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 한의약정책관실 폐지, 한의건강보험 분리 등 한의사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양의사단체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의료기기, 의료통합 논의는 쉽지 않을 것"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구성, 운영됐던 ‘한의정협의체’의 재개는 물론 의료일원화·의료통합과 관련한 논의는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전망은 매우 불명확하다.
한의정협의체의 운영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자에 한의사도 포함시키는 의료법 개정법률안의 발의에서부터 출발했다. 입법부에서 개정 법률안의 결론이 확실히 매듭짓지 못하게 되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한·양의 단체간의 조율을 복지부에 제안했고, 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 2017년 12월29일 한의정협의체 첫 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첫 회의 이후 7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지난 8월31일 회의에서 의료통합 관련 합의문(안)이 제시됐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한·양의 교육과정 및 면허제도를 통합하는 의료일원화를 2030년까지 추진하는 것을 비롯해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2년 내에 마련하기 위한 논의 기구로 ‘의료발전위원회’ 운영과 이 위원회를 통해 기존 면허자의 면허통합 방안을 논의키로 한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한의정협의체 합의문(안)’이 나온 것이다.
한의약을 바라보는 양의사 단체의 부정적 인식… 매우 심각한 상황
이 합의문(안)은 양측의 완전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비공개 원칙을 지켜 나가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협회가 내부의 의견 조율과정에서 조금 조금씩 의약전문지 보도를 통해 소개되다가 나중에는 전체 내용이 알려졌다.
합의문(안)이 나온 이후 의협 최대집 회장은 합의문 체결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이를 위해 ‘기존 면허자에 대한 면허통합방안을 논의한다’는 안을 한의사협회와 복지부에 양해까지 구하면서 ‘기존의 면허자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한다’로 문구 수정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 요청에 한의협과 복지부는 어렵사리 수용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의협 내부 조율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난달 10일 ‘전근대적 대한민국 의료의 정상화 선언’이라는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통합 합의안을 수용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특히 최 회장은 합의안의 수용 불가만을 외친 것이 아니라 의료통합 논의 과정의 전 단계로 한의사제도, 한의과대학, 한의약정책관실 등의 폐지와 더불어 건강보험에서 한의건강보험의 분리를 주장했다.
최 회장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의 공식적인 한의사제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써 의료통합 이전에 한의약을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을 확연히 나타내 보였다.
이런 인식은 비단 최 회장만이 아니다. 여러 양의사 단체들의 성명전도 그 궤를 같이한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한방건강보험 분리와 한의대를 폐쇄하고 의과대학으로 통합 개편할 것을 외쳤고, 전국의사총연합은 정부에게 의사와 한의사 중 하나만 택할 것을 촉구한데 이어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에 한의사를 없애달라는 청원을 올렸으며, 일간지에 한의원에서 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을 신고하면 포상금 1000만원을 주겠다고 광고했다.
이에 반해 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은 지난달 12일 ‘의사독점구조 철폐와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 국민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본격적으로 통합의료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이후로 의료기기 논의 내지 의료통합과 관련한 논의를 위한 한의정협의체를 지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복지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았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상반된 입장만 맞선 상태로 한의정협의체가 운영되온 전례를 살펴볼 때 이 협의체에서 의료기기 논의가 지속되기는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의료기기·의료통합 관련 재논의는 복지부, 국회, 국민 여론 등이 변수
또한 이 협의체에서 의료통합과 관련한 추가 협의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양의사단체가 의료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한의대 및 한의약정책관실 폐지, 한의건강보험 분리 등 한의사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한·양의 단체간 의료기기 및 의료통합을 재논의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협의체 운영 및 의료통합 논의의 물꼬를 이어가는 방법은 매우 희박하지만 세 가지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첫째는 복지부가 현재와 같은 상황을 충분히 인지한 만큼 국가 보건의료의 틀을 새로 짠다는 각오로 협의체 운영과 의료통합 논의를 선도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며, 두 번째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 발의 및 관련 논의를 강하게 이어 나가는 방법이고, 마지막으로는 국민의 강력한 요구가 양 단체를 협상의 테이블로 앉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양의사단체가 현재의 한의사, 한의학, 한의의료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한의정협의체 운영과 의료통합 재논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