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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0일 (금)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79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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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勳(1882~1974)의 形命論



호가 晴崗인 김영훈 선생은 일제시대 전 시기동안 한의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1882년 江華島 江華邑 官廳里에서 출생한 金永勳은 1904년 同濟醫學校가 설립되어 교수를 뽑을 때 이에 지원하여 수석합격하여 都敎授가 되었다.



1909년에는 大韓醫士會라는 한의사 단체를 만들었고, 1915년에는 全國醫生大會를 개최하여 전국 규모의 한의사단체인 全鮮醫會가 결성되면서 이 단체에서 監事部員으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한의학 전문잡지인 『東醫報鑑』을 창간하였다. 1916년 1월1일자로 간행된 『東醫報鑑』 창간호에는 ‘擧形命論 야 告天下人士’라는 제목의 김영훈의 글이 게재되어 있다. 글의 제목을 해석하면 ‘形命의 論을 들어서 天下의 人士들에게 고함’이다.



“老子가 나의 큰 근심은 내가 몸이 있기 때문이니, 만약 내 몸이 없다면 어찌 질환이 있을 것이리오라고 하였다. 이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 힘입는 것은 形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形이 없다면 나도 없는 것이니 인생에 있어서 가장 먼저 칭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또한 무릇 性命이 있은 다음에 二儀가 서게 되고 性命이 있은 다음에 五倫이 생겨나니 무릇 性命의 道는 太極에서 근본하여 萬殊로 흩어진 것이니 形身은 性命의 舍宅이고 靈明은 性命의 知覺이고 造化는 性命의 爐冶이고 道德은 性命의 繩墨이고 醫藥은 性命의 贊育이니 이 命의 뜻을 쫓아서 가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진실로 性命이 없으면 形身이 없고 形身이 없으면 또한 性命도 없을 것이니 이것이 性命과 身形은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까닭이다.……그런데 天地의 道는 盈과 虛가 있고 消와 長이 있어서 寒暑가 제때에 나타나지 않음에 疫疾이 갑자기 이르는 것은 天刑이라고 말한다.…이러한 어진 天地의 道로도 이와 같거늘 더구나 人情의 喜怒憂思悲驚恐의 七傷이 性命의 魔아닌 것이 있겠는가? 이에 災刑의 뜻을 쫓아서 알 수 있다. 오호라 形이 이미 이와 같고 命이 이미 이와 같고 災가 이미 이와 같으니 누가 능히 蒼生들에게 생각을 드리워 至眞至極한 良方을 發하여 天下億兆의 衆生들을 구제할 수 있으리오.……옛적의 伏羲, 神農, 黃帝, 岐伯, 檀君, 箕子, 雷公伊尹 등 모든 분들이 세대를 이어가면서 나와서 이에 사람의 醫道를 발명하여 행하게 하여……이로 말미암아 보건데 天地萬物은 一源에서 근본하고 形·命·災·醫는 一理와 통하는 것이니 즉 一이라는 것은 萬類의 근원이다.……완전히 養形保命의 도에 어두워 情志로 그 府舍(形을 말함)를 손상시키거나 勞役으로 그 筋骨의 形을 손상하여 內形이 이미 손상됨에 神氣가 衰靡하게 되고 外形이 이미 사그라듦에 肢 가 偏 하게 되어 肥肉이 다 깎여감에 그 形은 가히 알 수 있고, 그 形이 이미 망가짐에 그 命을 가히 알 수 있는 것이니, 한번 形과 命이 없어지면 萬事가 空虛하게 되는 것이라. 오호라 흰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듯 순식간에 지나가는 百年에 누가 질병없고 고통스러운 바다에서 아득히 떠 있지 않고 머리를 이 기슭으로 돌릴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필자의 번역)



글만 가지고 본다면 한의학 관련 평범한 言辭들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다른 입장에서 이 글이 느껴진다. 강압적 통치가 이어진 이 시기에 조선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形身, 靈明, 造化, 道德, 醫藥 등은 性命과 관련된 단어들로서 金永勳 선생의 논리의 핵심들이다.



性命은 생명을 말하며 이것이 깃들어 있는 곳은 육체인 形身이며, 이것을 지탱해주는 것들은 造化, 道德 등의 민족 정신과 醫藥이다. 그는 性命이 없으면 육체인 形身도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방안의 최후에 醫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의학이 단순히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까지 연계된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의 주장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이다.





<- 1916년 학술잡지 ‘동의보감’에 나오는 김영훈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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