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강현구 기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4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의료대란 관련 법적 쟁점-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토론회에선 전공의 사직과 관련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의료계 소송에서 승소 확률이 낮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현영 의원은 개회사에서 “의대정원 확대와 관련해 최근 젊은 의사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하고, 의대교수협의회에서도 사직을 예고하는 등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여전히 해결점은 답보 상태”라면서 “사안의 장기화가 매우 우려되는 시점에서 현 사태의 법적 쟁점을 통해 의료대란에 대한 해결법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자유토론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서는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위배 여부 △의대 증원 행정소송 집행정지 처분 적용 가능 여부 △전공의 사직에 따른 의료법 위반 여부 △전공의 업무방해죄 적용 가능 여부 △전공의 사직서 효력 발생 시기 등에 대한 법조계의 해석과 논의가 진행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앞서 전공의 사직에 따른 정부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ILO에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 따른 처벌 조항인 제59조 제3항에 의거한 ‘업무개시명령’의 경우 ILO 제29호 ‘강제 노동 금지 조항’에 위배한다”는 내용의 긴급 개입 요청 서한을 발송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의료서비스 중단은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며 “이는 ILO 제29호 협약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 강제노동의 적용 제외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토론회에서 임무영 변호사(임무영법률사무소)는 “ILO 협약은 제2조를 통해 강제 근로에 해당하지 않는 5가지 예외사항을 정하고 있는데 법원 역시 이 예외사항에 따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강제 근로에 해당하지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비준된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 더욱이 ILO 협약이 우리나라 의료법보다 상위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민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도 “병역 의무가 강제 노동 금지에 위반되지 않기 위해 예외조항을 두듯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제기한 ILO 협약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예외사항은 군사·시민적 의무 및 법원의 유죄 판결 결과에 따른 의무, 국민 생명·안전에 우려가 있는 경우 강제 근로 금지를 적용하지 않고 있고, 의사의 의료행위 역시 여기 포함되며, 의사면허 정지나 취소 역시 ILO 협약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김소윤 한국의료법학회장(연세대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과 교수)은 법리적인 해석에 앞서 이번 사태의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전공의들이 ILO에 긴급 개입 요청 서한을 보낸 것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자신들이 믿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전공의들이 활동을 그만둔 이유는 정부의 예고 없는 의대 증원 발표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며, 정부 역시 이를 예상하고, 몇 달 전부터 파업에 대비한 정황이 있다”고 반박했다.
▲좌측부터 임무영 변호사, 이민 위원, 김소윤 회장
또 정부가 의대 증원 발표 이후 모든 수련병원에 ‘필수의료 유지명령’을 내린데 대해 전국 33개 의대교수협의회 대표들은 이에 반발, 5일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의대 교수들이 원고로서 소를 제기할 권한이 없다며 소가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임 변호사는 “행정소송에서 원고적격 판단은 엄격한데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교수들이 피해를 보는 부분이 없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 원고로서 의대 교수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돼 소가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반면 재학생이 학습환경 파괴로 인해 원고가 되는 건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증원에 대한 정부의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증원을 교육부 장관이 결정해야 한다는 등의 논쟁은 필요 없는 ‘사소한 시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민 위원도 “법률상 이익을 보는 주체가 명확해야 하는데 의대 교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결국 처분성 결여로 각하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의대 교수들이 고등교육법상 교육부 장관이 공표해야 한다거나 입학전형에 대한 사항은 6개월 전에 해야 적법하다는 주장 또한 통폐합이나 정원 감축 등 대학 규모 축소를 위한 정책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전공의 사직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에서 이 위원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신체 보호를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으며, 의료계 내외부적으로 필수·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으로 의사 수 부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의대 증원은 불가피했다”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도 전체적인 방향은 증원하되 일부는 ‘지역의사제’로 하고, 실손보험을 일정 부분 공공의 영역으로 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전공의 사직의 당위성을 살펴보면 법률적으로 개인의 뜻에 의한 사직이 아닌 파업으로 해석된다”며 “이에 대해 의료계는 형식적인 것만 보고 정당하다고 해석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현 상황의 핵심은 사직이 아닌 파업과 진료 거부라고 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한편 임 변호사는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면서도 수가체계를 개선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며 “필수의료 관련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를 보전하기 위해 임금이 높은 전문의 대신 임금이 낮은 전공의들을 복수로 고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이로 인해 전공의들은 수련을 거쳐 필수의료 전문의가 돼도 취직을 못하니 개원가로 밀려나고, 개원가 경영을 위해 피부·미용을 선택한다는 실태를 예측한 것이 이번 사직서 제출 사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