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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일)

백유상, 정혁상

경영

백유상, 정혁상

근세 이전 한의학 속의 해부학(Ⅰ) - 측량 기록을 중심으로



한의학 醫書에 나타난 五臟六腑의 측량 기록과 형태 등은 현대 해부학의 내용과 비교할때, 실제 해부 과정을 통해서 인식한 결과

經絡論과 臟腑論 등 한의학의 핵심적인 이론들과 연결하여 설명하고자 한 구조-기능 결합의 인체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 - 한의학 醫書





지난 기고문까지 근현대 한의학 속에서 해부학이 어떻게 교육되고 연구되어 왔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이때의 해부학은 서양에서 도입된 Anatomy를 의미한다. 근세 이전의 한의학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Anatomy의 범위를 넘어선 광의의 해부학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다. 광의의 해부학이란 개념적으로는 인체의 구조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찰을 통하여 인식하려고 한 모든 노력의 결과물이라 정의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결과물들은 인체의 여러 생명 현상과 기능들을 설명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근세 이전 한의학 역사 속의 해부학은 내용 상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주요 한의학 문헌 기록에서 실제 인체 구조를 설명하거나 골격, 오장육부 등을 측량한 내용이며, 둘째는 본격적인 해부 시행을 통하여 관련 기록들을 남긴 경우이며, 셋째는 특수 분야의 기록들로 외과 분야에서 처치를 목적으로 시술한 내용들과 법의학 분야에서 검시를 한 기록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3부류의 기록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靈樞’의 「骨度」나 「平人絶穀」에 나오는 인체 각 부분의 길이, 위장관 계통의 길이, 직경, 용량 등은 실제 해부를 거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실제 측량 결과와 매우 유사하며, 외과와 법의학 분야도 결국 이러한 인체 구조 관련 지식들을 응용하여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본격적인 해부’란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거나 혹은 개인적인 목적에 의하여 인체 구조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체를 대상으로 해부를 시행하고 그 결과물로서 臟腑圖 또는 설명을 남긴 경우를 말한다. 기록이 많지는 않으나 고대부터 이미 이러한 해부가 시행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漢書」 「王莽傳」의 기사와 이후 북송 시대 범진(范鎭, 1007-1087)의 「東齋記事」에 보이는 歐希範의 해부기록, 조공무(晁公武, 1140 전후)의 「郡齋讀書志」 後志에 나오는 「存眞圖 一卷」의 해제에 보이는 崇寧(1102-1106)연간의 해부기록 등이 있다.



본 기고에서는 우선 「黃帝內經」과 「難經」 등 주요 초기 의서들에 나오는 해부학 관련 내용들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주요 해부 기록 및 관련 자료들을 바탕으로 동양의 해부 프로세스를 복원해 보며, 끝으로 외과 및 법의학 등의 특수 분야의 인체구조 지식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靈樞」 「骨度」편에서는 사람의 신장을 7척 5촌으로 정하고 머리, 흉곽, 허리 등의 둘레와 인체 각 부분의 골격 길이 등을 상세히 기재하고 있다. 이 편에 나오는 顱, 頤, 缺盆, 𩩲骬, 橫骨, 輔骨, 膝, 膕, 跗屬, 柱骨, 季脇, 髀樞, 京骨, 完骨, 指本節, 膂骨, 尾骶 등은 측정을 위한 특정 지점의 명칭들인데, 인체 내부의 분절된 단위의 구조라기보다는 주로 체표에서 인지되는 것들이며 실제 고증을 거친 결과 12經絡의 길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骨度」편의 수치들이 측량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어 經絡의 기능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한의학에서 骨의 명칭들은 낱개로 분리된 내부 구조의 단위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촉지나 운동의 기능적 단위로 묶어져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靈樞」 「平人絶穀」과 「營衛生會」에는 胃, 小腸, 廻腸, 廣腸 등 소화기관 각각의 둘레, 직경, 길이, 용량, 형태, 위치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 고증을 해본 결과 현재 해부학적 지식에 매우 근접하였다. 단, 일반적으로 大腸으로 알려진 廻腸, 廣腸과 小腸과의 관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길이와 형태 등에 따라서 小腸과 大腸의 경계를 확정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이러한 小腸과 大腸의 해부학적 관계는 기능적 측면에서 大小便의 생성 및 膀胱, 腎, 胞, 脬 등의 역할을 규정하는 데에 중요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상 「內經」의 해부학적 지식들이 주로 伯高와의 대화에서 많이 등장하며, 해당 편에서 大腸이라는 일반적인 명칭보다는 廻腸, 廣腸이라는 좀 더 분화된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또한 「平人絶穀」편의 내용은 어느 정도 분량의 水穀이 인체로 들어와 얼마의 시간이 경과하여 소화되는가의 생리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해부지식 습득의 목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內經」 중에는 五臟에 대하여 「平人絶穀」편과 같이 구체적인 해부학적 기록은 보이지 않는데, 이후 「難經」 42難에서 처음으로 五臟의 형태, 무게, 길이 등을 기술하였다. 「難經」 이후로는 「十四經發揮」, 「醫學入門」 등의 의서에서 이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더하였는데, 예를 들어 「難經」에서 肺에 대하여 “肺重三斤三兩, 六葉兩耳, 凡八葉, 主藏魄.”이라 한 것에 대하여 「十四經發揮」에서는 “六葉兩耳,四垂如蓋,附著於脊之第三椎中,有二十四空”이라고 하여 제3척추 높이에 붙어있으며 24개의 구멍이 있다고 설명하였고, 「醫學入門」에서는 여기에 “下無竅”라는 설명을 추가하여 해부학적인 형태를 더욱 명확하게 기술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한의학 醫書에 나타난 五臟六腑의 측량 기록과 형태 등은 현대 해부학의 내용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분명히 실제 해부 과정을 통하여 인식한 결과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단순한 관찰 결과가 아니라 經絡論과 臟腑論 등 한의학의 핵심적인 이론들과 연결하여 설명하고자 한 구조-기능 결합의 인체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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