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원 원장
대구광역시 비엠한방내과한의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방내과 전문의인 이제원 비엠한방내과한의원장으로부터 한의사가 전공하는 내과학에 대해 들어본다. 이 원장은 내과학이란 단순히 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질환의 내면을 탐구하는 분야이며, 한의학의 근간이 곧 내과학이라면서, 한방내과적으로 환자를 어떻게 진료할 것인가의 해답을 제시해 나갈 예정이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과학 혁명은 무지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지의 인정함에서 출발한 현대 과학은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관찰한 것을 수집하고, 수학적 도구(Mathematics)로 그 관찰 결과를 연결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그 이론이 바로 새로운 지식이 되는 것이다.
“3주 전부터 소화가 잘되지 않습니다.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한 것 같아요. 그리고 온몸이 으슬으슬 추운데요. 면역력이 떨어진 걸까요? 한약을 한 번 지어 먹을 때인가요?”
50대 남성 환자가 조심스럽게 현재 증상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환자는 약 2년 전, 역류성 식도염 및 기능성 소화불량에 대해 본원에서 치료받은 후 증상이 크게 호전됐다. 그리고 지금은 3개월 단위로 생활 습관 및 식습관과 함께 건강 상태를 추적 관찰하고 있었다.
3개월 전 내원 시, 환자는 심한 스트레스로 불안 증상이 1주일가량 지속된다고 호소했다. 이에 加味逍遙散을 처방하여 필요시 복용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소화 기능은 좋아진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3개월 동안의 병력을 깊이 있게 청취했다. 환자는 2개월 전부터 회사에서 회식이 많아져 일주일에 2~3회 외식 및 과식, 음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3주 전부터 소화불량과 속쓰림 증상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독감에 걸린 듯한 오한 증상도 함께 나타났다. 집에서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던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였지만, 증상이 지속돼 내원 2주 전 양방 내과에서 진료받고 약을 처방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양약을 복용해도 오한 증상은 지속되고 있었다.
양약 처방전을 살펴보았다. 세파드록실, 아세트아미노펜, 아젤라스틴, 에르도스테인, 레바미피드로써 상기도 감염에 흔히 사용되는 약물이 처방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의 건강하지 않은 생활 습관 및 식습관에 의해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겼으니, 한약을 사용하여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발열은 없으나, 오한 증상이 지속되고 있었기에 진단의학적 검사를 통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한 상태였다.
내원 시 환자의 혈압은 120/80 mmHg, 맥박수 78 bpm, 체온 36.5 ℃였다. 진단의학적 검사에서 AST 41 IU/L, LDH 226 U/L, Uric acid 7.8 ㎎/dL, Amylase 104 U/L, Pancreatic amylase 54 U/L, Lipase 64 IU/L, hs-CRP 1.54 ㎎/L, ESR 13 ㎜/hrs, RA Factor 105.6 IU/mL, Creatine Kinase,Total(CPK) 1277 IU/L로 췌장염을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 관찰됐다(표 1).
검사 결과를 설명한 후 공복 상태에서 복부초음파 검사를 시행했다. 검사를 함에 있어 2년 전 시행했던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abdomen CT) 검사 결과를 참고했다. 다행히 췌장 조직의 에코도 저하나, 췌장 주변의 액체 저류 또는 낭종 등과 같은 특이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다.
55세가 넘는 고령, Hematocrit(Hct) 44.6%와 같이 급성 췌장염의 중증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있었지만, WBC 6.7×103/㎕, BUN 15 ㎎/dL, Glucose 82 ㎎/dL 등의 수치가 정상 범위 내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기 부전이나 전신 염증반응 증후군(SIRS)이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증 급성췌장염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집된 관찰 결과와 함께 榮•淡紅한 舌質, 沈•遲•滑•有力한 脈象을 바탕으로 肝鬱氣滯證 및 心脾兩虛證으로 辨證했다. 그리고 歸脾湯에 大柴胡湯을 合한 처방으로 2주일 투약한 후 다시 혈액 검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2주 후, AST 26 IU/L, LDH 176 U/L, Uric acid 7.1 ㎎/dL, Amylase 85 U/L, Pancreatic amylase 43 U/L, Lipase 56 IU/L, hs-CRP 0.77 ㎎/L, ESR 3 ㎜/hrs, RA Factor 74.9 IU/mL, Creatine Kinase, Total(CPK) 286 IU/L 등 거의 모든 검사 수치가 개선됐다(표 1). 환자의 소화불량 증상도 크게 개선됐고, 오한 증상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추가 처방 없이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저는 본래 한의학을 신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현대 의료기기를 이용해서 이렇게 진단하고 치료해 주시니 한의학에 대해 큰 신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역류성 식도염 및 기능성 소화불량에 이어 다시 한 번 한의학, 한방내과학의 도움을 받은 환자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과학 혁명이 무지를 인정함에서 출발했듯, 한의학 혁명도 지금까지 한의계가 부족했던 부분을 과감히 인정함으로써 출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대 과학이 이뤄낸 성과로 만들어진 현대 의료기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새로운 한의학적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전 세계 보편적인 과학 지식 도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도구들을 통해 질병과 생명 활동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수집하여 수학적 도구로 연결해 새로운 한의학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곧 한의학 혁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한의학은 국민으로부터 더 큰 신뢰를 얻고, 한의학적 이론이 가진 특수성과 우수성은 더욱 널리 알려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