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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02일 (금)

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27

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27

집단우울증을 극복할 이 시대의 용치탕(龍齒湯)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긴 장마 끝에 청명한 가을을 맞이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봄부터 이어진 신고의 나날을 견딘 끝에 수확하는 기쁨을 돌아가신 조상들의 음덕으로 여기고 모두 함께 나누고자 추석에 성대한 명절상 차림을 준비했다. 

하지만 올 추석에는 유례가 드물게 오래 지속된 역병 탓에 고향방문이나 성묘도 미뤄야 할 참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올 봄에 처음 건너와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지 반년을 넘기도록 쉽사리 수그러들 줄 모르는 기세에 이제 해를 넘기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감염을 막는 일도 시급하려니와 생업에 지장을 받고 집밖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해 우울해진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마침 필자가 맡은 이번 학기 강의주제가 한국의 의안(醫案)을 발굴하는 연구에 대한 것이어서 여러 문헌을 찾아보다가 삼국시대에 있었던 희한한 우울증 치료 사례를 기록한 기사를 읽게 되어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삼국사기 열전(列傳)편, “龍齒湯을 써야한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지은 『삼국사기』에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처럼 열전(列傳)편을 두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김유신을 필두로 을지문덕, 거칠부, 이사부, 장보고 같은 위업을 남긴 장수와, 박제상, 계백 같은 충신, 강수, 최치원, 설총 같은 문장가와 학자, 백결선생이나 김생, 솔거와 같은 예술가, 게다가 후삼국시대의 주역으로 패권을 다투었던 연개소문, 궁예, 견훤과 같은 패왕들에 이르기까지 50여 사람이 등장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기』 편작창공열전에서처럼 의가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 열전 가운데 녹진(祿眞)조에는 기막힌 의안(醫案)이 하나 등장한다. 그 개략은 다음과 같다. “녹진은 23살에 벼슬길에 올라 내외의 여러 관직을 거친 끝에 집사시랑(執事侍郞, 侍中의 차석급)에 올랐다. 헌덕왕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아우인 수종을 세자로 삼고 궁에 들게 하였다. 이 무렵 각간 충공이 상대등이 되어 정사를 논하다가 병에 걸리게 되었다. 관의(官醫, 원문에서는 國醫라 하였음)를 불러 진맥을 했더니, 심장에 병이 들었으므로 용치탕(龍齒湯)을 써야한다고 하였다.”

  얘기를 좀 풀어서 해보자면, 아마도 당시 벼슬을 논하는 일(인사전형)을 진행하다가 주위로부터 여러 청탁과 외압을 받아 걱정이 많았을 충공은 장기간 휴가를 얻어 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녹진이 찾아가 문안을 여쭈는데, “상공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쉬지 않고 정사를 돌보다가 풍로(風露)에 촉상하여 영위(榮衛)의 조화를 잃고 지체(四肢)의 편함을 잃었기 때문이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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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齒는 진경 작용 뛰어나 鬼魅같은 병증 사용 

충공이 어찌된 연유인지는 모르나 정신이 혼미하고 답답하고 불안할 따름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녹진은 “상공의 병환은 약이나 침만으로 다스려지지 않고 지극한 말과 고매한 담론(至言高論)으로 단번에 깨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목수가 집을 지을 때, 각기 크고 작은 재목에 따라 도리나 서까래로 나눠쓰듯이 나라의 인재도 재주와 능력에 따라 역할과 직임을 나누어 써야 한다고 충언을 하였다.  

이에 깨우침을 얻은 충공은 어의의 왕진을 사양하고 곧바로 입궁하여 국왕을 알현하고서 직언을 올린 다음 다시금 정사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충공이 우울증에 시달린 원인은 아마도 살아있는 권력인 국왕과 후계자로 지명된 세자의 주변 세력으로부터 야기된 복잡한 갈등관계로 빚어진 것이리라. 결국 국왕에게 간언을 올리고 세자를 설득하여 당면문제를 정면 돌파하고 나서야 마음의 병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셈이다.

  용치탕(龍齒湯)은 심허증을 다스리는 처방으로 여기서 용치란 용의 뼈라고 알려진 용골의 일종이다. 고생대 맘모스나 포유동물의 오래 된 화석 파편으로 탄산칼슘이 주성분을 이룬다. 『동의보감』 탕액편에 용골은 오장의 사기를 몰아내고 정신을 안정시켜주며, 설사나 몽설, 출혈, 과도한 한출을 수렴하고 빈뇨를 다스리는데 쓰인다고 적혀있다. 

기원이 석회화된 동물의 뼈인지라 불에 달구어 곱게 가루 내어 채질해서 써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용치(龍齒)는 진경, 안혼(安魂)하는 작용이 뛰어나, 전간(癲癎)이나 경광(驚狂), 귀매(鬼魅) 같은 심각한 병증에 사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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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心醫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

한편  『의방유취』 오장문에서 이 용치탕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심허(心虛)로 인한 경계(驚悸), 수와불안(睡臥不安)하는 증상에 쓴다고 하였다. 처방 구성에는 용치와 인삼이 주재이고 작약, 담죽여, 당귀, 반하곡, 복신, 강활, 목향, 모근 같은 약재가 들어간다. 10가지 약재를 가루 장만하여 은을 달인 물에 생강과 함께 넣어 달여 먹는다. 고관귀족이 아니면 아무나 쓸 수 없는 처방일터인데, 적응증으로 보아 각간 충공의 증상이 어떠했을 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감염병 예방차원에서 밀접접촉을 피하기 위해 장기간 사회적 거리두기와 외부활동이 제한되다보니 남녀노소 계층을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집단우울심리가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냥 집안에 틀어박혀 참고 견디라는 것은 애초 무리생활을 전제로 문명을 발전시켜온 인류에겐 질병감염에 못지않은 끔직한 형벌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다. 

국민 우울감을 일거에 해소시킬 수 있는 용치탕 같은 명약, 녹진과 같이 말 못하고 고통 받는 심중을 어루만져줄 이 시대의 심의(心醫)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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