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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1일 (토)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20)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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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淸나라 凌魚가 쓴 『東醫寶鑑』의 서문은 朴趾源(1737〜1805)의 『燕巖集』 가운데 들어 있다. 이 서문은 ‘乾隆 31년 丙戌(1766년) 7월 상순’에 쓰인 것으로 凌魚의 관직에 대해 “原任湖南邵陽醴陵興寧桂陽縣事充庚午壬申癸酉丙子四科湖廣鄕試同考官”라고 기록하고 있다. 朴趾源은 이 책 중국판 『東醫寶鑑』을 평소에 사고 싶었지만 이 때 은화 5냥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면서 凌魚의 서문만 베껴서 나중 사람들의 고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하고 있다. 그 서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東醫寶鑑은 이에 明나라 때 조선의 陽平君 許浚이 지은 것이다. 조선 사람들의 시속을 살펴보면 평소부터 문자를 알아서 독서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허준의 집안은 또한 선비의 世族이다.…‘東醫’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나라가 동쪽에 있으므로 東이라고 말한 것이다.…이제 陽平君 許浚이 치우쳐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에 능히 책을 지어서 中國에까지 읽히게 하였다. 말은 족히 전할 것을 기약하는 것이지 어떤 지역에 한계를 두는 것은 아니다.……지금 이 책을 보건데, 內景篇을 먼저로 하여 그 근원으로 소급해 올라갔고, 外形篇을 다음으로 하여 그 막힌 것을 소통시켰고, 雜病篇을 다음으로 하여 그 증후를 변별하였고, 湯液篇과 鍼灸篇을 마지막으로 하여 그 방법을 정했다. 이 가운데 인용한 것은 『天元玉冊』으로부터 『醫方集略』에 이르기까지 80여종에 이른다. 대체로 우리 중국의 책들이고 조선의 책은 3종 뿐이었다.……順德의 明經 左君 翰文은 내가 총각 때부터 교유한 사람인데, 이를 안타까이 여겨 인쇄하여 널리 전할 것을 생각하였다. 3백여 緡의 돈을 썼지만 조금도 아끼는 안색이 없었다. 대체로 그 마음은 다른 사람을 구제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고, 그 일은 양을 고르게 하고 음을 변화시키는 일이라. 천하의 보물을 마땅히 천하와 더불어 하고자 한 左君의 어짊이 크도다. 판각이 끝난 뒤에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니 드디어 기뻐서 그 단서를 기록한다.”



위의 凌魚의 서문은 몇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許浚의 가계에 대한 소개를 통해 허준이 명문가의 집안에서 의학을 한 자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東醫’라는 개념의 세계성이다. “이제 양평군 허준이 치우쳐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에 능히 책을 지어서 중국에까지 읽히게 하였다. 말은 족히 전할 것을 기약하는 것이지 어떤 지역에 한계를 두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東醫라는 단어가 이미 한국의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된 보편적 지식을 포괄하는 일반명사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東醫寶鑑』이 시대적 필요성에 부응하는 醫書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서의 앞부분에 나오는 서문에 의례적으로 말하는 찬양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汗牛充棟하는 의서들 속에서 알맹이가 있고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의서를 갈구해 왔던 중국인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의서가 80여종이고 조선의 의서는 3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 것도 역설적으로 중국의 의학이 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기보다는 外國에 해당하는 조선에서 정리된 보편성을 가진 의학지식에 대한 경이로움이 보다 더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옛사람이 이룬 방법을 따르면서 능히 신통하게 밝혔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 빠진 것들을 보충하고 사대(四大: 地水火風)에 밝은 양기를 베풀었다”는 것은 이 책이 중국 의서를 단순히 패러디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과 치료 방안의 길을 연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병에 대해 대처할 방안을 제시하였다는 의미도 포함한 것이다.



다섯째, 이 책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는 점이다. “左君 翰文은 내가 총각 때부터 교유한 사람인데, 이를 안타까이 여겨 인쇄하여 널리 전할 것을 생각하였다. 3백여 緡의 돈을 썼지만 조금도 아끼는 안색이 없었다.…천하의 보물을 마땅히 천하와 더불어 하고자 한 左君의 어짊이 크도다.” 여기에서 눈에 띠는 것은 『東醫寶鑑』을 ‘천하의 보물’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이 책의 인쇄에 사용한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이렇듯 『東醫寶鑑』은 중국인 凌魚의 입장에서 볼 때, 학술적 능력이 뛰어난 朝鮮의 儒醫 許浚이 지은 세계화된 보편적 지식을 갖춘 천하의 보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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