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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2일 (월)

신미숙 여의도 책방-77

신미숙 여의도 책방-77

‘운명적’이라는 말

신미숙02.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정치 입문의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정치인들의 상당수는 “그것은 운명이었다!”라고 대답한다. 첫눈에 반했다는 연인들 또한 “운명이라는 것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어요!”라며 그들의 첫 만남을 아름답게 회상하기도 한다.   

 

사주, 명리, 역학, 신점, 손금, 주역, 점괘, 법사, 도사, 무당, 굿, 주술, 신당 등등 험한 것에서부터 묘한 것까지 정통이든 사술이든 용하다고 소문난 자들의 소문은 도통 끝이 없어 보인다. 강남 점집은 강남이라 신뢰가 가고, 사람이 기거하는 곳인가 싶을 정도의 낙후된 곳의 점집은 그 장소의 희소성 때문에 또 다른 차원에서의 믿음을 부여받는다. 과한 화장의 성형 미인 도사님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으면 저렇게 돈으로 얼굴을 새로 빚으셨나 싶고, 방금 전 눈꼽을 뗀 듯한 수수한 행색의 보살님은 얼마나 자신 있으면 이렇게 갓 세수만 한 얼굴로 내담자들을 만나시는 겐가 싶다. 나의 전생을 읽어준다는, 그리고 나의 미래를 점쳐준다는 이쪽 업계의 특징은 이토록 오묘하고 복잡하다. 

 

인턴시절 병동에 입원한 중풍환자 한 분이 떠오른다. 오래 전 일이라 이젠 그 분이 할머니였는지 할아버지였는지도 살짝 헷갈린다. 점쟁이 골목에서 나름 이름 좀 날리던 용한 분이라는 것과 입원 기간 내내 가끔 문병 오던 분들이 가족이 아닌 이 분께 신점을 보던 손님들이라는 것이 이 분에 관련된 인계사항이었다. 뇌경색 후유로 인하여 오른쪽 팔다리는 움직임이 둔하였지만 다행히 언어능력은 풀 가동 중이라 사주명리가 아닌 신점이 시그니쳐였던 그 어르신은 심신이 살짝 허약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기(氣)가 동(動)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시곤 가던 이를 갑자기 불러세워 몇 마디씩 해 주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분 옆자리 환자분이 내 환자여서 그 병실을 자주 들락날락 했었다. 어느 새벽 내 환자분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니 거기 서봐라, 저 종종 걸음, 저 급한 걸음. 내 누군지 안다. 니는 평생 그리 여그저그 뛰 댕김서 일할끼다. 멈출 일 없데이. 누구 덕 보고 못 산다. 니가 움직여서 벌어야 한데이. 늙어서도 일 하니까네 놀 생각 말레이.” 잠도 못 자고 날마다 선배들에게 깨지던 인턴 시절이었기에 쉬지 않고 계속 일한다는 점괘에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 어르신은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월매나 좋아! 늙도록 일한다는데! 건강할끼고 계속 돈도 벌끼고 얼마나 좋아!” 이번에는 잠꼬대처럼 웅얼대셨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용한(?) 어르신 환자분의 신점 풀이! 수련의 시절부터 국회 공무원까지 봉직의만 27년을 하고 있는 나의 운명을 그 점괘에 맞추어보니 ‘잘 나가는 개원의들 10년이면 벌 돈을 30∼40년에 나눠서 벌라는 말이었나?’ 싶다.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데에서 행복이 시작됨을 알기에 6월 어느 날, 나의 52번째 생일을 보내며 하나의 질문을 건네본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잘 사용하고 있는 거 맞지?”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고미숙, 북드라망,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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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역학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도교에 해당한다. 동양사상의 또 다른 원천인 유교와 불교 역시 우주론은 동일하다. 

- 음양오행이라는 인식의 프레임으로 생리와 병리에 접근하면 의학이 된다. 사주구성에 따라 어떤 병을 어떻게 앓게 될지 그 경로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팔자는 내 안의 우주다. 고로 팔자의 운동 역시 우주의 원리를 고스란히 따른다. 리듬과 강밀도를 중심으로 재배열 되는 것이다. 

- 팔자에는 주객이 없다. 누가 나에게 부과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 역시 어떤 노력과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오십에 읽는 주역』(강기진, 유노북스,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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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은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글자에 담고 있다.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을 말한다. 

- 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천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팔자는 대체 불가능한 신성한 것이다. 

- 자신에게 부여된 ‘괘’와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연’, 이 둘을 합친 것이 사람의 팔자를 이룬다. 


『팔자를 고치다』(조용헌, 삼인,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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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당과 길지는 인간의 힘을 통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스스로 탄생해 존재해 왔다. 다만 그 기운을 얻거나 빌려 쓰고자 한다면 적합한 적선을 베풀어야 한다. 

- 시간과 공간과 인간. 사람의 인생은 이 3가지 사이를 헤매고 다니다가 마치게 된다. 풍수의 관점에서는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 

- 누구나 운이 찾아올 때가 있다. 운이 안 오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운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운을 흘려보내는 사람은 또 어떤 사람인가? 


『내 인생의 운명을 바꾸는 자신감 철학』

(샤를 페팽, 아이템하우스,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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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판단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 중요한 것은 누구도 나를 대신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오늘날 우리는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할 기회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감을 가지는 데 가장 치명적인 독이나 다름 없다. 


『말은 운명을 데려온다』

(이하영, 토네이도,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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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현실을 설계하는 힘이다. 그 시작점에는 언제나 자신만의 문장이 있다.

- 우리는 지금 현실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눈은 떠 있고 감각은 깨어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꿈꾸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 삶은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선택된 자리로 자연스럽게 바닥을 기울여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와 지금의 나라는 모습은 오래 전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네던 말들의 파동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동아리든 스터디든 그 어떤 통로로도 그다지 친분이 없었던 학부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6월에 국회에서 한 번 보기로 했다. 시간을 헤아려 보니 거의 27년만에 만나는 셈이다. 약속한 그 날,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나누며 긴 시간의 간격을 빠르게 채워 나갔다. 어색함은 1도 없었다. 동문의 힘이자 50대 아줌마들의 초능력이기도 하다. 10년간의 경력단절이 있었고 단독 개원 후 아직 1년이 안 된 상태라고 했다. 오랜만에 개원가로 복귀해보니 그간 한의계가 많이 변해있어서 놀라고 있지만 소속되어 있는 학회의 공부와 그간의 임상 경험으로 잘 버텨나가고 있다고 했다. 학회 차원에서 학부생들이나 현역 한의사들과의 학술적 교류도 체계적으로 늘려가고 싶다는 멋진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눈빛에서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무척 반가웠고 직접 찾아와준 그 성의가 고마웠다. 

 

학력고사 전기 낙방 후 재수가 싫어 후기로 한의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한의사라는 직업을 꿈꾼 적은 없었다. 『오십에 읽는 주역』에서 “오십이라면 응당 자신의 팔자를 넘어서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문장을 읽었다. “내가 젤 잘 나가”류의 그룹에 속해있는 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는 공간에서 근무하다보니 자칫 넋을 놓고 나를 잃고 바깥을 자주 응시하게 된다. 그 응시는 사유가 아닌 구경일 때가 많았다.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어서 와, 환갑은 처음이지?”라며 몇 년 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그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걷고 있는 모든 길을 다시 한 번 ‘운명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 운명의 본질을 직면하며 마주친 문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가 제언한 삶에 대한 태도,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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