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한의사/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
교육은 OO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여름방학에 들어갔는데도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1학기 동안 많은 과제와 시험의 반복으로, 분명 지치기도 했을 것이고 학교가 지겹게 느껴지는 학생도 많을 것인데 학교에 남아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방학을 이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한다든가 동기나 선후배들이 모여 스터디를 조직하여 해보고 싶은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학기 중 활동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방학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동아리 활동에 매진할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 밝은 표정에 어느 정도 여유가 묻어 나온다.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친 홀가분함이 상대방에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즈음 시기에 학교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왠지 마음이 급하고 불안해 보이는 학생들이 있다. 위태위태한 성적 때문에 교수 연구실 앞을 서성이는 학생들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1학기 성적이 확정되기 전의 성적 입력기간에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서라도 유급되지 않고 진급하기 위한 학생의 마지막 시도인 것이다. 그런 학생들을 만날 때면 굉장히 안쓰럽고 마음이 안 좋아진다. 몰아치는 시험 사이에서 그 학생이 했을 고민과 방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무언가 도와줄 방법은 찾기 어렵다. 이미 시험까지 끝난 마당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다. 단지 응원과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다.
얼마 전,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의 교수학습 지원센터는 ‘학생들과의 효과적인 상담과 코칭하기’라는 제목의 교수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강사로 서울의대의 모 교수님이 오셨는데, 약속된 2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할 수 있었던 강의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의 말미의 맨 마지막 슬라이드였다. 화면에는 ‘교육은 ◯◯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 교수님은 ◯◯에 들어갈 말을 각자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잠시 후 빈 칸이 채워진 맨 마지막 슬라이드를 공개하시면서 강의는 끝이 났는데, 완성된 그 문장을 보고 무릎을 치며 깊이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강한 인상을 받음과 동시에 많은 여운을 주는 슬라이드였다.
그래서 1학년 수업의 종강 날, 수업시간의 마지막 슬라이드로 똑같이 활용해 보았다. 1학년 학생들에게 각자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생각해 보라고 한 후, 온전한 문장을 공개하였다. 아마 학생들은 빈 칸에 들어갈 다양한 어휘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랑, 노력, 만남, 감동, 경험, 소통 등등. 교육과 어울리는 2음절의 그럴듯한 단어를 선택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겠지만 마지막 슬라이드의 그 문장만큼 강한 울림은 없었을 것이다.
학부 시절에 학과 사무실로부터 학생들이 느끼기에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지시와 압력이 내려온 적이 있었다. 특정 과목의 폐강을 막기 위해 수강신청 전에 미리 추첨을 하여 골고루 각 과목에 인원이 배분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동기들이 모두 모인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러한 지시를 따라서는 안 되며,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후배들에게까지 악습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학생들이 연합하여 학과 측에 뜻을 전달하자고 건의하였다. 그런데 다른 학생이 ‘우리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 지도 모르는데 누가 나서겠느냐’고 항변하였고, 결국 학과 사무실의 요구대로 우리는 추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공간은 다름 아닌 교육자를 양성한다는 대학이었다. 부끄러운 상황 속에서 깊은 ◯◯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교육에서 ◯◯을 느낄만한 일은 너무도 많다. 그리고 ◯◯은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학교나 병원에서의 갑질과 폭행, 미투 사건들의 보도는 이제 새로울 것도 없지만, 역시나 접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 찾아온다. 사학 비리를 규탄하며 교수와 학생이 함께 시위를 나서는 장면이나 장애인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싼 여러 갈등의 현장에도 ◯◯은 존재한다.
한의과대학 내에서도 ◯◯은 자주 포착된다. 수업 시간에 다른 과목의 시험공부나 과제를 해야 하는 학생들을 마주할 때도, 마음먹은 만큼 설명이 잘 안되어 학생들에게 온전히 전달이 되었나 스스로 의심이 들 때도, 오로지 성적이나 장학금이 절대 목표가 되어 학습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도 없는 학생을 만날 때도, 학생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모르는지 스스로 확인하지 못한 채 진급에 안도하고 유급에 절망하는 학내 분위기에도 ◯◯을 느낀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교육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접할 때면 막다른 골목의 벽 앞에 선 암담함을 느낀다. 모든 ◯◯의 상황을 열거하자면 아마 지면에 싣기 어려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그 자체로는 좋지 않은 의미이지만 ‘교육은 ◯◯이다’의 문장 속에서는 곱씹어 생각해 볼수록 어떤 반전이 숨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교육’에 천착하며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교육이 ◯◯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개선하여 교육이 한 단계 더 발전하고 도약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살짝 잊고 있었던 개인적 경험들을 되새겨 주면서 초심을 다잡게 해 준, 그 강의의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빈 칸이 채워진 온전한 문장이 크게 적혀 있었다.
‘교육은 좌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