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동 원장
서울 영등포구 행파한의원
전 상지대 한의과대학 교수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약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약점과 강점을 면밀히 분석, 다양한 질환 치료에 큰 효과를 발휘하며 영구적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는 말
어느 분야나 약한 부분(약점)과 강한 부분(강점)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약점을 감추고 강점을 더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나 관심과 달리 약한 부분이 결정적 타격을 준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the weakest link)가 결정한다. 이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전체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공격수가 있는 축구팀도 수비가 약해 실점을 많이 하면 패하게 된다. 결국 쇠사슬이든 축구팀이든 이외의 분야도 가장 약한 고리가 운명을 결정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는 물론 한의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의계는 코로나19에 대한 특별한 의학적 공헌도 없이 여러 면에서 피해만 입고 있다. 한의계의 가장 약점인 감염병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약성은 여기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의학적 근본적 존재 이유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연히 한의학은 의학적 강점이 많다. 상당한 치료효과, 다양한 건강관리법, 올바른 인체관과 의학관, 체질 및 변증의학, 특히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치료수단(한약재, 침 등)을 비롯 오랜 동안 우리 역사와 동고동락 해온 덕에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 문화적 친밀성이라는 많은 강점들이 있다. 이러한 강점은 한의학의 존재 이유이며 한의계의 자랑거리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생존발전 할 수 없다.
정상적인 의학이 갖추어야할 의학적 요소들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의계의 약한 고리가 상당부분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특히 한의계의 약한 고리는 좀 더 근원적이며 핵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2. 약한 고리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래의 내용을 읽기 전에 한의계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분야별로 한의계의 약한 고리를 알아보자. 정상적 의료라면 갖추어야 하는 것들이며 일부는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부분들도 있지만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다.

-기본, 기초자료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근거수준이 높은 연구결과나 data는 모든 것들의 시작점이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바름, 정확함, 엄격함, 시행착오 없음 등을 의미한다. 기본, 기초자료로 한의계의 의학적 역할이나 소비자의 이용률이나 의존도, 경제적 영향력 등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좁게는 한의학적 환자의 증상, 특징이 반영된 근거수준이 높은 자료를 말한다.
최근 들어서야 한의의료 이용률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된 일부 자료가 있을 뿐이다. 특히 임상자료는 대부분이 한두 명, 적은 수의 자료들뿐이다. 이것들은 근거수준이 매우 낮아 대표성이나 재현성이 매우 부족하다. 특히 진단과 치료단계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각 질병별 한의학적 자료가 미흡하다.
예를 들어 각 질병별 인구사회적 특징(성, 연령, 결혼여부, 직업, 수입 등) 이외에 치료와 몸이 냉하고 열하고, 땀이 나고 안 나고, 친인상응(계절성) 등의 순수 한의학적 특징의 자료가 부족하다. 이는 진료가 개인적 단위로(1:1) 진행되고 자료생성을 위한 한의계의 관심이 소홀했기 때문이다. 1;1에서는 질병과 관련한 대표적이고 전체적인 것을 알 수 없다. 환자치료를 위해 반드시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問診, 聞診이 있다. 이것들은 발병과정이나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꼭 확인해야 한다.
이미 준비된 질병별 問診, 聞診자료가 없으면 빠뜨리기 쉽다. 실제로 필자가 조사해보니 1:1상담으로 얻은 것과 상당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결과는 서로 큰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정확하게 진단과 치료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론
한의학의 중요 이론인 해부학, 오장육부의 생리병리, 경락경혈의 실체 및 역할, 각 한약재의 성분과 효과, 2개 이상 약물간의 상호작용, 여러 증상간의 정확한 변증기준(지표)의 부재나 문제는 이미 아는 것들이다. 대부분 정확한 규명이나 실체 확인이 안 된 상태로 치료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게 확인되고 입증된 후에 활용하는 게 원칙이다.
특히 증(증후)을 질병(질병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다. 질병중심으로 전환이 시급하다. 세계의 어느 의학도 증, 증후를 질병으로 보지 않으며 중의학도 이미 오래전에 질병 중심으로 전환하였다. 모든 질병은 원인노출, 질병(발병), 증(증후) 발생의 단계별 순서를 거친다.
예로 코로나19 감염은 다양한 증상을 동반하지만 코로나19 감염증이라는 단일 질병일 뿐이다. 각 증상을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보는 관점은 잘못이다. 또한 일정한 검증절차가 없으며 효과가 확인되지 않고 한의학 이론에 反하는 가설수준의 학설, 이론, 치료법 등은 한의계의 발전에 장애물이며 불필요한 혼란을 준다.
-진단
진단과정에서 유용한 지침서나 표준화된 매뉴얼이 거의 없다. 있어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렇다보니 한의사마다 각자의 관점과 경험 등의 방식으로 진단(변증)한다. 단계나 과정이 다르니 진단도 다르게 된다. 엄청난 수의 변증이 된다. 예로 중의학에서 연구해 보니 건선의 변증종류가 334개, 습진은 124개였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진단(변증)과정에서 환자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환자가 진단과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문진 등 진료과정에서 환자는 일정한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의존도가 클수록 한의사의 주도나 역할이 적다는 점이며 결과적으로 진료의 정확성이 낮게 된다. 환자는 의료나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 비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환자가 기록한 진료부 내용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편인데 방금 전에 기록한 것과 다르게 답하는 환자가 상당수다. 1개월 후에 확인하면 정도가 더 심하다. 환자문진 등 자료들의 정확성이 낮다는 뜻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효과적인 지침서 개발, 근거에 기반 한 한의사 주도의 진단, 이외에도 혈액검사, 영상사진 등의 활용이 필요하다.
한의약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질병이 만성질환으로 원인이 단일하지 않고 다양하며 허실, 허실교차, 한열, 표리 등이 복합되어 정확한 변증이 매우 어렵다. 정확한 변증을 위해서 환자의 여러 증상 중 핵심, 보조 증상도 구별돼야 한다.
왜냐하면 발병이나 악화과정에서 여러 증상의 공헌도(영향력)가 동일하지 않으며 질병과 전혀 상관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병은 필수원인, 충분요인 등이 서로 공동 또는 순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