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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일)

“삼춘들 침 맞으레 옵서”

“삼춘들 침 맞으레 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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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백광현 원장(부산 미로한의원)은 2021년부터 4년째 제주도 우도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도 주민이기도 한 김애경 편집장(우도마을신문 달그리안)이 한의의료봉사에 대해 작성한 기고문을 본란에서 소개한다.

 

올여름도 미로의료봉사단의 의료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름볕에 시원하게 펄럭인다.

 

2021년 7월, 미로한의원 의료봉사단과의 인연은 코로나19 창궐이 가져다준 운명이다.

 

매년 해외 의료봉사를 다녔던 그들과의 첫 만남은 그저 코로나로 막힌 해외 봉사 길을 잠시 우회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이 작은 섬마을 사람들과 긴 인연으로 이어질 거라곤 예상치 못한 일이다.

 

우도에는 의료 시설이 보건지소 하나뿐이다. 그나마 몇 해 전 한의원이 한 곳 있었지만, 큰 섬(제주시)으로 옮겨갔다. 그러기에 우도에 사는 삼춘들에게 병원 가는 일은 큰맘 먹고 시간을 내야 하는 예사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혼 번 맞았덴 좋아질로고, 침이사 동남(고성읍) 나가민 맞아지는건디, 안맞으켜.”

 

의료봉사단의 첫 해 방문 시 삼춘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수십 년을 따라붙은 고질병을 침 치료 몇 번으로 좋아질 리 없을 거라는 미덥지 않음에서다.

 

대부분 밭일과 바다 일을 병행하기에 관절 쪽 질환이 많다. 허리, 무릎, 손가락 어느 것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데도 한의의료봉사 소식에 무심한 건 느긋하게 침이나 맞을 만큼 섬 생활이 한가롭지 않은 탓도 있다.

 

미로한의원 의료봉사 기간은 여름이다.

 

여름이면 해녀들은 성게를 잡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메뚜기도 한 철이듯, 성게 철은 해녀들의 호황기다. 주머니 사정 두둑해지는 대목에 이곳저곳 쑤시는 통증은 꾹 참고 넘겨야 하는 엄살에 불과할 뿐이다.

 

임시 진료실에 온몸이 골병인 삼춘들이 주름져 누웠다. 여기저기 아픈 곳을 넋두리처럼 나열하지만, 해석이 힘든 생경한 제주어에 진료실은 웃음바다가 되기도 한다.

 

살뜰하게 삼춘들의 아픈 곳을 확인하는 그들의 진지함은 숙연하다 못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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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숨소리에 더해진 집중, 침묵이 더해진 겸손과 배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울이는 관심, 이런 것의 집합체는 잔잔한 감동으로 스며든다.

 

작은 혈점의 자극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컸고, 침 끝의 집중은 위대했다. 길고 뾰족한 바늘 끝의 집중은 통증을 주기도 하지만 통증을 다스리기도 했다. 새삼 세상사 또한 작은 것에 소홀하지 않은 집중이 모여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치를 깨닫게 한다.

 

섬에 살다 보면 아픔을 참아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고충이 있다. 도처에 병원이 있어 쉽게 병원을 드나드는 육지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비록 일 년에 한 번이지만 미로의료봉사단의 방문은 여름날 가뭄의 단비처럼 섬사람들에겐 귀한 손님이 되었다.

 

무뚝뚝하던 어른들도 두 팔 벌려 반가움에 포옹하고, 몇 해 방문하며 주워들은 어설픈 제주어로 어른들의 안위를 챙기는 봉사단들의 모습이 애틋하다. "내년 여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며 약속하지만, 작년에 뵈었던 삼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지팡이를 짚은 삼춘은 그들의 진정성에 경배하듯 온 마음을 담아 감사함을 전한다.

 

“내년에도 올거지예.” “원장님, 내년에 또 보게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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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몇 번 맞아 몇십 년을 달고 다닌 고질병을 무슨 수로 떼어낼 거냐던 삼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과의 며칠간을 아쉬워하며 내년을 기약한다.

 

첫해 삐뚤빼뚤 틀어진 손가락 마디와 무릎, 허리.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어른들을 만난 백광현 원장님은 "마음이 아프기 전 화가 났습니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열악한 의료 환경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병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니 섬에 사는 섬사람들은 병을 키우며 사는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막은 해외 의료봉사 길을 잠시 우회하려 했지만 삼춘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 미로한의원 의료봉사단은 매년 섬으로 직진하고 있다.

 

우도에도 작은 병원이 생겨나는 그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미로한의원 의료 봉사단의 방문이 오랫동안 꾸준히 섬과 이어지길 바라본다.


그리고 여름휴가를 통째로 반납하며 쉽지 않은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섬을 찾아와 주는 봉사단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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