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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0일 (금)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52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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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개최된 韓國韓醫學觀의 수립을 위한 좌담회

“古方이냐 科學化냐”



1964년 裵元植, 蔡仁植, 尹吉榮, 李殷八, 李基淳 등 5인은 한자리에 모여서 ‘韓國韓醫學觀 樹立에 對하여’라는 제목의 좌담회를 개최한다. 이들이 이날 진행한 좌담회의 내용은 『醫林』 42호에 게재되어 있다.



1964년은 정부에서 전격적으로 한의과대학의 6년제를 결정하여 한의학 부흥에 불이 당겨진 시점이었다. 4년제에서 6년제로 교육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에 상응하여 내용적으로 충실한 한의학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좌담회의 사회자는 裵元植이었다. 裵元植(1914~2006)은 『醫林』의 사장으로서 1954년 이 잡지를 창간한 이래로 이 잡지가 한의학의 학술적 논의의 장이 되도록 솔선수범한 인물이다. 蔡仁植(1908~1990)은 傷寒論 연구의 일인자로서 당시 동양의약대학의 교수였다. 尹吉榮(1912~1987)은 한의학의 과학성을 찾아내어 현대화의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던 동양의약대학의 교수였다. 李殷八(1912~1967)은 古方의 활용을 위주로 치료법을 강구한 인물이다. 李基淳(1919〜?)은 동양의약대학 5기 출신 만학도로서 본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졸업식상에서 현대식 한의학강의를 하는 교수진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말을 하여 파문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본 좌담회에 초빙된 인물들은 당시 한의학계의 오피니언 리더들로서, 이들 모두 주관이 뚜렷한 소신형 인물들이라고 평가되었기에 선임되었다. 논의는 ‘韓醫學觀’에 대해서 시작되었다. 李殷八은 한의학이 해방 후에 발전이 지지부진하여 정체된 원인을 찾아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하며 그 해법의 하나로 먼저 한의과대학에 먼저 原典을 평이하게 현대화시키는 機構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였다. 이에 尹吉榮은 ‘一般性을 띤 한의학’이 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응용해야 하며, 여기에서 과학적 방법론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하는 실증적· 객관성을 깔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尹吉榮은 현대 서양의학이 필요하고 하고 있다.



蔡仁植은 당시 40세 이상의 한의사들이 『醫學入門』과 金元四大家의 저술을 위주로 연구하는 풍토가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기초 이론은 『黃帝內經』, 임상은 傷寒論으로 하는 것이 어떤가하고 제시한다. 또한 이를 위해 대학에 교과서 편찬위원회를 가동할 것도 주장한다. 가장 연배가 적은 李基淳은 한의학을 基礎와 臨床으로 구분하고, 基礎는 內經學으로 하고 臨床은 傷寒論, 雜病, 婦人科, 小兒科 등으로 분류하며 공통적으로 현대적 과학에 목표를 두자고 하였다.



이어서 사회자 裵元植은 한의학을 발전시킬 실질적 방안을 요구하였다. 이에 蔡仁植은 古方醫學을 바탕으로 金元四大家醫學을 보충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고, 李殷八도 古方醫學의 높은 치료율을 강조하고 古方을 主로 하고 後世方을 從으로 하자고 하였다. 이에 대해 尹吉榮은 한의학을 科學化해야만 한다고 전제를 깔면서 이를 위해 生理學을 토대로 病理學이 전개되어 生理學과 病理學이 상호관계에서 藥理學을 구명해야 기초학이 실증적이며 객관적 합리성을 띠게 된다고 주장한다. 李基淳은 이에 화답하여 한의과대학을 分科를 기초로 하여 발전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본 좌담회는 古方을 주장하는 蔡仁植·李殷八측의 입장과 科學化와 分科를 주장하는 尹吉榮·李基淳측의 양대 입장의 대립적 토론회가 되어버렸지만, 이러한 좌담회는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선배 한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귀감으로 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1964년 의림지에서 주최한 한국한의학관 수립을 위한 좌담회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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