를 통해 진로의사결정 과정을 검토해보며 조언을 받는 프로그램이다.
교육과정 외 프로그램으로는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진로선택박람회가 대표적이다. 전공 선택 관련 강의나 토크쇼가 열리며 다양한 진로를 개척한 선배를 초청하여 그들의 선택과 삶에 대해 공유하기도 한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시기에는 정규수업을 진행하지 않도록 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진로선택박람회가 열리지 않는 해에는 진로 탐색 프로그램(Career Path Survey)을 개설하여 특정 전공에 관심있는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활용한 ‘보이는 라디오’의 진행도 인상적이다. 학생 중심의 진로 상담에 대한 노력이 엿보인다.
가톨릭대학교 역시 ‘자기 이해와 평가’, ‘전공 분야 탐색’, ‘전공 선택’ 등의 세 가지 단계로 진로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다양한 심리검사를 토대로 학생 스스로 본인의 적성과 흥미에 대해 알아보고, 자신의 잠재력과 각 전공과의 관련성을 탐색하면서 의료현장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전체 학생이 참여하는 교수연구과제 프로그램이 있어 의사과학자로서의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학생의 생각과 고민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도록 하여 본인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으며 실제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높은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한의대는 진로교육 프로그램 개설 미흡
가천의대에서도 비슷한 진로 교육이 시행되고 있는데 각 시기성과에 기반하여 장기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한 점이 특징적이다. 예과 2학년 시기부터 시작되는 진로교육은 다양한 강의와 세미나를 정규 교과로 개설하여 제공하고 있으며, 역시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멘토교수와의 멘토링 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아직 한의대에는 이와 같은 진로 교육 프로그램의 개설이 미흡하고 그 필요성에 대한 인지도 낮다고 보인다. 한의대를 졸업한 이후에는 무조건 한 길만 걸어야 한다는 진로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 학생들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한의학을 활용한 다양한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도 학교 교육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적합한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개선된다면 좁게는 한의사의 전문성과 역량이 강화될 것이고 넓게는 사회 다방면에 한의학이 더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해 본다. 이제 곧 예비 한의사들의 인턴 지원이 시작될 시점이다. 학생들의 후회 없는 선택과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