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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인류세의 한의학 <31>

인류세의 한의학 <31>

키리바스 통신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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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키리바스에서 우리가 진행한 WHO 프로젝트는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한 기후와 건강 회복력 대책 조사”라는 제목의 연구였다. 기후위기가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직접적 문제를 야기하는 남태평양의 도서국가들에서는 보다 실제적인 연구 질문을 던져야 했다. 먼저, 각 섬 주민들이 어떻게 기후변화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연구의 첫 번째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 위에서 키리바스의 사회적 문화적 조건 위에서 받아들일 수 있고, 추진 가능한 기후와 건강 관련 대책을 찾아보는 것이 두 번째 내용이었다. 인류학적 현장연구로 진행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필자와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 교실의 의사/인류학자인 박영수 교수가 현장에서 키리바스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진행이 되었다. 


기후 문제에 관한 프로젝트

 

키리바스는 수도가 있는 타라와(Tarawa) 섬과 3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라와에 키리바스 전체 인구의 반 정도가 살고 있고, 나머지 섬에 반 정도가 기거하고 있다. 타라와는 남타라와와 북타라와로 나뉘는데 특히 남타라와에 키리바스 전체 인구의 반이 모여 산다. 남타라와는 급격하게 근대화되고 있는 섬이다. 실제 남타라와에는 늘어나는 자동차로 교통체증이 있을 정도다. 오지라는 인상으로 다가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의 섬이지만, 근대적 변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곳이다. 

남타라와에서는 기후위기 관련해서 큰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식수 문제가 키리바스의 대표적인 기후 관련 문제이다. 강이 없는 산호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 공급을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의 유입은 키리바스 사람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남타라와에서는 해수담수화 플랜트가 건설 중에 있다. 호주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 사업을 위해 많은 호주 사람들이 타라와에 머물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해수담수화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수도 바깥의 섬들(키리바스에서도 외섬(outer islands)이라고 부른다)에는 실행되기 어려운 사업이다. 각 섬마다 모두 해수담수화 플랜트 같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구한 내용도 외섬에 거주하는 키리바스 사람들의 기후문제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 사회적으로 적용가능한 응대 방법 찾기였다. 마라케이(Marakei)라는 남타라와에서 배로 2시간 반 정도 떨어진 섬에서 현장연구를 진행하였다. WHO와 키리바스 보건부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여서, WHO 직원이 현장연구에 참여하였고, 필요할 경우 통역의 역할도 맡아 주었다. 영국 식민지였던 키리바스에서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토착어인 이키리바스(i-Kiribati)만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키리바스에서의 국제보건기구 사업은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안점이 있었다. 우리는 응용인류학의1)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하였다. 마라케이섬에서 기후위기는 바로 체감된다. 땅이 줄어들고, 생물들이 죽고, 식수가 없어지고 있었다. 특히, 물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마라케이에서 바다가에 사는 것은 좋은 터전에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좋은 터와 그렇지 않는 곳의 개념을 바꾸고 있었다. 마라케이에서 가장 큰 마을은 라완나위(Rawannawi)이다. 우리가 탄 배가 도착한 곳도 라완나위이고, 우리가 머물렀던 마라케이 카운설(Marakei Council, 읍사무소 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도 그 마을에 있었다. 라완나위는 섬 반대편의 마을보다 바람이 덜 불고 파도도 강하지 않았다. 무역풍이 부는 반대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완나위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쉬웠고, 생계를 위해 생선을 잡는 마라케이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이러한 라완나위의 입지의 장점은 기후변화와 함께 약점으로 역전되고 있었다. 바다에 바로 면해서 사는 것은 해수면 침식과 소금기가 높아지는 우물물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 현장조사에서 라완나위에서 만난 인터뷰이들은 바로 앞의 바다를 가르키며 저기 집들이 있었다, 저기 나무가 있었다라고 열심히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애절해 보이는 인터뷰이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아도 필자에게는 바다 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람들은 다른 것 같았다. 여전히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위치했던 집들과 나무들을 기억 속에서 보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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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지구 이주민과 기후변화 이주민

 

인터뷰를 하면서 필자는 한국의 수몰지구를 떠올렸다. 물관리를 위해 대형 댐을 건설하고 인공호수를 만들면서 집과 터전을 떠나야했던 이주민들을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수몰지구 이주민이 자기 집이 있던 곳을, 이제는 인공호의 물로 차 있는 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장면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한국과 키리바스의 이주민 사이 비슷한 점들도 있다. 정든 터전을 이주민들은 떠나야 했다. 선택이 많지 않은 것도 유사했다. 못 떠나겠다고 버틴다고 정해진 수몰지구가 바뀌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정작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들이 결정을 하지 않은 것도 비슷했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정한 것을 수몰지구 주민들은 수동적으로 접수할 수밖에 없었다. 키리바스에서도 기후 이주민들은 수동적으로 이주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공히 물속에 집들이 잠겼지만, 한국과 키라바스의 이주민 사이 차이점도 있었다. 하나는 합의가 있었고, 하나는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수몰지구 이주민들은 좋든 싫든 떠나는 것에 동의를 했고 그래서 수몰지구가 만들어졌다. 키리바스에서는 합의가 없었다. 밀려오는 바닷물에 땅을 내주고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 또한 차이는 결정자와 이주민의 거리에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멀리 있다고 해도 결정자는 한국 안에 있다. 국토부에서 결정했다면 그 결정의 행위자는 서울에 있었다(대부분의 수몰지구는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하기 전에 결정되었다). 국내에 있었다. 하지만 키리바스 이주민의 이주를 결정한 사람은 대다수가 아주 멀리 있다. 해수면이 상승할 때까지 온실가스를 뿜어내는데 있어, 키리바스 사람들의 기여가 매우 미미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키리바스 사람들을 이주하게 한 결정자는 키리바스 국내에 있지 않았다. 대부분 북반구에 있는 큰 공장을 운영하고 자차를 모는 사람들이다. 온실가스 배출 13위인 한국과 한국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차이는, 한국에서는 수몰지구 사람들이 그래도 갈 데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그만 섬나라 키리바스에서 그것도 안쪽에도 바다가 있는 환상(環狀)의 산호섬에서 당장 바닷가를 떠나더라도 사람들에게 갈 곳의 여지는 많지 않다. 

 

앞에 있던 나무들과 집들이 없어졌다는 것은 그 인터뷰이들이 이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터뷰이 중에는 과거의 바닷가 집이 잠기고 내륙으로 이동한 자신의 지금 집이 이제 바로 바다 앞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집이 최전선이면서, 또한 그것은 본인들의 우물을 더 이상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실제 바닷가에 면해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우물을 포기하고 내륙2) 쪽에 있는 친척과 친구 집 우물에서 식수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빗물 탱크에서 물을 받아서 쓰는 사람도 많았다.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라케이의 곳곳에는 빗물 탱크가 있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식수를 얻고 있었다. 키리바스에서 수몰은 집, 나무를 잠기게 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이 식수를 수몰시키기도 한다(키리바스 통신 Ⅴ에서 계속). 


1) 응용인류학은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포커스 된 방향성을 가진다. 기업에서 기업 문화와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인류학적 연구를 요청하기도 하고, 특정 지역에 특히 유병률이 높은 질병의 이유와 그에 대한 대책을 찾기 위해 인류학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는 것은, 응용인류학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2) 바닷가와 멀리 있는 쪽이라고 해도 사실은 “내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안쪽에도 라군(lagoon)이 있는 앞뒤로 바다가 있는 산호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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