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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1일 (토)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73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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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新東亞』 1월호 鮮于基의 글을 보니‘한의원을 찾는 사람들’



1982년 간행된 『新東亞』 1월호에는 鮮于基(1933〜2003)가 기고한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되어 있다. 鮮于基는 평생동안 한의학의 국제화·세계화를 위해 노력한 인물로 1978년 ‘The Cannon of Acupuncture’라는 제목으로 『靈樞』의 번역판을 간행한 것이 그의 중요 업적의 하나이다. 故 배원식(전 의림지 발행인) 선생을 도와 東洋醫學會를 이끌었고, 일본 침구계와 유럽 침구계와도 오랜 교분이 있어 일본과 미국, 유럽 등에서 며칠에서 몇 년씩 침술을 배우고 간 제자가 다수라고 한다.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은 ‘동양의학의 재발견’, ‘한방을 찾는 심정’, ‘대머리도 한방으로 치료’, ‘양·한방 통합의 전제’, ‘한방의 인식태도가 문제’라는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월간지이므로 학술적 내용보다는 한의학을 소개하는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당시 한의학이 각광을 받는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고 아울러 보다 한의학이 넓혀지기 위한 자성의 소리도 하고 있다.



그는 1981년 9월에 일본 九州에서 2주일간 ‘한국의 한의학’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의 의사들과 의대생, 약대생들이 ‘놀랍다’고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보람을 느꼈다. 당시 미국에서는 10여개의 주에서 한방제도를 도입했고, 캘리포니아주에도 한의과대학과 대학원이 설립된 상황이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에서 침술 붐이 일어났던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다.



선우기가 한의원을 찾는 환자의 동기를 모니터링할 때 다음과 같은 분석된다고 한다.

“오랫동안 양방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별 다른 효험이 없자 혹시 한방에서는 무슨 묘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찾아오는 환자들, 양방병원에서 수술밖에 치료방법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으나 엄청난 수술비 때문에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자, 설사 경제적으로 수술비를 감당할 수 있다 해도 수술 자체가 두려워 기피하는 환자, 그리고 양방병원에서 갖가지 검사 끝에도 뚜렷한 병명이 잡히지 않고 그저 ‘신경성’이니 ‘알레르기성’이니 하는 접두어가 붙은 병명의 환자 등이다.”



그는 수년 전 腸重疊症(내장이 꼬여 있는 병)이니 당장 수술해야 된다고 선고받은 환자를 3일간의 약처방으로 완치시킨 경우를 예로 들었다. 또한 상상임신인 鬼胎 환자를 1주일만에 완치시킨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양·한방통합의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사실 한방과 양방 사이에는 대립되는 요소가 너무도 많다. 우선 인체를 보는 관점에서 한방이 종합적인데 비해 양방이 분석적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방법론으로부터 대립되고 있다. 따라서 양방의 입장에서 한방이나 한약을 연구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한방의 고대적인 체계는 무시되고 만다. 이러한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한의사가 주도권을 갖는 국립연구소의 설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상당기간 동안은 한방과 양방이 서로의 사상과 기술 등을 존중해 가면서 각각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성급하게 양방의 입장에서 한방을 체계화 내지 정리한다 해도, 이와 반대로 양방에 한방의 방법을 도입한다 해도 어느 경우나 성공할 가망은 전혀 없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양자의 장점만을 모아 하나의 의학체계를 구축하려는 일은 꿈꾸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陰陽, 五行, 虛實, 經絡 등 理論에 입각하여 양약을 투여할 수 없는 것, 서양의학 이론 대신에 한약의 五味와 寒熱溫凉性을 적용시킬 수 없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 1982년 신동아 1월호에 나오는 선우기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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