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장사, 제도 모순 속에 행해진 ‘암묵적 관행’
기초과학 연구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절실
얼마전 필자가 나고야의대의 생리학교실에 들렀을 때 방글라데시 출신의 실험실 요원이 9년만에 의대 생리학 교수로 발령을 받았다는 지도 교수의 말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었다. 순간 필자의 머리 속에서는 방글라데시와 일본의 의료수준이 비교되었지만 지도교수의 설명은 달랐다.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기초연구실에 남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제3세계에서 연구인력을 스카웃해온다는 것이다. 말이 스카웃이지 일종의 용병인 셈이다. 그래도 용병으로만 써먹지 않고 정식교수 발령을 배려한 지도교수의 인품이 돋보이기도 했다.
최근 국내 의과대학의 실험실에서도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 출신의 연구인력을 만나는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이들에 대한 신뢰도나 기대 수치는 높지 않은게 현실이다. 결국 정부는 수년전부터 MRC(Medical Research Center)라는 기초의과학자 양성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수백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몇몇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하고 있다. 기초의과학자는 의대·치대·한의대를 졸업했지만 개업의로 나서지 않고 의학의 기초연구에 헌신할 인재를 일컫는 것으로 최근 그 인력의 필요성이 심각해지고 있다. 의학계열을 마치고 의료인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당연히 경제적으로 좀 넉넉한 개업의의 길을 걷게 되는게 상례이다. 결국 개업의는 넘치는데 반해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할 의사가 부족하여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미래의학의 연구 인력을 정부차원에서 양성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전국의 의대, 치대, 한의대의 기초교수 부족현상을 해결해 보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그나마 다행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금번 전북지역의 의학계열 학위장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결국 정부에서 수백억원을 들여서 길러내고자 하는 기초의과학자, 그것도 2∼3십년 세월을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몰두해온 의학계열 기초 교수에 대한 몰매로 끝났다. 더나아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떨고 있을 전국의 의학계열 교수들을 생각하면 불합리한 제도를 너무 오래 방치했다는 자책이 없지 않다. 솔직히 의학계열의 학위장사는 하루 이틀된 불법 노점상이 아니라 수십년동안 제도적 모순 속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진 암묵적인 관행이었다.
이번 사태의 핵심도 다름아닌 수업과 돈이다. 과연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졌고 지도교수와 학생간에 실험비 명목으로 돈거래가 있었는가가 초점이다. 애시당초 대학원수업을 학부과정처럼 정해진 시간에 수업량을 채워서 마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 학문영역에서 대학원 수업은 한 과목에 수강신청 인원이 2∼3명 정도이므로 도제식 수업이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대다수 의학계열이 수십년전부터 격주 수업이 되어졌음은 필자 역시 그렇게 코스웍을 마쳤기에 안다. 그러나 개업의로서 대학원 과정을 학부처럼 수업을 진행한다면 어느 누구도 대학원을 마칠 수가 없다.
결국 의학계열의 대학원을 없애든가 아니면 개업의에 맞는 수업일정을 과감하게 풀어 주어야 한다. 특히 의학계열 교수로서 박사학위지도를 단 한 명이라도 해봤다면 실험비 문제로 고민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문헌 논문을 쓴다면 별문제가 안되겠지만 어디에선가 실험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실험재료비와 인건비에 대한 부담은 필연적인 것이다. 아니면 대학원생인 개업의가 직접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자기 병원에 찾아온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할 경우에도 환자의 인권문제와 데이터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시비 때문에 늘 심사과정에서 애를 먹는 수가 많다.
결국 학위논문의 경우 주제에 맞는 실험기자재가 필요하고 실험재료비와 인건비가 발생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와 대학원생간의 껄끄러운 돈 계산을 부도덕한 암거래로 단죄를 한 것이다. 의학계열 학위취득 과정에 대한 시시비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국은 과감하게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대학원 등록금에 논문 실험비를 책정하여 합법적으로 실험실에 지원하든지 아니면 개업의의 형편에 걸맞는 학위과정을 신설해야 한다. 모든 의학계열 교수를 부도덕한 학위장사로 매도하지 말고 기초의과학자로 헌신한 초심을 잃지 않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모 대학의 경우 대학원 등록금 수입이 수백원억인데 비해 대학원 지도교수에 지급되는 실험비는 1인당 10만원이 채 안되는 어이없는 현실 속에서 몇몇 학위장사만 부도가 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