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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인류세의 한의학 <29>

인류세의 한의학 <29>

키리바스 통신 II

 김태우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태우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키리바스는 멀다. 그 태평양의 섬나라까지 가려면 비행기를 세 번은 갈아타야 한다. 인천에서 호주로, 호주에서 피지로, 피지에서 키리바스 수도가 있는 타라와(Tarawa) 섬으로 네 곳의 공항을 거쳐야 도착할 수 있다. 필자가 기후와 건강의 관계에 관한 현장연구를 진행한 마라케이(Marakei) 섬까지는, 타라와에서 또 한 번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한다. 비행기를 세, 네 번 타야하니 중간 경유지에서 숙박을 하면서 가야 한다.


키리바스는 멀지만, 만약 직항 노선이 있다면 비행기로 어림잡아 8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도상의 거리는 인천공항에서 하와이나, 인천-우즈베키스탄과의 거리와 비슷하다. 타라와는 적도 바로 위에 있기 때문에 직항이 있다면 남반구의 호주와 피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길을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가상의)직항 비행 시간에도 불구하고, 키리바스는 멀다. 키리바스가 먼 것은 거리보다는, 가는 길이 어렵기 때문이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갔다가 다시 북반구로 올라오는 길을 거쳐야 한다. 또한, 연결 비행기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는 길에 숙소를 잡고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부친 짐을 다시 찾고, 잠깐 머무른 호텔에서 풀었다 다시 싸고, 다음 경유지에서 싼 짐을 다시 푸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 나라가 먼 것은, 결국 한국을 포함한 키리바스 바깥에서, 자주 찾아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나먼 키리바스

 

키리바스가 먼 것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돌아 가는 길도 길이지만, 가는 길에 익숙한 장면들이 사라지고, 익숙한 느낌들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것이 키리바스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생경함이 거리감으로 드러난다. 익숙하지 않음은 곧잘 불편함으로 또한 드러난다. 한국과, 현장연구를 진행한 마라케이 사이 익숙하지 않은 부분들, 편하게 느끼지 못하는 부분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마라케이에는 에어컨이 없다. 섭씨 30도가 기본인 열대지방의 고온에도 그 섬에는 에어컨을 찾아볼 수 없다. 여름에 에어컨 가동이 당연시 되는 장면이 끊어지는 부분이다. 또한 수돗물이 없다. 집안에서 수도꼭지를 열면 쏟아지는 수돗물의 익숙함이 마라케이에는 없다. 화장실도 드물고, 특히 물을 내려서 용변을 흘려보내는 수세식 화장실은 거의 없다.

 

키리바스가 먼 것은, 한국과 키리바스에서 느끼는 익숙함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공유되지 않는 익숙함이 거리를 만든다. 익숙하지 않음은 직항이 없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키리바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생각한다면 방문객이 많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익숙함의 공유가 전제되어야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키리바스에는 건물도 다르다. 마라케이 사람들의 집은 부이아라고 한다. 지열을 피하기 위해 땅과 거리를 둔 평상 같은 구조에, 팬더너스 나무 잎들이 무성하게 덮여 지붕을 이룬 전통양식이다. 열대지방의 열기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의 구조와 자재로 만들어졌다. 부이아는 단촐하다. 그 집에는 수납공간이 없다. 벽이 없기 때문에 수납공간을 만들기 어렵다. 열대 지방에서 소유보다는, 바람이 들게 하여 열기를 식히는 것이 우선한다. 마라케이에서 익숙하지 않은 장면들 중의 하나는 경계를 나누는 것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집에 담이 없고, 가옥에 벽이 없다. 길을 가다가도 집 안이, 방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그 사람하고 “담” 쌓고 지낸다,” “대화에 “벽”을 느낀다”와 같이 물질적, 비물질적 경계 짓기에 사용하는 물리적 형태가 없다보니,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그런 경계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마라케이 사람들로부터 받은 놀라운 환대도 그러한 경계 없음에 대한 생각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김태우_2445.jpg

 

 

먼 곳에서도 익숙한

 

머나먼 키리바스에서도 익숙한 것들이 있었다. 플라스틱과 비닐이었다. 그것들은 쓰레기 처리시설이 없는 키리바스에서 특히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익숙하지 않은 키리바스에서, 눈에 띄는 익숙한 것들은 그것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에서 일상으로 쓰고 버리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키리바스에는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시설이 없다. 비닐 공장도 없다. 플라스틱과 비닐은 수입품의 경로를 타고 들어와서, 더 이상 키리바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키리바스에 도착한 다음날 피지에서 사온 물이 동이 날 때쯤, 타라와의 한 가게에서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을 살 수 있었다. 그것은 정수한 물이었고, 중국에서 수입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먹는 물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키리바스에서 만난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이 반가웠다. 익숙한 물건을 만난 것이다. 키리바스에 있는 동안 필자가 구입한 물병은 모두 키리바스 바깥에서 왔다. 중국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피지에서 왔다는 문구가 물병을 싸고 있는 비닐에 찍혀 있었다(키리바스에서 지내면서 빗물, 끓인 우물물을 주로 마시게 되었지만, 물병에 든 판매하는 물을 사야할 때도 있었다).

 

또한 익숙한 것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었다. 부이야와 마니에바(커뮤니티 모임을 위한 전통 가옥양식)가 아닌 건물이, 특히 수도가 있는 타라와 섬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양철 지붕에 벽돌로 된 현대식 건물은, 하지만 키리바스와 같은 고온의 열대 지방에서는 취약한 구조였다. 마라케이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타라와에서 임시로 머문 카톨릭 수도원은 현대식 건물이었는데, 그전에 머물던 부이야와 온도 차가 컸다. 수도원에서는 열기에 몇 번이고 선잠을 깨야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현대식 건물은 에어컨을 필요로 했다.

 

산호초 섬인 타라와에, 길게 난 섬 모양을 따라 길이 나있다. 키리바스 인구의 과반이 밀집해 있는 남타라와에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왕복 2차선 길 위에 오토바이, 자동차가 달린다. 이 내연기관을 단 이동 수단도 익숙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전기차는 찾아볼 수 없다. 발전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차는 다른 나라 이야기이다.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

 

익숙한 것들은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것들이었다. 머나먼 키리바스에도 익숙한 것들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내게 익숙한 것들은 기후·환경문제를 심화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비닐, 플라스틱, 그리고 에어컨이 필요한 현대식 건물이 그러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 사용 자동차, 오토바이가 그랬다. 필자가 키리바스에 간 것은 기후위기가 태평양 도서국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WHO 사업에 참여하면서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키리바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현대적 변화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상으로 사람들을 편입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근현대화, 세계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편하게 생각하는 일상을 전 세계가 공유하는 방향성을 가진다. 그 중에 많은 부분은 기후위기를 심화하는데 동참하게 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쓰레기는 “어떤 것의 생산량이 자연의 [흡수]분해 능력을 웃돌 때” 생겨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근현대 문명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상을 지구 구석구석까지 전파하는 존재양식의 세계화를 실천한다.

 

마라케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네 번의 비행기를 탔다. 마라케이에서 타라와로, 타라와에서 피지로, 피지에서 일본 나리타를 거쳐, 드디어 인천에 도착 하였다. 비행기 일정을 맞추기 위해 타라와, 피지, 일본에서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쌌다를 반복했다. 마라케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익숙함으로의 이동 경로였다. 일본 나리타 공항 근처 호텔에서의 익숙함은 우리가 한국에 근접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호텔 1층 편의점에는 비닐과 플라스틱에 담긴 음료수, 음식, 상품이 넘쳐났다(키리바스 통신 III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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