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우 원장 탑마을경희한의원/보험한약네트워크
“증례→임상연구→진료의 활용”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일본 도쿄 신주쿠 게이오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70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에 다녀왔다. 2박 3일간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강연·포스터·일본 한의학 도서 등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돌아온 것 같다.
한의협 송미덕 학술부회장의 권유로 함께 가게 되었다. 협회 학술팀에서는 “어떻게 하면 로컬한의사들이 증례 보고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같았으며, 그 고민에 공감하여 따라가게 되었다.
돌아와서 머릿 속에 맴도는 키워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시스템이고,다른 하나는 정보교류의 이원화된 구조이다.
시스템
이번 학술대회가 열린 장소·시간 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몇 가지 사실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첫째 이번 대회는 금·토·일 3일 동안 지속되었는데, 일본에서는 평일을 포함한 3일 동안의 한의학 학술대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부산 같은 곳에서 금·토·일 3일 연속으로 학술대회가 진행된다면 대다수 개원 한의사들은 참석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게이오플라자호텔, 이 호텔은 위치나 가격대로 보아 신주쿠에서도 상당히 고급호텔에 속하는 것 같다. 금·토·일 3일 동안 많은 연회장들을 빌리고 luncheon seminar를 진행하려면 그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학술대회의 경우 회원이 1만5천엔, 비회원이 1만6천엔 정도로 회비부담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회장마다 강의와 포스터를 보고 들으러 오는 인파가 많아서 충분히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것이라 예상이 된다.
요컨대 일본에서는 이런 종류의 금전적, 시간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한의학 학술대회 개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일본에서는 한의 진료를 담당하는 주체가 일본 의사들이고, 이들 중에는 대학병원이나 로컬병원 혹은 연구소 등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용이하다.
그리고 이들은 서양의학의 토대 위에 한의학을 배우고, 140여종 보험한약이라는 정해진 도구로 진료를 하다보니 균질한 진료형태와 균질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한의진료가 매뉴얼화되어 있다 보니 의사들의 관심사가 한곳에 모일 수 있어, 규모도 크고 내용도 알찬 학회가 가능할 수 있는 것 같다.
자동차가 잘 달리려면 좋은 엔진도 가지고 있고 좋은 바퀴도 중요하지만 엔진의 힘이 바퀴에 잘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구조를 시스템이라고 부른다면, 일본한의학은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임상증례가 쏟아져 나오면 이것이 토대가 되어 양질의 임상연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들이 개개 의사들에게 전달되어 진료현장에서 활용이 된다. ‘증례→임상연구→진료의 활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점점 증폭되다 보면 엔진의 힘이 바퀴에 제대로 전달될 것이고, 잘 굴러가는 자동차처럼 일본 한의학이 잘 굴러가게 된다.
정보교류의 이원화된 구조
우리나라에서 한의 진료는 한의사라는 동일한 면허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학문적인 접근에 있어서는 상당히 이원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학이나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의사의 경우, 비교적 진단 장비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 진단 장비나 혹은 consult를 통해서 환자의 서양의학적 병명이 어느 정도 결정된 상태에서 한의 진료를 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로컬 한의사의 경우 이런 접근이 쉽지 않다. 예컨대 디스크 환자일 경우라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경우 CT나 MRI 등을 통해서 디스크의 탈출 정도를 확인하고 병명이 어느 정도 결정된 상태에서 한의진료를 해나가는 반면, 로컬에서는 이학적 검사에 의존해서 디스크를 추정하고 진료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질환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리고 한의사 중에서도 수련을 받은 한의사들은 억지로라도 증례 보고를 해본 경험이 있지만, 졸업하고 수련을 받지 않은 한의사들에게는 증례 발표나 논문쓰기가 쉽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한의학계의 정보교류는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그룹과 로컬 한의사라는 또 다른 그룹이라는 이원화된 형태로 정보교류가 각각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낳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학교에서는 비교적 impact factor가 높은 양질의 논문들도 나오고 있지만, 이들 논문들은 대체로 임상 현장과는 전혀 상관없거나 관계가 있더라도 잘 공유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로컬은 로컬대로 다양하고 놀라운 증례들이 곳곳에 숨어있지만, 이 역시도 더 심화된 임상연구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도 ‘증례→임상연구→진료의 활용’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학문의 엔진의 힘이 바퀴에 제대로 전달되어 일본 한의학처럼 마치 한 몸처럼 굴러갈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의 일환으로 최근 증례발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즉 개원가에서도 증례를 발표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이것이 학계와 교류된다면, 이들이 모여서 보다 양질의 논문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탄생한 논문들은 다시 진료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첫째 어떻게 하면 개원가로 하여금 증례발표에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라는 점과, 둘째 그 증례들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발표를 해나가야 보다 많은 개원가와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냐 라는 점이다.
즉 우리 실정에 맞는 정보교류의 장이 필요하다. 개원가와 학계 모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보교류의 장이 생기고, 나아가 우리 한의학이 한 덩어리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