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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06일 (화)

자격은 이미 있는데, 준비는 되어 있는가?

자격은 이미 있는데, 준비는 되어 있는가?

한의약 웰빙 & 웰다잉 52
“자리는 한번 내어주고 나면 다시 되찾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지켜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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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최근 호스피스 지정기관 서류를 준비하며, 여러 날 생각이 많았다. 서류 하나하나를 채워 넣는 동안, 정작 마음에 걸렸던 것은 서류 자체가 아니라 그 서류 뒤에 서 있는 우리의 민낯이었다. 칸을 채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정말 이 자리에 서도 되는 사람들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의사는 법적으로 호스피스 전담 인력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자격이 현장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무게를 갖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선뜻 자신 있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마약성 진통제 처방권이 없으니 통증이 급격히 변할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폭이 좁고, 호스피스가 포괄수가제로 운영되는 구조 안에서 한의 치료가 어디에 어떻게 자리해야 하는지도 여전히 애매하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한방병원이 많다 보니 인력 구조나 24시간 대응 체계를 촘촘히 갖추기도 쉽지 않다. 말기 암 환자를 안전하게 모실 준비가 시설과 약품 면에서 충분한지도, 자문해 보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곳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감염 관리나 낙상 예방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 하나하나도, 막상 세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다듬어야 할 구석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것이, 굳이 누군가 지적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실제로 확인해야 할 정보는 훨씬 많고 촘촘해


그래서였을까. 법적으로는 분명히 자격을 갖춘 인력인데, 실질적으로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이름은 명단에 올라 있지만 정작 그 이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선뜻 말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자격의 문제라기보다 준비의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그 무게를 다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이 더 오래 남았다. 침 치료가 암성 통증 관리에 근거를 가진 치료법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쌓여 있다. 


그럼에도 정작 임종을 앞둔 환자 곁에서 그 근거를 제도 안에서 온전히 펼쳐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급여 기준을 벗어나지 않도록 매 순간 조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면, 문제는 근거의 유무가 아니라 그 근거를 현장의 역량과 자격, 제도로 연결시키지 못한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좋은 근거를 갖고도 그것을 온전히 펼쳐 보이지 못하는 상황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다.


그런데 ‘있으나 마나 하다’는 말 앞에서, 나는 동시에 다른 질문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나는 지금 한·양방 협진이 가능한 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거나 그 용량을 조절할 권한은 나에게 없다. 


하지만 바로 그 환자에게 근거에 기반해 침 하나를 놓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약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이 환자가 어떤 마약성 진통제를 쓰고 있는지, 용량은 그동안 어떻게 조정되어 왔는지, 어떤 부작용을 겪고 있는지, 최근 며칠간 통증의 흐름은 어떠했는지, 돌발성 통증은 얼마나 자주 나타났고 그때마다 추가 진통제(PRN)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그리고 그 약이 경구인지 패치인지 정맥인지— 만약 패치 제형이라면 교환 시점 즈음엔 혈중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져 환자가 평소보다 더 아파할 수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 시점은 아닌지까지, 하나하나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침을 놓을 자리와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진통제는 그저 하나의 예시일 뿐, 실제로 확인해야 할 정보는 이보다 훨씬 많고 촘촘하다.

 

김은혜 교수2.jpg


자격에 걸맞은 역량을 채워 넣는 일 ‘불명확’


처방권이 없다는 사실이, 그 약을 몰라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처방권이 없기 때문에, 그 약이 지금 이 환자의 몸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더 정확히 읽어낼 수 있어야 안전하고 근거 있는 치료가 가능해진다. 


이 지점에서 나는 동료 한의사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협진 현장에서 환자를 마주할 때, 우리는 정말 이만큼의 정보를 확인한 뒤에 침을 놓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한의사도 참여하고 있다’는 명목만 채우며, 정작 그 환자의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협진이라는 제도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이 문제는 교육으로 되돌아간다. 방금 나열한 것과 같은 수준의 정보를, 지금 협진 현장에 있는 한의사들이 당연하게 확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확인법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있는지부터 되짚어야 한다. 


한의대 교육과정 안에서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를 다루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통증 평가와 다학제 협진, 임종 돌봄 커뮤니케이션 같은 실무 역량을 배울 기회가 학생 때부터 마련되어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물론, 해당 지식들이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음은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잘 알고 있다. 반면 그와 동시에, 현 교육의 주소가 어떠한 지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 앞에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다른 직역과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지는 이론 강의 몇 시간으로 채워지는 역량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임상 현장에 나가 있는 한의사들에게는, 이 영역의 최신 지견과 실무를 익힐 체계적인 재교육 과정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지금은 관심 있는 개인이 알아서 학회를 찾아다니거나, 뜻이 맞는 동료들끼리 스터디를 꾸리는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이 낯설고도 급성장하는 영역에서 누가,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설계하고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자격은 이미 법전 안에 있는데, 그 자격에 걸맞은 역량을 채워 넣는 일은 아직 누구의 책임인지조차 뚜렷하지 않다.


왜 준비하지 못했느냐고 서로를 탓하게 되지는 않을지


호스피스와 완화의료는 요즘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 고령화와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맞물리며, 이 영역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의료계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떠올려 보면, 한의계가 이런 뜨거운 감자 같은 제도권 한복판에 이미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결코 당연하지도, 흔하지도 않은 기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제도 밖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닿지 않던 자리에, 지금은 어쨌든 이름 하나는 걸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귀한 자리를, 정작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훗날 이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커지고 나서야, 그때는 왜 준비하지 못했느냐고 서로를 탓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자리는 한번 내어주고 나면 다시 되찾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지켜보지 않았던가.


인력 신고서에 이름 한 줄 적는 일이 무의미해지지 않으려면, 그 이름 뒤에 실제로 서 있을 수 있는 역량이 함께 채워져야 한다. 그 역량을 어디서부터, 누구를 위해,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를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처럼 얻은 이 제도권 안의 자리마저 다음번에는 스스로 내어주게 될지도 모른다. 


자격증 한 장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 지금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의 한의사들은 아예 이 질문을 던질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서류를 준비하며 마음에 남았던 무거움도, 결국 이 물음 앞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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