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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10일 (금)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7)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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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命吉의 人參附子論



康命吉(1737~1801)은 1768년에 의과고시에 합격하여 내의원에 들어온 후 의술과 학식으로 이름을 떨친 정조대의 御醫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794년에는 首醫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고, 이 무렵 종1품인 崇祿大夫까지 오르게 되었다. 1799년 왕명에 따라 『濟衆新編』이라는 의서를 간행하는데, 이 책은 『東醫寶鑑』의 단점을 극복하고 활용도가 높은 의서를 만들고자 하는 정조대왕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濟衆新編』 권2 ‘虛勞’門에 ‘新增管見’이라는 제목의 글이 보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大人, 小兒를 논할 것도 없이 人參과 附子를 熱이 陽分에 있을 때 사용하면 그 害가 곧바로 나타난다는 것을 醫者라면 곧 느낀다. 만약 熱이 陰分에 있을 때 사용한다면 겉으로는 아무 害도 없는 것 같기에 醫者들이 溫熱한 藥을 써서 害가 없다고 여기니, 이것은 쓰는 것이 未洽한 것이다. 그러나 혹 몇 兩까지 써서 죽게 되거나 혹 몇 斤을 써서 죽게 됨에도 죽어서까지도 뉘우치지 않고 醫者나 환자의 집안사람들도 끝끝내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病이 陰分에 있는데 熱藥을 써서 그 津液을 다 졸인 然後에 목숨이 다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죽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므로 잠시 여기에 써놓아서 나중의 高明한 사람의 의견을 기다린다.(無論大人小兒人參附子用之於熱在陽分則其害立至醫者卽覺若用之於熱在陰分則外似無害故醫者以爲用溫熱之藥而無害是用之未洽然也或至數兩而死或至數斤而死死亦不悔醫者主家終不覺悟是病在陰分用熱藥熬盡其津液然後命盡故也如此死者頻頻見之故姑書以待後之高明)”



이것은 人參과 附子를 ‘熱在陰分’ 즉 熱이 陰分에 있을 때 사용하는 醫者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비판의 칼날을 ‘醫者’들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人參과 附子를 잘못 쓰고 있는 것을 단순한 時俗의 잘못이 아니라 專門人이라할 ‘醫者’들의 과실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專門人이라면 분명히 전문성이 있는 집단일 것임에도 잘못된 지식을 과신하고 있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다.



康命吉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人參과 附子를 陰分에 熱이 있는 증상에까지 쓰고 있는 어떤 학술적 계파에 속하는 ‘醫者’들을 겨냥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人參과 附子를 많이 사용하는 학술유파를 떠올리면 먼저 張景岳(1563〜1640)이 떠오른다. 張景岳은 人參과 附子를 ‘四維’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善用하였다. 四維란 네가지 강령이 되는 약물을 꼽은 것으로 人參, 熟地黃, 附子, 大黃이 이에 속한다. 그는 人蔘·熟地黃을 세상을 다스리는 훌륭한 재상에 비유하였고, 附子·大黃은 전란을 평정하는 훌륭한 장수에 비유하였다.



그는 “人蔘, 熟地黃은 氣血을 다스리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니, 어느 經이든지 陽氣가 虛할 때 人蔘이 아니면 줄 수 없다. 어느 經이든지 陰血이 虛할 때 熟地黃이 아니면 줄 수 없다. 人蔘에는 健運시키는 功이 있고, 熟地黃은 靜順한 德을 품고 있으니, 이 熟地黃과 人蔘은 하나는 陰이고 하나는 陽으로서 서로 表裏가 되고, 하나는 形을 맡고 하나는 氣를 맡아 서로 生成을 주관한다”(『景岳全書·本草正』)라고 하였다.



『景岳全書』가 1624년 간행된 이후로 조선에서 널리 읽혀 하나의 학파가 형성되었음을 생각할 때 人參과 附子를 잘못 사용하는 時俗은, 지식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景岳全書』의 四維에 대한 몰이해에서부터 생겨난 문제점이라고 할 것이다.

康命吉은 이 점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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