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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18세기 조선의 침구 경혈은 어떤 모습일까?

18세기 조선의 침구 경혈은 어떤 모습일까?

-침금동인으로 복원한 내의원 표준경혈1-
1741년, 내의원에서 국가표준동인 ‘침금동인(鍼金銅人)’ 제작

본래 침구의학은 서적과 경혈도, 동인銅人의 세 가지 형태로 전해오고 있었다. 침구서적은 경혈의 위치를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고, 경혈도는 그림으로 위치를 표시한 것이며, 동인은 해부학을 바탕으로 인체모형의 정확한 위치에 경혈을 표시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각각의 기록은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세 가지가 모두 있어야 경혈의 위치를 정확히 학습 할 수 있다. 정밀한 동인이 있더라도 침구서적의 혈위 설명이 없으면 경혈을 취혈할 수 없으며, 동인이 없으면 침구서적의 설명이 아무리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혈위를 찾을 수 없다. 또 경혈도가 없으면 동인과 침구서적의 혈위를 한 눈에 구분하고 정리해서 기억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동의보감 침구편>이나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에서 설명하는 경혈의 위치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어려웠던 것은 내의원에서 사용하던 침금동인(鍼金銅人)을 참고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침금동인은 1741년 조선시대 내의원에서 침구경혈의 교육과 임상실습을 위해서 제작하였으며, 영의정 김재로와 조선 최고의 장인인 최천약(崔天若)이 제작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동인이다. 현재 일본과 중국에도 다양한 침구동인이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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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금동인의 골도법. 경혈의 分寸을 맞추면서도 머리를 약 1.3배 크게 제작한 것이 특징>

 

 

그러나 이러한 동인들은 개인들이 자신들의 침구학 지식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며 국가의 공인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다. 이에 비하여 침금동인은 제작과정과 당시 참여한 인원이 <승정원일기>에 세밀히 기록되어 있으며 내의원의 검증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18세기 조선의 ‘국가표준경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침금동인의 학술적 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다.

 

17~18세기 조선의 침구의학은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동의보감 침구편>은 당시 동양 3국 중에서 가장 발달했던 조선 침구의학의 이론과 임상을 집대성한 보고이다. 

 

또한 침금동인은 현대의학과 동일한 수준의 표면해부학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최천약이 1740년에 제작한 사각유척(四角鍮尺)은 당시 도량형의 기준으로 현대의 정밀기기로 측정하여도 오차가 거의 없을 정도의 정밀도를 가졌다고 하니 그가 제작한 침금동인의 경혈 역시 상당히 정밀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침금동인에는 18세기까지의 조선의 모든 경혈 지식이 함축되어 있어 학술적인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조선 침구의학의 일본 전파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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