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환 시중한의원장(서울시 종로구)
침구의학은 수천 년의 세월동안 다양한 이론을 반영하여 발전했다. 초기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오행학설이 도입되기 전에는 11개의 경맥이 있었고 상한론(傷寒論)의 육경(六經)이란 족육경(足六經)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육기(六氣) 중심이었던 경맥은 후대로 내려갈수록 오장육부 중심으로 관점이 바뀌었으며 현재는 12경맥의 흐름이 수태음폐경맥부터 족궐음간경맥까지 상하(上下)를 오가며 한 개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구성이 돼 있다.
그러나 초기 의서인 <천금요방>(652년)에는 사지의 경혈을 12경맥에 배속하여 분류했지만 머리와 몸의 경혈은 경맥에 배속하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가운데에서 바깥의 순서로 경혈을 취혈했다.
즉 사지와 몸통의 경혈을 따로 분류하고 취혈 순서도 달라서 현재와는 전혀 다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외대비요>(752년)에서는 모든 경혈을 12경맥에 배속하여 재분류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12경맥 경혈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동인경>(1026년)에서는 <천금요방>과 <외대비요>의 두 가지 분류법을 모두 사용해 상하권에 나누어 경혈을 따로 따로 기재했다. 이후 <천금요방>의 분류법은 사라졌으며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12경맥의 모습은 <성제총록>(1117년)에서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전해오는 경혈의 취혈법은 본래 <성제총록> 이전 시대인 <천금요방> 등에서부터 기록된 문장들이다. 침금동인으로 검증한 바에 따르면 본래 이 문장들은 앞 경혈과 뒤 경혈의 취혈법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천금요방>이나 <동인경>의 순서대로 앞의 경혈을 기준으로 다음 경혈을 취혈해야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이는 머리와 몸통의 경혈에서 특히 중요하다. 그런데 <외대비요>나 <성제총록> 등에서 머리(頭部)와 몸통(體幹)의 경혈들을 12경맥의 배속에 따라 재분류하고 순서를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대략 이 시점부터 경혈 취혈의 순서가 바뀌기 시작했으며 분촌(分寸)의 수치도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취혈이 왜곡된 경혈 중에 대표적인 경혈로 천충(天衝·GB9)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천충(GB9)은 솔곡(GB8)의 다음 경혈로 순서가 정해져 있는데 천충(GB9)의 취혈법은 <천금요방>에 “天衢在耳上如前三寸”로 돼 있다.
여기서 ‘如前’은 앞 문장을 뜻하는데 <천금요방>에서 앞 경혈은 현리(懸釐·GB6)다. 현리(GB6)는 곡주섭유의 아래끝 모서리(懸釐在曲周顳顬下廉)에 있다고 설명돼 있다. 따라서 천충(GB9)은 “귀보다 위에 취혈하는데 현리(GB6)의 취혈법과 같이 곡주섭유 아랫면에서 취혈하고 현리(GB6)에서 3寸 떨어져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이다.
<천금요방>에서는 현리(GB6)였던 ‘如前’穴이 점점 솔곡(GB8)으로 바뀌게 되었고 원문에 “三寸”이었던 취혈법도 후대의 서적에서는 “三分”으로 점점 바뀌게 되어 천충(GB9)의 정확한 혈위는 찾을 수 없게 됐다.
현재 <WHO/WPRO 표준경혈위치>의 천충(GB9)은 귀 위 솔곡(GB8)에서 0.5촌 뒤에서 취혈하고 있다. 침금동인의 천충(GB9)은 현리(GB6)에서 3寸 뒤에 있는데 내의원에서는 <천금요방>의 내용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