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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1일 (토)

이상곤 원장

이상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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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왕손에게 우유를 금지하라고 했을까?



우유를 우리나라에서도 음용했을까? 기록에 의하면 생우유의 음용은 없었던 것 같다. 농정전서에 의하면 소에서 젖을 짜내면 우유가 나오고 끓여 농축한 다음 냉각하여 유피를 분리하여 수(酬)를 만들고 그 다음 생락(生酪)을 만들고 다시 건락(乾酪)을 만드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건락을 깎아서 물에 타면 죽과 장이 된다고 설명한다. ‘락’은 치즈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우유도 남방의 수우유와 북방의 진우유로 나뉘어 진다. 수우유는 물소의 젖이다. 놀랍지만 우리나라에도 물소가 들어온 기록이 몇 번 있다. 광개토대왕 때 연나라에 사신을 보내 말과 곰을 보내자 물소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도 송나라 상인이 물소 두 마리를 바친 일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때 태국사람이 공물로 갖고 오다가 왜구에게 약탈당했으며, 세조 때에는 오키나와산 물소를 웅천에서 사육하다가 비원에서 기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쟁기를 끌기도 했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농사 적응에 실패하고 말았다. 젖소가 아닌 소에서 어떻게 우유를 얻을까. 임원십육지는 이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송아지가 빨아서 얻는 양보다 많은 양을 얻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바로 젖줄을 터야 한다.



곡물이 든 죽을 먹이고 새끼 낳은지 삼일만에 소를 뒤집어 하늘을 보도록 한 다음 네발을 묶는다. 그리고 소의 유방꼭지를 손으로 아프도록 쥐어 짠다. 유핵을 깨는 것이다. 다시 유방을 발로 스물일곱 번 세게 찬다. 바로 유맥을 트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거치고서야 전통적인 소에서 우유를 얻을 수 있다. 이 젖짜는 일은 3월부터 9월까지 목초가 풍성할 때만 가능하며 이후에는 젖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그만두어야 한다.



우유의 효능은 신비 그 자체였다. 왕실 이외에는 감히 먹을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우유소는 동대문 근처의 낙산(酪山)에 있었으며 소속된 관원이 200명이나 될 정도로 컸다. 세종 때에는 상왕 즉 태종을 위해서는 인수부에서 관리하고 세종은 예빈사에서 따로 관리했다. 성종 이전에는 70두 정도에서 우유를 공급했으나 성종 때는 18두로 줄이고 철종 때는 폐지했다. 영조의 교서에는 치사하지만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자격까지 분명하게 규정했다.



“예전에는 대전, 대비전 세자궁 이외에는 낙죽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을해년 이후에는 현빈에게 동궁, 세자에게까지 확대되었다”라고 불만을 표시하면서 왕손에게도 우유를 금지하라고 명하였다.



우유를 먹는 사람이 몇 명에 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유가 귀중한 것 뿐만 아니라 송아지가 먹을 것을 빼앗아 이용하는 것이 인간적인 양심에 미안했던 것과 민간의 농경산업 위축을 우려한데서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왕실에서 우유를 이용한 낙죽을 장기간 이용한 것은 우유 음용의 신비적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우유의 효능을 다양하게 설명한다. 원기를 회복시키고 진액을 만들어 장을 촉촉하고 윤기있게 한다. 당뇨병, 변비를 치료한다.



특히 마늘과 함께 3~5차 끓여서 먹으면 냉기를 없애며 쇠약한 것을 없앨 수 있다라고 기재했다. 두유만으로 단일화된 시장에서 소화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안이 되는 우유 음용법이다. 물론 금기증상도 있다. 배가 차고 설사가 잦거나 속에 노폐물이 쌓여 어지럽고 구토감이 잦은 사람은 복용하지 말아야 하며 먹으면 배안에 딱딱한 경물을 만든다고 경고한다.



우유락을 만드는 것은 바로 내의원의 소관이었다. 동국세시기에는 “내의원에서는 10월 삭일로부터 정월에 이르기까지 우유락을 만들어 국왕에게 진상하고 기로소에서도 이를 나누어 주었다. 이같이 하여 정월보름에 이르러 먹는다”라고 했다.



우유 음용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삼국시대로 올라간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화약사주편에 백제인 지총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지총은 외내전, 약전, 명당도 등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왔다. 효덕천황 때 우유를 진상한 공로로 화약사주라는 성을 하사받았다.” 우유의 음용이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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