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만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교수도 강의 평가라는 학생들의 성적표를 받는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준비하고 강의하고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한 뒤 받아보는 학생들의 평가는 때로는 예상보다 냉정하다. “설명이 이해하기 어렵다”, “시험 범위가 너무 많다”, “수업 방식이 지루하다”는 멘트 정도는 그래도 받아들일 만하다. 때로는 수업 자체보다 교수의 말투나 성격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평가가 적혀 있기도 하고, 정성을 들였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오히려 가장 큰 불만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낮은 성적이나 교수자에 대한 본인 화풀이의 도구로 강의 평가를 악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어려운 내용을 충실하게 가르치거나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을 요구한 수업보다, 부담이 적고 성적을 잘 주는 수업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강의 평가는 학생들의 ‘인기 투표’가 되어 버릴 것이라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그런 사례들을 보면, 교수들 사이에서 강의 평가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대학의 질 관리 보고서…오류의 가능성 존재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교수 역시 사람이다. 한 학기 동안 애써 준비한 수업에 대해 날것 그대로의 비판을 접하고도 아무렇지 않기는 어렵다. 때로는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다고 하니 다음에는 알아서 공부하게 해야겠다”, “시험이 어렵다고 하니 오히려 제대로 공부하도록 더 엄격하게 하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학생의 피드백을 통해 수업을 개선하자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교수와 학생 사이의 거리를 더 벌리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지난 학기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담은 교육과정 질 관리 보고서를 최근에 작성하면서 나 역시 이 문제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우리 대학의 질 관리 보고서는 학교에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일반적인 강의 평가와는 조금 다르다. 각 학년의 학생 가운데 일부를 선정하여 인터뷰를 진행한다.
지난 학기 각 교과의 수업에 대해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수업의 양과 속도는 적절했는지, 시험과 수업 내용은 잘 연결되어 있었는지 등을 학생들의 언어로 듣는다. 숫자 하나로 표시되는 강의 평가에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이 과정에서 나온다.
물론 여기에도 명확한 한계가 있다. 소수의 학생이 인터뷰에 참여하기 때문에 듣게 되는 가장 흔한 이야기는 “몇몇 학생의 의견으로 전체 강의가 평가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것이다. 열심히 참여했던 대다수 학생은 별말 없이 지나가고, 특별히 불만이 있었던 학생 몇 명의 목소리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합리적인 의심이다. 모든 학생을 인터뷰할 수 없기에 본의 아니게 인터뷰 참여학생이 해당 학년의 대표성을 띠게 되는 오류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수업을 듣고도 학생마다 경험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매우 유익했던 수업 방식이 다른 학생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몇 명의 학생이 그렇게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수업에는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대표성이 부족한 의견과 가치가 없는 의견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명의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모든 환자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증상을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 한 학생의 경험이 전체 학생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해서 들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판정’으로 받아들이느냐, ‘정보’로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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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원하는 것과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 구별
예를 들어 “강의 내용이 너무 많다”는 학생의 말만으로 강의량을 당장 줄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러 학생에게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면 수업 목표에 비해 내용이 과도하지 않은지 살펴볼 이유는 생긴다.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는 불만 역시 곧바로 시험의 난이도를 낮추라는 요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수업에서 강조한 내용과 평가 내용이 일치했는지, 학생들이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학습해야 하는지 충분히 안내되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교육과정 질 관리 보고서의 활용법이 나온다. 질 관리 보고서에서의 학생 인터뷰는 학생이 교수에게 점수를 주는 과정이 아니다. 학생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수업을 편하게 만드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교수자가 자신의 수업을 다른 시선으로 한 번 바라볼 기회를 만드는 과정이다. 강의실 앞에 서 있는 교수는 자신이 무엇을 설명했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학생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교수에게는 명료했던 설명이 학생에게는 갑작스러운 비약이었을 수 있고, 충분히 안내했다고 생각했던 시험 기준이 학생에게는 모호했을 수도 있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르친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배운 사람의 경험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학생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질 관리 보고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의견을 맥락 없이 옮겨 놓으면 교수에게는 비난의 목록으로 읽히기 쉽다. 소수의 강한 의견인지, 여러 학생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난 경험인지 구분해야 하고, 학생이 원하는 것과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도 구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점과 개선이 필요한 점을 함께 살펴야 한다. 피드백은 상처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에게도 책임은 있다. 강의 평가는 소비자가 서비스에 별점을 매기는 일이 아니다. “재미없다”, “시험이 어렵다”, “과제가 많다”에서 끝나는 평가는 수업을 바꾸기 어렵다.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꼈고, 왜 그렇게 느꼈으며, 어떻게 바뀌면 학습에 도움이 될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피드백을 주는 능력 역시 학생이 배워야 할 교육의 한 부분이다.
질 관리의 목적은 더 나은 수업을 만드는 것
결국 우리에게는 학생의 목소리를 얼마나 많이 모았느냐보다 그 목소리를 어떻게 읽고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수업에는 완성본이 없다. 같은 내용의 강의라도 학생이 달라지고 교육환경이 변하면 다시 조정해야 한다.
그래서 질 관리 보고서는 한 학기 수업에 내려지는 판결문보다는 다음 수업을 위한 기록에 가까워야 한다. 학생의 한마디가 곧 강의의 진실은 아니다. 교수자의 판단 역시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시선이 만났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부분이 드러난다.
학생의 평가는 교수에게 주는 점수가 아니라 수업에 대한 하나의 관찰이어야 하고, 교수의 역할은 그 관찰에 상처받거나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질 관리의 목적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평가를 받는 수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난 학기보다 조금 나은 수업을 만드는 것. 아마도 우리가 매 학기 학생들에게 다시 의견을 묻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