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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인류세의 한의학 <27>

인류세의 한의학 <27>

인간중심(人間中心)과 사시근본(四時根本)

김태우01.jpg


김태우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인간, 중심을 살다

 

인류세의 기후위기를 논하는 데 있어 인간중심주의는 이제 기본적인 전제다. 인문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까지 인간중심주의의 문제에 갈수록 주목하며, 기후문제를 논의하고, 대처 방법을 찾고 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인간중심주의의 고리를 매개로 기후위기에 대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논의가 근접, 융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가 단지 날씨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고, 존재들의 삶과 생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경계 허물기의 현상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는 말 그대로 인간을 세계의 중심(中心)에 두는 사고다. 인간은 중심에 있고, 그 외의 비인간 생물, 무생물, 물질은 방사형으로 그 주변(周邊)에 있다. 그 배치에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과의 거리는 인간에의 유용성으로 곧잘 결정된다. 이러한 중심주의 속에서 동물들은 고기가 되고, 나무들은 자재가 되고, 자연은 자원이 된다. 또한, 인간의 영역을 싸고 있는 환경(環境)은 중심의 바깥에 있는 외부의 영역이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기,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논의들은, 근대에 이르러 인간을 독보적 존재로 위치시키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인간을 가운데 두고, 그 밖의 자연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기계를 돌리고, 경제를 성장시키며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하지만 세계는 위기가 상존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가뭄이 길게, 자주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폭우가 극한으로 내리고, 산불에 산과 마을이 불탄다. 동식물이 극심한 기후변화에 노출되고, 중심에 있다고 생각되던 인간들도 기후위기에 따른 건강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중심주의는 주체, 이성을 가진 인간과 그 외의 존재, 비존재를 나누는 방식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비(非)인간이 되고, 인간중심주의의 세계에서 비인간은 수동적으로 인간의 결정에 좌지우지되는 것들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중심주의는 이러한 이성,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논의되어왔으므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주체중심주의이다. 이성, 주체를 중심에 둔다는 것은 또한 주체를 가지지 않은 존재들을 “대상(對象)”의 위치에 둔다는 것이다. 

 

대상은 말 그대로 마주하는[對] 상[象]이다. 이 대상이라는 용어에는 빠져있는 것이 있다. 대상을 마주하는 인간이 생략되어 있다. 그 인간 주체가 마주하는 것들이 대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중심주의에서는 주체를 가진 인간과 그 인간의 인식이 가닿는 대상들로 세계는 양분된다. 또한, 여기서 인간이 마주하는 것은 “존재”나 “실재”가 아니라 “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주체와 상의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주체중심주의에서는, 조금 강하게 말하면 주체를 가진 인간만이 존재다. 돼지, 옥수수, 말미잘, 먼지, 바다, 대기 등 비인간존재는, 주체에 의해 인식된 것의 위치에 거하는 것이 인간주체중심주의이다.

 

김태우.jpg

 

인간이 중심이 아닐 때

 

“대상”이 일상 언어의 일부이듯이 인간중심주의는 우리의 일상에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인간중심주의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이고 그 중심주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에 무감각하다. 동아시아의 생각의 방식은 인간중심주의를 고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중심주의는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인간에 대한 생각과 자연에 대한 생각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형성된 주된 생각[主義]이다. 그 생각의 방식과 동아시아의 그것을 병치해 보면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드러난다. 인간주체중심주의는 세계의 중심에 인간을 두는 생각의 방식이라면, 동아시아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 차별화되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동아시아의 의서에 있다. 이전 연재글에서 『동의보감』과 『동의수세보원』의 본문이 공히 하늘[天]으로 시작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통해 강조했듯이(<인류세의 한의학> 8 “자연(自然)과 자연(Nature)” 참조), 단지 몸과 질병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몸에 연결된 세계를 같이 논의하는 경향이 강한 동아시아의학은 세계 이해, 몸 이해를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동아시아의학의 생각에는 인간중심주의가 없다. 중심에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시음양(四時陰陽)이 있다1). 인간중심주의와 같이 인간이 중심에 있고, 그 주변에 비인간 존재 사물들이 배치되는 구조가 사시음양의 사유에는 없다. “사시음양은 만물의 근본(四時陰陽者萬物之根本)”이라는 『내경』의 문장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은 근본이 되는 사시음양 쪽에 있지 않고, 만물에 속해 있다. 그것도 수많은 물(物)들[萬物] 중의 하나다. 인간은 근본이 되는 사시음양도 아니고, 또한 그 근본에 의해 드러나는 만물 중에서도 돌출되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도 사람은 귀한 존재이지만, 중심주의와는 다르다.

 

사시음양이 만물의 근본인 것은, 주지하다시피 그것이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순조로운 흐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2). 봄기운은 봄기운 답고, 여름기운은 여름기운 답고... 또한 가을 다음에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에 봄이 오는 순조로움 속에 생명의 생명다움을 사시음양은 말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사유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특정 존재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가운데 있는 것은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또한, 사시음양이 중요하지만 사시음양 중심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인간중심주의와 같이 인간이 중심에 있고, 그 주변에 비인간존재, 사물들이 배치되는 구조가 사시음양의 사유에는 없다. 『내경』에서는 중심이 아니라 “근본”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이해에서 사시음양이 뿌리로써 아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표본(表本)의 관계가 있고 “근본”에는 지표(枝表)에의 염두가 있다. 본은 가시적이지 않고, 다양한 존재들에 스며있는 양상이다.


생명의 리듬이 근간에 있는 세계

 

순조롭고 때에 맞는 변화 자체가 만물의 근본이다. 그리고 그 순조로운 흐름은 모든 존재들이, 즉 만물이 공유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로 바깥에 있기도 하지만, 장부로 몸 안에 있기도 하다. 인간 몸뿐만 아니라, 인간 아닌 존재들도 사시음양의 기운을 공유한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본(本)”이 존재하는 양상이다. 이것을 공유하므로 연결되어 있다. 사시음양은 변화와 생동을 말하고 있으므로 만물은 사시음양이라는 생명의 리듬을 공유하며 연결되어 있다. 이 생명의 리듬은 살아 있는 개별 존재들에게만 있지 않다. 존재들의 내부 외부 없이 공유되어 있다.

한의학과 같은 동아시아의학은 세계의 현상과 문제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 실천하는 체계다. 거기에는 인류세의 기후문제에 직면한 인류가 돌아보아야 할 의미 있는 세계와 몸에 대한 이해의 방식들이 녹아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중심주의는 단지 주의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이라는 뜻의 주의(主義)가 붙어 있는 인간중심주의이지만 이것은 단지 주된 뜻이나 주장 이상이다. 인간중심주의는 실천되고, 실제로 그러한 세계를 구축한다. 

 

특히 근대 이후의 세계는 인간중심주의가 현실화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고기, 목재, 자연자원이 배치된다. 인간이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그 바깥에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닭고기 돼지고기의 축사가 있고, 또한 쓰고 남은 것들을 버릴 쓰레기장이 배치된다. 인간중심주의는 단지 주의가 아니다. 인간중심주의가 형상화된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주의과 같은 생각의 방식과 실천과 배치의 관계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앞으로 <인류세의 한의학>에서는 이들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려고 한다. 


1) 프랑스의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는 이러한 동아시아의 존재와 세계 이해의 방식을 아날로지즘이라고 명명하였다. 아날로지즘은 인간과 같은 개별 존재를 내세우기 보다는 관계성을 중심에 두는 특징이 있다.

2) 사시음양자만물지근본의 문장이 나오는 내경의 문맥을 보면 이것은 보다 분명해 진다. 

    역춘기즉소양불생간기내변(逆春氣則少陽不生肝氣內變)

    역하기즉태양불장심기내동(逆夏氣則太陽不長心氣內洞)

    역추기즉태음불수폐기초만(逆秋氣則太陰不收肺氣焦滿)

    역동기즉소음불장신기독침(逆冬氣則少陰不藏腎氣獨沈)

 

    이 문장들 다음에 사시음양자만물지근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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