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강현구 기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야 후보가 인구문제 전담 부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가운데 실효성 있는 인구 정책 추진을 위해선 관련 법률의 재정비를 통해 부처 역할의 명확한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처장 박상철)에서 발간하는 ‘이슈와 논점’ 2226호에 고영준 행정안전팀 입법조사관은 이 같은 내용의 ‘인구감소 시대, 인구 전담 부처 설치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한 연구보고서를 16일 게재했다.
지난 ’05년 저출산 현상을 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정부는 민간과의 역량을 연계하고, 부처 간 협력을 중심으로 저출산에 대응하고자 컨트롤타워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립해 현재까지 인구정책을 총괄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23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계속 감소해 ’23년 0.72명이라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합계출산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최근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는 여당은 ‘인구부’, 야당은 ‘인구위기대응부’ 등 인구 전담 부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시도지사협의회는 균형발전에 방점을 둔 ‘인구지역 균형발전부’ 신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고영준 조사관은 “정책적 중요성과 정치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인구 전담 부처 신설의 구체적인 방향성과 조직안은 부재한 상황”이라며 “결국 전담 부처의 설치가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인구 위기 문제를 극복할 적합한 대응책이 될 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보다 강화된 정책 간 연계와 부처 간 협력을 추진하고자 ’23년 저출산고령사회위 산하로 인구정책 범부처 상설협의체인 ‘인구정책기획단’을 출범,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인구구조 변화 대응’ 분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고 조사관은 “자문위원회인 저출산고령사회위는 대통령 직속 기관임에도 ‘행정기관위원회법 시행령’ 제2조(협의대상 위원회의 범위 등) 제2항에 따라 정책 심의 권한만 갖고 있을 뿐 집행권과 예산권이 없다”면서 “저출산고령사회위는 각 부처의 정책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고, 부처 간은 물론 중앙·지방 사이를 연계하는 역량이 부족한 컨트롤타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 정책 책임성 확보·현장 중심 연계 시스템 구축
고 조사관에 따르면 ’22년 합계출산율 1.26명을 기록한 세계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은 같은 해 ‘아동기본법’과 ‘아동가정청설치법’을 제정하고, ‘아동가정청(こども家庭庁)’이라는 새로운 독립 부처를 설립, △저출산 정책 일원화 △다른 부처의 아동 관련 정책에 권고권을 부여해 통합적인 시각에서 저출산 정책을 실시하도록 도모하고 있다.
또 EU 내 합계출산율 1위를 기록하는 프랑스는 중앙부처인 ‘노동보건연대부’를 중심으로 장·단기 인구정책 계획을 수립·실행하고, ‘CNAF(가족수당기금공단)’이 전국 100여 개의 지역사무소를 통해 △각종 수당 지급 △보육 관련 서비스 등을 수혜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등 현장 중심의 일원화된 재정 지원과 사회서비스 공급원을 구성해 효과적으로 집행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복지국가이자 저출산 현상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스웨덴은 ‘보건사회부(Socialdepartementet)’를 중심으로, 사회복지, 보건, 사회서비스, 노인·사회안전 등 각각을 담당하는 장관이 정책을 총괄·감독하도록 했으며, 보건복지청, 사회보험청, 연금청 등 부문별 산하 책임 기관이 세부 정책의 집행을 맡도록 했다.
이에 대해 고 조사관은 “해외 주요국들의 인구정책 추진 체계와 부처는 특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정책의 책임성을 확보하고, 현장 중심의 연계를 추구할 수 있는 각자의 방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인구 문제의 해결이 전담 부처의 설치 자체가 아닌 정책적 책임성 담보와 유기적 정책 추진 체계를 구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전담부처의 역할·관련 제도 재정비 전제돼야”
고 조사관은 제22대 인구 전담 부처 설치 시 쟁점 및 고려사항으로 △인구 전담 부처 신설의 당위성 검토 △부처 간 업무 재조정을 통한 전담 부처의 역할 설정 △관련 법률·제도의 정비를 통한 명확한 근거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 조사관은 “제22대 총선 공약으로 인구정책의 집중적 추진을 위해 전담 부처 설치가 제시되고, 지역균형발전이나 이민정책 등과의 연계 역시 주장됐지만 우리나라 인구 문제의 특성을 바탕으로 기존 추진 체계의 한계가 무엇인지 전면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하고,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인구 전담 부처의 신설이 과연 당위성을 갖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인구 전담 부처 설치 시 인구 문제가 보건·복지, 교육, 고용, 지역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해 부처 간 전면적인 업무 재조정을 실시하고, 인구 전담 부처만의 역할과 권한을 설정해야 한다”면서 “인구정책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지역균형·발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신설 논의가 있는 이민청 등 개별 정책 부처들과의 업무를 어떻게 조정하는가가 주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조사관은 특히 “우리나라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은 협업의 책무성을 확보할 규정이 없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는 각 과제 단위로 세부 정책이 집행되기 때문에 부처 간 역할과 책임 구조가 명확하지 않아 개별 사업을 넘어서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기획하고, 추진할 유인책을 갖기 어렵다”면서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전담 부처의 업무 범위, 권한, 부처 간 협력 메커니즘 등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면 인구 전담 부처의 정책적 책임성과 안정성을 보장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구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조사관은 아울러 “인구 전담 부처의 설치는 정치적 어젠다로 소모될 것이 아닌 인구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접근이 돼야 한다”면서 “기존 인구정책의 한계를 분석하고, 이에 기반한 전면적인 인구정책 추진 체계 재설계를 통해 인구정책의 합리성과 전담 부처 설치의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면 인구 위기를 극복할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