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땡큐, 마스터 킴>이라는 영화가 있다. 2008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다. 2010년 9월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이먼 바커라는 호주의 재즈 드러머다. 말하자면 뮤직 다큐멘터리. 그런데 제목이 왜 저럴까? ‘마스터 킴’은 누구이며 그는 왜 ‘마스터 킴’에게 감사하는가?
영화는 유명 드러머인 사이먼 바커가 ‘마스터 킴’을 찾아다니는 국내 여정을 따라간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친구에게서 한국의 타악 연주 음반을 전해 듣게 된다. 그는 그 순간부터 이 연주에 매료된다. 그 음반은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82호 동해안별신굿의 연주 장단이었다(영화의 원제는 ‘Intangible Asset Number 82’다).
그 연주자가 70세 노인인 김석출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사이먼은 7년간 한국을 17번이나 방문한다. 문화재라고는 하나 노령이어서 활동을 접은 김석출 선생에 대한 정보는 너무도 부족하고, 그의 여정은 험난하다. 악보를 분석하고 채보하면서까지 우리 음악을 공부하는 그를 돕기로 나선 이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활동했던 국악인 김동원. 그는 사이먼과 함께 김석출 선생을 찾아가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자유와 헌신 사이의 기막힌 조화
이미 80세의 고령으로 접어드는 선생은 노쇠하여 만나기가 힘들다. 김석출 선생을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김동원은 사이먼에게 한국의 다른 고수들을 먼저 만나볼 것을 권한다. 우리 음악에 대해 이해하고, 예(禮)를 갖추어야 비로소 선생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기(氣)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통의 이면에 있는 행복’과 ‘음양의 이치’, ‘큰 슬픔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하나가 되면 영혼이 점차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음악을 설명한다.
이방인이 무속인을 만나려는 여정.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만남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그의 간절함. 호주에서 음악을 하는 건 무엇인지,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건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하던 사이먼은 고수들을 만나면서 우리 타악 연주법과 리듬을 끊임없이 배운다.
‘자신이 깊이가 없어 보일까 봐’ 긴장하는 그에게 고수들은 화답한다. 소리와 연주의 조화에 대해서. 힘들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복잡한 구조 안에서 만들어가는 미묘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그것을 사이먼은 ‘자유와 헌신 사이의 기막힌 조화’라고 파악한다.
사물놀이, 판소리, 재즈밴드의 결합
사이먼은 장단과 호흡을 배운다. 단전을 몸의 중심축이라고 이해한다. 악기와 나 자신의 조화, 합주할 때의 기의 교류에 대해 배운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조화를 배운다. ‘산에 널린 돌멩이처럼 거칠고, 흐르는 강물처럼 어지러운 졸박미’에 대해 배운다. 3박자 4개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우리 장단을 배운다.
그렇게 찾아다닌 고수 중에 한 사람이 소리꾼 배일동이다. ‘기는 우주 근원이 되는 에너지의 흐름입니다’라는 자막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맥. 그리고 목을 놓아 소리를 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마치 산맥을 덮고 새벽을 여는 것 같은 통쾌한 소리가 산봉우리에 우뚝 선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비구름과 안개가 산을 넘는 지리산 계곡으로 사이먼과 김동원은 찾아드는데, 나무막대기로 바위를 두드리며 폭포 물에 온몸이 젖은 채 소리를 하는 사람이 보인다. 이끼 덮인 바위를 북 대신 두드리며 지리산 폭포에서 7년을 하루 몇 시간 자지 않고 소리 연습을 했다 한다. 일그러진 얼굴로, 온몸으로 소리를 하는 그의 한복차림에 씩씩하고 건강한 기운이 가득하다.
산 열매를 따 먹으며 ‘제정신 아닌 공부를 했다’는 그는 흘러가는 물이나 날아가는 새에서 영감을 얻는다. 자연이 스승이라고 한다. 음은 계곡이고 양은 산이라고, 폭포는 음양이 만나는 곳이고 이런 에너지를 끌어당겨 소리를 한다고 한다. 김동원은 판소리를 이해하고 싶으면 기를 모으는 것과 기를 끌어올리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사이먼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고수 역할을 자청해서 함께 폭포 물에 젖으며 소리 한바탕을 돕는다.
사이먼은 그들을 보며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숙연해진다고, 그들의 강한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고 아이처럼 웃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에 김동원 사물놀이와 배일동의 판소리와 사이먼의 재즈밴드를 결합해 한국에서 호주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리듬은 돌고 도는 기의 힘
‘신유배 기행’을 떠납니다! 유진규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신, 유, 배’ 세 사람이 한국화 드로잉퍼포먼스와 마임과 판소리로 한판 놀기로 했다는 것이다. 공연을 펼치는 지역의 예술인들과 함께 어우러질 것이니, 시 낭송과 예의 ‘시침(施鍼) 퍼포먼스’를 부탁한다고 했다. 또 한 번 느낀다. 선생은 젊으시다. 쉼 없으시다.
내가 <땡큐, 마스터 킴>을 찾아보게 된 것은 모두 이 공연 판 때문이다. 소리꾼 배일동의 약력에서 도드라진 영화출연이 그를 공부하게 했다. 그러면서 동해안별신굿과 김석출 선생을 화면으로나마 보게 되었다. 개봉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숙연해졌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토록 간절했던 호주 드러머는 3일 낮밤을 연주하고도 오히려 에너지가 넘치는 무속음악의 명인 ‘마스터 킴’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이먼은 영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음악의 본질은 강한 기와 이완된 기의 흐름이죠. 리듬은 돌고 도는 기의 힘인 거죠. 그 순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