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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그래서 氣가 뭔데?”, 부산대 한의전 동제 신춘문예 평론부문 가작

“그래서 氣가 뭔데?”, 부산대 한의전 동제 신춘문예 평론부문 가작

임선우 학생(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동제신춘문예 임선우 학생1.jpg


[편집자 주]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임선우 학생의 ‘그래서 氣가 뭔데?’는 제5회 동제신춘문예 평론 부문 가작으로, 한의학 교육 과정에서 마주하는 개념적 난해함과 학문적 거리감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통 이론의 의미와 한계를 성찰적으로 짚어낸다. 특히 ‘氣’를 비롯한 한의학적 용어를 실체가 아닌 설명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전통과 과학, 그리고 AI 시대를 관통하는 한의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한의학을 둘러싼 익숙한 논쟁을 넘어,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해석의 방향성에 대해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한다.

 

동제신춘문예 임선우 학생2.jpg

 

“그래서 氣가 뭔데?”

 

졸업을 앞둔 한의대생에게는 마지막으로 하나의 관문이 남아 있다. 

바로 국가고시다. 한의대생이 한의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자, 지난 7년의 학업을 정리하는 마지막 절차이기도 하다.

며칠 전 그 시험이 끝났다. 병증을 외우고, 처방을 암기하고, 영상을 판독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합격 발표는 아직이지만, 큰 무리 없이 시험을 치렀다는 점에서 일단은 안도하고 있다.

 

국시라는 언덕을 넘고 나니, 비로소 지난 학교생활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한의학이란 무엇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한글 전용의 시대에 살아왔고, 서양 학문 중심의 사고가 익숙했던 나에게 한의학은, 처음부터 친절한 학문은 아니었다.

용어는 낯설었고, 한자는 많았으며, 과목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지식이 한의사가 된 이후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한 상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신입생 시절의 나에게 한의학은 친숙하지도, 정합적으로 느껴지지도 않는 학문이었다.

 

졸업을 앞둔 지금도 그 질문에 완전히 답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을 후배들에게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한의학을 옹호하거나 부정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한의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로 다루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개인적 평론이다.

 

1)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한 기초과목들(한방생리학, 한방병리학, 원전학 등)

 

한의학을 처음 접할 때 가장 큰 장벽은 기존에 배워 온 학문과는 전혀 다른 용어 체계와 설명 방식일 것이다. 

이를 단순히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기에는, 기초과목이 차지하는 비중과 학습 기간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다면 이 기초과목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를 이해하는 데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 비유는 유용하다. 

그는 ‘논리–철학 논고’에서 “나의 명제들은 사다리와 같다. 

당신은 그것을 딛고 올라가야 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한 후에는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개념들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이해에 이르기 위한 도구라는 뜻이다. 

자전거를 배울 때 보조바퀴가 필요하지만, 균형을 익힌 뒤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과 같다.

 

한의학의 기초과목 역시 마찬가지다. 

임상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생소한 사고 체계에 적응하기 위한 관문으로서, 한의학적 언어와 논리를 몸에 익히는 역할을 한다. 

기초과목이 “졸업하고 나면 쓰이지 않는다”는 말은, 이미 사다리를 올라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물론 기초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은 충분히 이해된다. 

다만 교과서의 문장 하나하나를 곧이곧대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그 과목이 어떤 맥락에서 존재하는지, 무엇을 익히게 하려는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한의학을 덜 낯설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2) 한의학적 용어는 무엇을 설명하려는가

 

임상과목에 들어서면 서양의학적 설명과 함께 한의학적 개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精, 氣, 神, 陰陽, 五行과 같은 용어들은 여전히 질문을 남긴다.

이 개념들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맥락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것은 1892년이다. 

‘동의수세보원’이 집필된 시기와 거의 같은 시대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감기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물론 바이러스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외부의 어떤 요인이 인체에 영향을 미쳐 병을 일으킨다는 추론은 존재했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사기(邪氣)라고 불렀다. 

확장시켜보면 풍한사(風寒邪)란,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자면 추운 환경에서 외부 병원체가 침입하는 상황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의학적 용어들은 실체 그 자체라기보다,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던 설명의 언어에 가깝다. 

현대 생의학의 언어로 완벽히 번역되지는 않지만, 한의학 내부에서 사고하고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서는 여전히 기능한다. 

학문 용어란 본래 전공자 간의 의사소통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용어 하나하나의 실재성에 집착하기보다는,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과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3) 한의학은 갈라파고스인가

 

그렇다면 결국 이런 질문이 남는다. 

한의학은 과거의 설명 체계에 머물러 있는, 고립된 학문인가. 흔히 말하는 ‘갈라파고스’인가.

 

어느 정도는 설득력 있는 비판이다. 

한의학이 갈라파고스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이론 언어의 비가역성에 있다. 

기·혈·음양·오행으로 구성된 설명 체계는 현대 생의학의 분자적, 기계론적 언어로 쉽게 번역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용어 차이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론적 기반의 차이다. 

한의학은 질병을 국소적 병변이 아닌, 인체 전체의 관계적 불균형으로 이해해 왔다. 

이 총체적 관점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외부 검증과 학문 간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의학은 과학이 아닌가. 

이 질문 역시 전제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특정 이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에 열려 있는 태도에 가깝다. 

관찰 가능성, 재현 가능성, 반증 가능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한의학의 이론 체계는 과학이라기보다 전통적 설명 틀에 가깝다. 

그러나 침, 뜸, 한약과 같은 한의학의 임상 행위는 분명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순간은 과학이 한의학의 효과를 묻는 때가 아니라, 한의학이 그 질문 자체를 거부할 때다. 

전통은 설명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검증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AI 시대에 더욱 분명해진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억하고, 인간보다 빠르게 패턴을 인식한다. 

진단 보조, 영상 판독, 예후 예측은 이미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온 전통적 임상의 권위는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한의학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 시대는 한의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의학은 본래 단일 지표가 아니라, 복합적 정보의 통합을 중시해 왔다. 

환자의 증상, 체질, 생활 환경, 시간적 변화를 함께 고려하는 사고 체계는 AI가 제시한 결과를 해석하고 임상적 선택으로 연결하는 데 하나의 프레임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의학적 사고는 낡은 직관이 아니라, 해석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AI 시대의 한의학은 전통과 과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이론의 순수성을 지키는 태도가 아니라, 임상적 유효성을 중심에 두고 이론을 재배치하는 용기다. 

음양과 오행은 절대적 실재가 아니라, 복잡한 임상 정보를 조직하기 위한 인지적 도구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도구의 유효성은 데이터와 연구를 통해 계속해서 검증되어야 한다.

 

4) 맺으며

 

결국 이 글에서 던진 질문은 한의학의 정체성 그 자체라기보다, 한의학을 수행하는 우리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닫힌 전통은 고립된 섬이 되지만, 열려 있는 전통은 새로운 대륙과 연결된다. 

AI 시대의 한의학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기술이 아니라, 한의학을 살아 있는 학문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종종 “나는 이과형이라 한의학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전통 한의학 지식을 처음부터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의 이론은 현대 과학의 언어와 다를 뿐, 비합리적인 사고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다른 시대와 조건에서 형성된 설명 체계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겠으나,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포기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서로 다른 설명 방식을 비교하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이과적 사고가 가진 강점일 수 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만 영어라는 공용어를 배우듯이, 한의학을 깊이 이해하되 그것을 오늘날의 통용어인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전통 한의학 지식은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어떻게 재배치할지를 고민해야 할 자산일지도 모른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태도로 한의학을 다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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