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한의진료 전화상담센터(이하 한의진료센터)’가 대구에서 시작을 위한 준비에 있을 때, 저는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대구한의대학교 부속 한방병원에서 하고 마침 가까이에 살고 있었기에 부담 없이 지원하게 됐습니다.
한의진료센터 운영 첫날 전, 동기들과 함께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일을 시작했고, 이 센터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는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주어진 것에 열심히 하자’라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한의진료센터에서 저는 확진자들의 전화를 받는 예진부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처음 시작한 며칠 동안은 걸려오는 전화가 많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진료를 보신 분들을 통해 한의사 선생님들과 학생 봉사자들의 노력이 알려지게 됐고, 한의진료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량이 4배 이상 늘게 됐습니다. 그 날부터 본격적으로 한의진료센터의 역할이 시작됐습니다.
‘한의학이 한의진료센터를 통해 확진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든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한의진료센터가 알려지다 보니 확진자들의 전화가 늘고 한약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아졌습니다. 이후 병원과 격리시설에서 한의진료센터의 역할을 알게 됐습니다.
협회가 아닌 제 이름으로 택배 보내기 시도
하지만 한약이 들어있는 택배를 받지 못하는 병원과 격리시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시설 중에는 확진자들이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하는 곳들도 있어 격리된 확진자들 사이에서는 더욱 한약을 받고 싶어 하셨습니다.
예진부에 근무하며 이런 어려움에 처한 확진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저는 ‘이 약이 필요한 환자에게 도착해서 몸이 회복되는 것이 먼저다’라는 생각에 협회가 아닌 제 이름으로 택배를 보내는 것을 시도했습니다. ‘약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면 한 곳이라도 더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택배를 받지 못하는 시설에 있는 확진자들이 한약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동원했고, 결국 그 택배가 격리된 환자들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빨리 약을 먹고 회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구지역이라면 대부분 직접 배달을 했습니다. 배달을 다녀온 학생봉사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에 많은 곳을 빠르게 다녀와야 했던 어려움, 자가격리자가 인기척에 나오는 돌발 상황들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환자들이 빨리 회복하길 바라는 진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봉사자들의 마음이 더해져 이루어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오신 한의사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고 계시던 진료를 잠시 내려두고 확진자들을 위해 한의진료센터를 방문하셔서 최선을 다해 진료하시는 모습들이 제게 아주 큰 울림을 줬습니다.
한의학 필요한 곳에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저는 학생이었고, 개강 전이었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지만 한의사 선생님들께서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다 감안하고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한의사가 되었을 때 ‘선생님들의 이런 희생정신을 본받아 한의학이 필요한 곳에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또, 선생님들의 전화 진료를 옆에서 보면서 의료인으로서 치료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와의 소통과 공감도 중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생봉사자들과 선생님들의 이런 노력 덕분에 환자와의 통화 때마다 ‘몸이 회복된 것 같다’, ‘기운이 나는 것 같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고, 한의학의 힘을 느끼며 보람차기도 했습니다. 특히, ‘약을 먹고 음성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한의학에 대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러 코로나19가 대구에서는 조금 잠잠해지는 한편,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점차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 대구에 있던 한의진료센터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정되었고, 옮기는 과정에서 대구센터의 소수 학생봉사자들이 서울센터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서울센터를 도와주실 직원분들과 학생봉사자들의 교육, 그리고 전반적인 체계에 관한 보완 등 준비를 했습니다. 다음 학생대표를 맡게 된 박수나 학생과 저는 서울센터와 학생봉사자들의 역할을 다시 고민하고 서울센터에 맞도록 수정해 나갔습니다.
대구센터에서의 경험 덕에 쉽게 안정화 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오는 많은 전화와 서울센터에는 이 일을 처음 겪는 봉사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많은 확진자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이 감염병 치료방법이란 인식 심어줘
대구센터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같은 마음을 가진 학생봉사자들이 많았기에 서로를 보며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쉬고 몇 주 후에 다시 돌아갔을 때도 같은 마음과 모습으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겪어오면서 임상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개강하기 전 그리고 실습하기 전이었기에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한의진료센터에서 봉사하며, 진료 후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컨퍼런스를 지켜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컨퍼런스에서 하시는 이야기들을 통해 임상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적용되는 모습과 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까지도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센터에서 새로이 느낀 것은 한의학의 미래였습니다. 많은 한의대생, 한의사 선생님들이 이 한의진료센터에 봉사하러 왔고, 그것이 확진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특히 감염병에 대해 한의학이 하나의 치료 방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한의진료센터를 시작으로 한의학이 계속 발전하기를 바라며, 만약 다음에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그때는 지체 없이 치료하고 처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