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한약을 식품으로 판매한 한약사 ‘철퇴’
한약사 A씨 “갈근탕 원료, 식품공전에 수록됐으니 위법 아니야”
재판부 “효능·임의조제 방식 등 한약 해당…약사법 위반” 유죄
[편집자주] 대한한의사협회(회장 홍주의)가 최근 불법의료대책위원회 및 시도지부 불법의료단속 실무자 합동간담회를 개최하고 불법의료 단속 활성화를 위한 대응 시스템 구축 마련에 나섰다.
이 간담회에서는 최근 성행하고 있는 무면허의료업자의 불법의료행위 주요 유형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와 관련한 판례를 서로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에 본란에서는 불법의료행위 관련 유형별 판례를 통해 무면허의료업자의 대표적인 불법의료행위에 대하여 소개한다.
한약사 A씨는 지난 2019년 2월 의약품 판매의 필수적 절차인 대면 상담 없이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고객과 상담한 후 다이어트 한약 15일분(30포)을 팔다 적발됐다.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약국이나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선 안 된다는 약사법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A씨는 “다이어트 한약으로 판매한 갈근탕은 식품공전에 수록된 식품의 원료들로 제조한 것이므로 식품에 해당하고, 따라서 식품을 판매한 이상 이 공소사실은 무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약사법 제50조 제1항의 입법취지, 목적, 타 직역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할 때 유독 한약사에 대해서만 의약품의 택배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및 공정거래법 등에 반할 뿐만 아니라 택배판매는 소비자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효 있다면 모두 약사법 규제 대상”
A씨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피고인이 판매한 한약은 약사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의약품에 해당한다”며 “피고인이 이를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판매한 것임이 인정되는 이상 유죄로 인정된다”며 피고인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과거 판례(대법원 1998.2.13. 선고 95도2925 판결, 대법원 2004.1.15. 선고 2001도1429 등)를 예로 들며 “어떠한 효능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 성분, 형상(용기, 포장, 의장 등), 명칭, 표시된 사용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한 눈에 식품으로 인식되는 것을 제외하고 해당 상품이 약효가 있다고 표방한 경우 모두 의약품으로 보아 약사법의 규제대상이 된다”고 봤다.
또한 한약의 목적으로 사용되면서 약효가 있다고 표방한 경우 이를 약사법의 규제대상인 의약품에 해당한다고 제시했다(대법원 1996.2.9. 선고 95도1635 판결 등).
이에 재판부는 “주원료와 부원료 거의 대부분이 식품의 기준 및 규격에서 정하고 있는 식품의 원료에 해당함은 인정된다”면서도 “식품의 원료를 재료로 새로이 만들어진 이 사건 갈근탕의 의약품 해당 여부는 약사법에 따라 다시 판단돼야 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가 처방한 갈근탕 처방 구성에 부작용에 따른 위험성이나 식품공전에 해당하지 않는 원료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해당 처방에는 파기, 파혈하는 약재와 염증치료 약물 등이 포함돼 있어 생리통, 생리과다, 자궁근종 등 부인과 질환의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처방”이라며 “한의사의 전문적 진료에 따르지 않고 투약될 경우 생식기 출혈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이 사건 갈근탕의 재료 중 ‘홍화’의 경우 현행 식품의 기준 및 규격의 원료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며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식품의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갈근탕을 당연히 식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A씨가 갈근탕 성분 그대로 약국제제 제조품목으로 신고하면서 용법, 용량 등을 정했을 뿐만 아니라 혈액순환개선, 두통, 부종 등을 기재함으로써 약효가 있음을 표방한 점도 꼬집었다.
특히 재판부는 A씨가 한의사의 전문적인 진료에 따라 조제하는 방식으로 해당 갈근탕을 소비자에게 판매한 점도 유죄 판결의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A씨가 구매자에게 보낸 카카오톡의 내용을 보면 의약품을 10단계로 나눠 각각의 사람마다 그에 맞는 처방을 할 수 있다고 했다”며 “실제 구매자 또한 자신의 상황에 맞게 4단계 약을 구매했던 점을 비춰 볼 때 이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단순 건강기능식품이라기 보다는 한의사 내지 한약사의 전문적인 처방에 따라 조제되는 의약품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제 방식의 판매도 의약품 뒷받침”
한약사에 대해서만 유독 택배판매가 금지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및 공정거래법에 반한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정면 반박했다.
재판부는 “A씨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약국을 방문해 약사에 의해 약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그에 따라 얼마든지 택배 등의 방법으로 이를 수행할 수 있고, 현행 법해석 하에도 위법하지 않다는 선례도 있다”면서도 “A씨는 그와 같은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택배판매를 했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거나 자유로운 거래행위를 제한하는 불공정한 행위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A씨가 판매한 한약이 의약품에 해당하는 이상 약국 외의 판매가 허용되지 않음은 약사법의 취지 및 규정상 명백하다”면서 “이는 약품의 관리 및 국민의 건강과 관련해 약사에 의한 엄격한 약품 판매 체계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며,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약사의 지도 내지 도움을 받아 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무허가 약품 판매의 오남용을 막고자 함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택배판매를 금지하는 약사법의 취지는 사회적, 공익적 법익의 보호를 위한 것이지 개별 의약품의 구매자인 개인의 보호가 아니다”며 “개별 구매자의 승낙이 있었음을 주장하는 것은 A씨 측의 독자적 주장에 불과하므로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