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산에 위치한 육군 9사단에서 근무 중인 한의군의관 이현훈 대위가 환자들의 증상에 적절한 진료과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의료용 챗봇을 개발해 화제다.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해 경희대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를 수료한 침구과 전문의인 그는 “이번 챗봇 개발을 통해 한의사로서 일차진료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며 “사단 의무대 군의관으로서 일차진료의의 역할을 2년간 수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챗봇 개발의 전반적인 과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Q. 국군 장병들의 의료환경 개선에 관심이 많다.
사단 의무대 군의관으로서 지난 2년간 이등병 및 상등병 건강 검진을 도맡아 하며, 병사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전문 진료과를 찾아가도록 안내하거나 상급병원에 해당하는 군병원 진료를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문진이 가능한 인원 수 제한 및 문진 일정 지연 등으로 병사들이 적절한 시기에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생각해냈다.
Q.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챗봇을 개발했다.
보통 큰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는 환자의 상태, 중증도 등에 따라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해주는 Triage의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이러한 환자 분류는 비단 응급 상황뿐만 아니라 일반 환자들에게도 필요하다.
특히 대학병원에는 수많은 진료과들이 있어 환자들이 처음 내원했을 때, 어떤 진료과로 가야할지 혼란을 겪는 경우가 다반수다. 실제 전공의 시절, 응급실 앞이나 병동을 지나다니다 나를 붙잡고 증상을 호소하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보시는 환자 혹은 보호자분들도 있었다.
환자들이 빠른 시간 안에 본인에게 필요한 진료과를 선택할 수 있는 챗봇을 이용하면 이러한 혼란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개발에 뛰어들었다.
Q. 챗봇 개발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1차 목표는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에 적합한 진료과를 추천 받아 적절한 타이밍에 최적화된 진료를 받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 의사와 환자 간 불필요한 대면을 최소화 할 수 있고, 또한 환자가 전문의를 잘못 찾아가는 문제가 줄어들게 되면 의료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환자들의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의료서비스는 결국 환자의 증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챗봇은 진료과 추천 기능을 시작으로 진료 시간 안내, 진료 예약, 병원 안내 등으로 연결된다. 전반적인 사회 영역에서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트렌드가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챗봇을 개발하고자 한다.
Q. 컴퓨터 언어를 공부한 적이 있는가?
작년 5월경부터 온라인 강의와 책을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과 딥러닝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의료인공지능 관련 여러 해커톤 대회에도 나가 수상도 했다. 이와 관련된 경험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의료인공지능 기반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작년 가을에는 딥러닝을 이용한 자연어 처리 기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관련 공부를 했다. 이러한 기술로 개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챗봇이다. 챗봇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기술을 잘 활용하면 환자들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받을 수 있고, 병원에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Q. 챗봇 개발에 어려웠던 점은?
코로나19로 인해 개발팀과의 원활한 소통이 어려웠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소속 부대가 다른 병사들과 함께 팀을 꾸렸다. 군부대 특성상 컴퓨터나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고, 심지어 화상회의도 불가능했기에 오로지 협업용 메신저인 Slack이나 Github과 같은 협업 툴로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또한, 이 챗봇 개발에 필요한 GPU 서버 사용료나 논문 투고 및 특허등록 등에 필요한 지원이 없어 전부 개인사비로 충당했다. 향후 이 챗봇을 고도화하고 상용화를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기에 대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Q. AI 발전과 관련해 한의계가 주목할 점은?
의료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2가지는 데이터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예전에는 인공지능 연구라 하면 모델 개발(Model-centric AI)에 초점을 뒀지만, 최근에는 데이터 중심(Data-centric AI)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의계가 의료인공지능의 물결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질의 빅데이터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관리할 사람(Data Engineer)과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 연구할 사람(Data Scientist)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의의료기관 및 연구기관에서도 인공지능이나 데이터관련 전공의 인력을 채용하고, 한의사 과학자를 양성하는데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작년부터 정부에서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에 한의계도 단계를 밟아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Q. 남기고 싶은 말은?
챗봇을 개발하느라 대부분의 작년 휴가를 사용하고 하루종일 검은 화면의 모니터 앞에 앉아 코딩을 하던 제게 하루 세끼를 다 챙겨주시며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께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전한다.
챗봇 개발 과정에 있어서 좋은 팀원을 만나 성장할 수 있었고, 정성 가득한 조언을 해주신 산·학·연 전문가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