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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07일 (화)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 067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 067

崔鳴吉의 鄕藥集成方論 “새로운 鄕藥의 부흥을 이룩하자”



kni-web[한의신문] 1633년 12월 崔鳴吉(1586~1647)은 『鄕藥集成方』을 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跋文(일명 ‘鄕藥集成方跋’)을 작성한다. 좌의정을 역임한 崔鳴吉은 실용주의적 醫學論을 외친 亂世의 儒醫였다.



“약에 군신좌사가 있는 것은 오래되었지만, 또한 속방이나 단미 약제 가운데 효과를 보는 것이 더 빠른 경우가 있으니, 요컨데 약물이란 것은 그 병에 합당하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을 등지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서 약물이 많이 출산되지만, 백성들의 풍속이 질박하고 비루하여 채취의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진귀한 약제들도 아무런 이유없이 들어오고 있다. 세종대왕이 비로소 醫官들에게 명하여 약물의 이름을 바로잡도록 하고, 方書를 찬집하도록 하셨으니, 이름하여 『鄕藥集成方』이라 하니 모두 85권이다. 이를 아울러 세상에 간행하여 쓰이도록 하셨으니, 무릇 동방의 약물을 가지고 東人의 질병을 낫게 하고자 함이라. 그 후에 중국의 새로운 方書가 더욱 많이 나와 의학의 도가 더욱 넓어지게 되었으니, 매년 중국으로 갔던 사신들이 돌아와서 燕市(北京)의 진귀한 약재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흘러들어와 증상을 살펴 처방을 내림에 모두 중국의 새로운 처방을 위주로 하여 鄕方(鄕藥處方)은 마침내 폐절되어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요동으로 통하는 길이 막혀 사신들의 선박왕래가 드물어지게 되어 이따금 어지러운 지경에 빠지게 되기까지 하였으니, 즉 方書에는 비록 존재하지만 宋人의 遺契와 다름이 없어서, 의학을 업으로 하는 자들이 이를 근심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지금 영의정 尹昉이 內局提調가 되어 『鄕藥集成方』을 다시 간행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재정 때문에 근심하고 있었던 차에 完豐府院君 李曙가 訓鍊都監의 提調가 되었는데, 훈련도감에 인쇄국이 설치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일을 李曙에게 맡기니, 그는 이를 기쁘게 따르게 되었다. 이 때에 『鄕藥集成方』이 폐절된지가 백여년이 되어서 겨우 이 책의 잔본들을 수집하였지만, 책이 온전하지 않았다. 완벽한 판본을 구하던 차에 이를 탐라(제주도)에서 얻게 되었고, 또한 補遺 1권을 얻어 간행하여 책을 간행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환자들이 이에 힘입어 임금님들의 백성들을 구제하여 살리고자 하는 뜻이 다시 聖祖(仁祖를 지칭) 때에 실천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崔鳴吉이 내국제도가 되었기에 이 책이 나오게 된 전말을 책 끝에 간략하게 서술하여 기록한다.”



2024-31-1위의 발문을 통해 몇가지 사실이 확인된다. 첫째, 중국의학과 조선의학의 분명한 차이에 대한 인식이다. 이것은 “동방의 약물을 가지고 東人의 질병을 낫게 하고자 함”이라는 『향약집성방』간행의 목표와도 일치한다. 둘째, 향약처방의 활용이 줄어들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한다. 이것은 “증상을 살펴 처방을 내림에 모두 중국의 새로운 처방을 위주로 하여 鄕方(鄕藥處方)은 마침내 폐절되어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라는 발언에서 엿보인다. “중국의 새로운 처방”이란 조선의 출산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향약집성방』에 실린 처방 이외의 새로 등장한 처방들을 의미한 것일 것이다. 이것은 조선 출산 약재의 품목 증가와 약물 감별 지식의 보급 등으로 새로운 처방을 충분히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조선 약재의 공급이 가능해진 상황에 대한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러한 흐름에서 『향약집성방』은 활용도가 떨어지는 의서로 전락되는 수모를 잠시동안 겪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1610년 『동의보감』의 간행이 그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610년 간행된 『동의보감』은 1433년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을 때보다 발달된 조선의학의 약재수급, 의료체계 등 높아진 인프라를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崔鳴吉에게 1633년 『향약집성방』의 간행은 절실한 과제였다. 완전한 판본을 찾을 수 없었기에 崔鳴吉은 전국을 뒤져가면서 제주도에서 완본을 구하여 거국적으로 간행하여 향약의 부흥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우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는 1433년 이 책이 처음 간행된지 정확히 200년만에 이러한 일을 해낸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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