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강현구 기자] 경락경혈학회(회장 김재효)가 18일 온라인(ZOOM)을 통해 ‘한의학과 뇌과학의 만남’을 주제로 개최한 ‘2024 기초연구자와 임상 한의사가 함께하는 제1차 온라인 학술아카데미’에서는 최신 뇌 연구를 통해 한의신경정신학을 현대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한편 약물중독 해결을 위한 한의학의 역할이 제시됐다.
이봉효 대구한의대 한의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학술아카데미에서는 △소뇌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이해-몸과 마음의 관계(이재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원) △침 치료와 중독(김희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을 주제로, 한의학 이론에 뇌과학적 접근 방식을 통한 연구 내용들이 발표됐다.
김재효 회장은 인사말에서 “13대 신임 회장으로서 개최하는 첫 아카데미인 만큼 한의학의 외연을 안에서부터 밖으로 확장하자라는 취지와 함께 ‘2024 세계 뇌 주간’을 맞아 ‘한의학과 뇌과학의 만남’을 주제로 기획하게 됐다”면서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한의대를 비롯한 의학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임상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를 중심으로, 한의학과 뇌과학이 어떻게 함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뇌과학 연구로 본 ‘오장과 칠정의 오행배속’
이날 이재건 연구원은 ‘내재적 가소성(Intrinsic plasticity)’이 세포의 안정적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냅스 가소성과 균형을 이루며, 퍼킨지 세포(Purkinje cell)의 흥분성은 기억 저장에 필요한 시냅스 가소성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내재적 가소성은 시냅스를 통해 받는 신호들이 ‘Action potential(활동 전압)’을 형성하면서 세포 내에 전달되는데 이에 관여하는 이온 채널들의 변화다.
이재건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알려진 소뇌의 비운동성 기능 중 가장 활발한 연구는 ‘공포 기억’ 분야로, 소리나 냄새, 빛 자극 같은 외부 신호는 뇌교의 교핵(Pontine nucleus)를 거쳐 이 PF(평행 섬유)-PC(퍼킨지 세포) 회로를 통해 소뇌로 전달되는데 이 시냅스의 LTP(시냅스 연결의 장기 강화)가 공포 기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재건 연구원은 공포 기억에서 소뇌의 주요 세포인 퍼킨지 세포의 내재적 가소성과의 상관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이번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원은 패치 클램프 기법(Patch-clamp method)을 활용, 실험 쥐에게 소리와 전기 자극을 연합해 공포 기억을 형성하도록 했으며, 시냅스를 통해 전달되는 신경전달물질의 신호를 측정하거나 전류를 주입해 Action potential을 유도해 공포조건화(Fear conditioning)하도록 했다.
실험은 Paired group(공포조건화 실험군)과 Unpaired group(대조군)으로 나눠 대조군에는 소리와 전기자극의 시간 간격을 둬 연합하지 못하게 해 공포 기억을 형성되지 못하도록 했다.
실험결과 공포조건화 실험군에서 퍼킨지 세포의 흥분성은 감소했으며, 퍼킨지 세포의 흥분성은 공포에 질려 동작을 멈추고 몸을 떠는 ‘프리징(freezing)’ 정도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에 따라 공포 기억 형성에 따라 퍼킨지 세포의 흥분성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도출해냈다.
또 연구팀은 40uA의 전류로 PF-PC 시냅스를 자극했을 때 공포 기억이 형성된 실험군에서 LTP로 인해 ‘EPSC(흥분성 시냅스 후 전류)’가 더 크게 발생했음을 확인한 한편 시냅스를 10회 자극 시 발생한 퍼킨지 세포의 활동전압의 개수는 차이가 없었다는 결과를 통해 내재적 가소성으로 인한 흥분성 감소가 LTP와 균형을 이루며 적절한 수준의 세포의 활동을 유지시켜준다는 사실을 도출해냈다.
이 연구원은 “내재적 흥분성은 공포 조건화 1시간 후에 줄어 감소했다가 24시간 후에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는데 이를 통해 내재적 가소성이 공포 기억의 처리 과정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포 기억은 없으면 생존에 불리하지만 더 많이 형성되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질병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그동안 내재적 가소성과 시냅스 가소성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은 질병 모델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기억 공고화라는 생리학적인 기능 속에서도 서로 관여한다는 것을 밝혀낸 첫 연구결과”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아울러 “한의학에서 ‘오장(五臟)과 칠정(七情)의 오행(五行) 배속’을 통해 장기와 정신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지난 2017년 발표된 동의보감의 텍스트를 연구한 ‘Understanding Mind-Body Interaction from the Perspective of East Asian Medicine’ 논문에서도 장기와 감정의 연결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Gut-Brain axis(장-뇌 축) 또한 몸과 마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수소음심경 신문혈의 약물중독 억제 기능 규명
이와 함께 10여 년에 걸쳐 마약 중독에 대한 침술의 효과와 그 신경 기전을 연구해오고 있는 김희영 교수는 한의학에서 정신질환에 활용돼 온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의 신문혈이 중추신경계의 어떤 경로를 거쳐 중독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전통침술의 효과를 매개하는 척수신경의 신호전달 체계를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수기법을 객관화하기 위해 김희영 교수는 모바일기기 진동용 모터를 활용, 탄법(彈法)’을 구현하는 의료기기인 ‘전동침’을 활용해 말초에서 시작된 전통 침술 자극 신호가 척수로 전달되었을 때 코카인 약물행동 억제 여부를 관찰했다.
김희영 교수는 쥐 실험을 통해 신문혈 자극 시 말초신경의 A-fiber를 자극하는 Lateral hypothalamus(외측 시상하부), Lateral habenula(외측 고삐핵)의 감각신경계를 통해 VTA, NAc 등의 뇌 보상회로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위해 개발된 진동침은 현재 버전 4까지 만들어졌으며, 이는 시술자마다 시술자의 효과 편차가 적고, 높은 재현성을 가지고 있는 의료기기인 만큼 중독질환을 포함한 침구학 임상에 적극 활용될 것으로 사료되며, 전통적 수기법을 과학화한 최초의 임상기기로 산업화와 직접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수소음심경의 경혈이 마약중독을 억제한다는 것에 대한 규명은 한의계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앞으로 한의학 기반 중독제어 전자약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한의가 전자약 기반 산업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