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차례 해외의료봉사 KOMSTA 단원 중 최다
다양한 질병 치료로 임상기법 발전 큰 도움
“시작이 반이다. 일단 한번 참여해 보았으면 한다. 해외의료봉사를 통해 참 많은 것을 얻고 배운다. 특이한 질병에 맞서 새로운 치법을 개발하고, 그것이 곧 국내 임상현장에서 적용되는 등 한의원 며칠 비우는 것 이상의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난 98년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단장 김호순/KOMSTA)의 제11차 베트남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5차례의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온 진선두한의원 진선두 원장.
한의학 의구심 확인 시험무대
KOMSTA 서울지부장을 맡고 있는 진 원장이 처음 해외 의료봉사에 발을 내딛은 때는 1998년이다. KOMSTA의 베트남 의료봉사에 처음으로 동행한 진 원장은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나는 여행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가며 나만을 위한 여행이 아닌 KOMSTA처럼 질병에 신음하는 다른 누구를 위한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이젠 그만 둬야지’ 하면서도 매번 가방을 꾸리게 된다”는 진 원장.
이와함께 그가 해외 의료봉사를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한의학문에 대한 ‘의구심’도 한 몫했다. 수천년 역사동안 오랜 경험을 통해 전수되어 온 한의학이 과연 이 땅, 이 나라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고 마는 의학에 불과한가라는 의구심이었다.
그동안 최고의 학문이라고 자부해왔던 한의학. 그 한의학이 세계 어느 곳, 어느 사람들에게나 희망의 복음처럼 전파될 수 있으리란 반 믿음으로 의료봉사라는 시험무대에 서게 됐다.
그리고 그 반 믿음은 베트남을 다녀온 뒤 ‘확신’으로 변하는 결정적 계기를 맞이했다.
그곳에서 그는 전신 홍반성낭창(紅斑性狼瘡)을 가진 환자를 만났다. 이미 그 환자는 많은 양의 양약을 복용해 당뇨, 고혈압 등 복합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처방은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이었다.
4일간의 집중적인 치료로 그 환자의 병세가 호전됨을 느꼈다. 그리고 귀국 후에도 환자와 계속 연락을 하며 두 번씩이나 3개월 복용분의 약을 보내며 결국 완치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와관련 진 원장은 “한의학의 우수성을 재확인하는 귀중한 계기가 됐다. 내 개인적으로는 어떤 질병, 어떤 환자를 만나건 자신감을 갖고 진료에 임할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첫 번 해외의료봉사에서 자신감을 얻은 진 원장은 이후 키르키즈스탄·캄보디아·몽골·우크라이나·우즈벡스탄·카라칼팍스탄·에티오피아·고르노알타이·네팔·미얀마 등 15차례의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는 오는 11월 또다시 미얀마로 향한다.
만인의 사랑받는 한의학 기원
“처음엔 나도 봉사란 베푸는 것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봉사의 횟수가 늘어나며 새롭게 느끼게 됐다.
봉사란 결코 베품이 아니었다. 내가 타인들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는 것이었다”는 진 원장.
내가 그들에게 제공하고 베푸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해외 의료봉사란다. 특이한 질병의 대처 능력, 한의학의 고마움,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 등 의료봉사는 누구에게 베푸는 것이란 ‘오만(傲慢)’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은혜(恩惠)’를 입는 여정(旅程)이었다.
특히 진 원장은 지난 7월 8일 스리랑카 정부파견의로 근무하다 순직한 고(故) 이상호 원장이 실천하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깊이 간직할 것임을 밝혔다.
“고인의 생전 업적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우리에게서 잊혀진 얘기가 된 것이 정말 안타깝다. 그분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도 의료 불모지에서 신음하는 아픈 사람들을 향한 나의 발길을 쉼없이 재촉하고 싶다”는 진 원장.
국제협력의 및 정부파견한의사 진출, 국제협력 한방병원 건립, 현지 의료인 교육을 통한 한의학 세계화 실현 등 KOMSTA의 이상(理想)들. 그 것들이 하나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 한의학이 만인의 의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찾겠다는 진 원장. 그의 신념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