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趙世衡 先生(1926〜2004)은 사암침법, 고전침 수기법과 임상처방 정리의 외길을 걸어온 한의학자로서 만학의 나이로 경희대 한의대 13기로 졸업해 한의사로 활동했다. 그는 재학시절 동의임상처방집편찬위원회를 조직해 대표로 활동하면서 후에 1971년 『동의 새 임상처방학』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솔선하였다.
조세형 선생은 1987년 『醫林』 제181호에 「熱痰에 對한 治驗例」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그는 58세된 부인의 증상을 熱痰으로 판별하여 치료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58세된 부인이 내원하여 호소하는데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판별하기가 어려웠다. 그 증상들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36세 때 집에서 출산을 했는데, 신생아가 가사상태가 되어 산모가 놀라서 한기가 나기 시작하였다. 2일 후에 背部에 손바닥만하게 炭 같은 것이 눌리는 것 같더니 2개월 후에는 全腰部가 아프면서 결리고 이것이 손으로 돌아오면 손바닥에서 열이 불같이 나더라는 것이다. 약간 덜하다가는 다시 이런 증상이 오는데 봄과 가을에 더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덜하다. 손바닥에 불같은 열이 나는 것이 덜해지면 허리가 아프고 이 증상 다음에는 臍下痛이 오고 또한 이것이 덜해지면 膝痛이 와서 행보를 못하고 다시 이 증상이 없어졌다 나타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증상이 계속되던 중 50세에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서 처음에 喉頭部에 머리카락이 걸려 있는 것 같다가 혀가 갈라지고 혓바늘이 나면서 헤지고 口乾이 온다. 덜하다가도 하복통이 오고 手掌熱이 나타나다가 요통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56세가 된 여름부터는 안면, 頸項, 後頭部에 열감이 상충하면서 어깨가 빠지는 듯도 하고 때로는 심하부가 손도 못대게 아프기도 하고, 이 증상이 없어지면 腰背部, 肩部까지 뻗치며 후두부까지 있다고 한다. 이 증상이 소실되고 숨을 겉으로 내뿜을 때는 肌肉瞤動하면서 上肢瘙痒도 오며 이것이 또 덜하면 臍下痛이 생기면서 小便不利가 오고 다시 상초로 올라가서 안면, 경항, 후두부에 열통이 오면 소변이 시원하게 나온다고 한다. 종합병원에 가서 소변검사 등 제검사를 해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하였으며 23년간 이런 증상에 시달려서 여러 의원을 찾아봐도 병명과 원인을 못 밝혀냈으며 백약이 무효였다고 한다.”
조세형 선생은 위의 58세 부인 환자의 증상을 진단하면서 “통증이 돌아다니면서 아프니까 痰이 아니겠는가고 생각되었다”고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또한 “증상에 열증을 겸한 것도 같고 특히 手掌熱은 心熱이라고 볼 때 그 윤곽이 잡혀가는 것 같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진단의 실마리를 『醫學入門』과 『東醫寶鑑』에서 찾았다. 『의학입문』의 “痰은 津과 血로 이루어진 것으로 氣를 따라 승강하므로 기혈이 조화하면 잘 流行하여 모이는 일이 없지만 內傷이나 外感이 되면 그 流行이 津이 막혀서 逆行하여 병이 된다”는 논술과 『동의보감』의 王隱君의 痰論의 내용을 꼽았다. 조세형은 이어서 痰의 寒熱을 “熱痰은 火痰으로 煩熱, 燥結하여 面目이 烘熱하고 혹 眼爛, 喉閉, 癲狂, 嘈雜, 懊惱, 怔忡하고, 寒痰은 冷痰으로 骨痺, 無熱하고 色深靑黑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세형 선생은 熱痰의 증상이 20년이나 경과하여 58세까지 이어졌기에 虛證으로 판단하여 虛而有火者에게 쓰는 大調中湯(인삼·백출·백복령·천궁·당귀·생지황·백작약 각 4g, 황련·감초 각 3g, 과루인·반하 각 4g)을 20첩 투여하여 뻐근하게 아프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경감되면서 열감이 덜해지고 점차 호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