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시험 국회청원 대신 편입학 선택
북한 의약품 보내기 등 적극 참여 희망
북한서 귀순해 2년 8개월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북한 동의사 출신 김지은씨. 그가 올해 초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1학년에 편입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81∼88년 북한 천진의과대학 동의학부를 졸업하고, 청진시 한 병원에서 7∼8년 간 소아과와 내과의를 지냈던 그가 남한에서 ‘늦깍이 학생’ 신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올해 43세. 아직 미혼인 그에게 한의대 학생들은 조카나 막내 동생뻘로 누나 언니하면서 쉽게 따른다.
“무엇보다 나이가 어린 남학생이 아줌마로 부르지 않고 누나라 불러줄 때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런지 몰라요.”
학생들의 도움으로 학업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학과수업 만큼은 녹녹치 않다며 한숨이다. 좀더 배우고 지켜봐야 알겠지만 한의대 수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북한 동의대에서는 과목조차 없는 원전 양생, 기공 등 생소한 분야.
교육 방식 역시 침구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부학의 경우 북한에서는 골학만 1학기 배우는데 한국에서는 인대, 관절을 1시간에 마치는 등 1개월이면 끝낸다는 것. 게다가 영어 라틴어 용어 등 등 적응을 유독 힘들게 한다. 무조건 외어야 하는 해부학 용어 등은 왕성한 의욕에 비해 무기력해진(?) 암기력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24년 전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별도로 외운다는 것 또한 쉽지 않아 젊은 학생들과 경쟁하기에 힘겹다며 엄살을 떤다.
“북한 의과대학내 7년 과정의 동의학부와 양의학부가 있고, 약학대학은 6년제의 한약과 양약부가 있어요. 또 의학전문학부를 졸업하면 시골에서는 의사행세를 하지만 큰 병원에서는 간호사로 활동하게 되죠. 하지만 이들 역시 통신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의과대학 졸업자로 쳐(인정해)줍니다.”
북한에서 동의사는 환자들에게 양방치료도 할 수 있지만 서의사들은 동의학으로 치료를 할 수 없다. 이는 국가의 동의약 우선 정책 때문이며 남한과 차이가 있다. 이같은 북한과의 의료체계 차이는 그에게도 편입이냐 자격시험을 주장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북한에서 의대를 나오고 임상의사까지 지낸 사람이 다시 입학을 해서 공부한다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변에서도 자격시험을 부여해야 한다며 국회 청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등 많은 권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한의학 서적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좋을 듯 해 그만 두고 편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같은 선택과정에서 탈북자들의 시선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오랜 생각 끝에 미래의 자신을 위해 더 투자해야 한다는 결심은 지금 생각해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만일 자격시험이 주어지더라도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설사 합격했다 하더라도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웠다는 것. 게다가 남한사회에서 인맥형성 뿐 아니라 학술활동이나 의사자격시험 과정에서 받을 눈총 등을 감안할 때 그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현재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은 등록금이다. 학교의 배려로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지만 앞으로 4년간의 대학 등록금 부담이 녹녹치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 고대 대학원을 합격하고도 한 학기에 480만원하는 등록금을 투자하기엔 너무 벅차 포기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열심히 적응하며 준비과정을 거치는 게 중요하다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인다.
“북한에 의료기기나 약품을 보내고 싶어요. 청진병원 근무 당시 링겔이 없어 어린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절망에 빠져 엉엉 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들에게 진 빛을 조금이라고 갚기 위해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김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같은 과 여학생들과 스터디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에게 ‘결혼은 언제 할꺼냐’고 묻자, 혼자생활이 익숙하고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단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길 때 인연이 닿으면 그 때 가서 생각하겠다고…. 봄 햇살이 따사롭게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