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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06일 (월)

‘살리는 치료’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살리는 치료’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한의학 웰빙 & 웰다잉 49
호스피스라는 공간은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가장 압축적으로 채워나가는 서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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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처음 호스피스 입원 병동을 만든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첫마디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아휴... 병원이면 응당 살리는 치료를 해야 할 텐데...”


살리는 치료란 무엇일까. 입원형 호스피스는 암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니, 우선 암 환자에 한해서 살리는 치료란 무엇일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환자 입장에서 살리는 치료란 당연히 암이 없어지는 치료를 의미할 것이다. 


암이 완전히 없어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술이 가능해야 할 것이며, 재발이 없어야 될 것이고, 이론적으로 1~2기의 암일 것이다. 대략적인 통계상으로 국내의 암 환자 중 1~2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약 75% 정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다른 25%의 암 환자들에게 살리는 치료란 무엇일까. 항암, 방사선 치료를 포함하는 표준 암 치료의 목적 자체가 의학적으로는 1)잔존암 소실, 2)생존기간 연장(잔존암이 있더라도 생존기간은 연장될 수 있음), 3)증상 완화(생존기간 연장은 되지 않더라도 증상은 완화될 수 있음), 4)삶의 질 완화 및 임종까지 편안한 상태(증상 완화와 편안한·존엄한 임종의 의미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음)의 네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남은 25%의 암 환자들은 암이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는 사람들이니 살리는 치료는 불가하다는 판정이 났다고 간주해야 되는 걸까? 단지 암세포의 소실만이 그 단어의 전부라면 말이다.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의 존재 가치


호스피스 병동에 암 환자가 입원하기 위해서는 입원 ‘전’에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불가하며, 생존기간은 n개월 이내로 예상되어, 호스피스 의료기관에 의뢰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주치의의 소견서이다. 


이 소견서를 들고 입원 수속을 밟는 환자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을 때, 환자의 이미지가 보통 어떻게 떠오를까? 아마 일단 혼자 힘으로는 못 서있을 것이며, 주렁주렁 관이 달려 있을 것이고, 팔다리를 포함한 몸 여기저기는 부어있고 머리카락은 듬성듬성한, 그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사실상 수개월의 여명 선고를 받으신 분들 중에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환자는 약 60~70%에 불과하다. 일단 지금 우리 병원에서 모시고 있는 분들만 해도 50%가 본인 힘으로 잘 걸어 다니시는 분들이다. 


이 분들은, 잘 걸어 다님에도 불구하고, 그 뜻 모를 ‘살리는’ 치료가 불가능한 걸까? 좀 더 나아가서 언젠가 한 의대 교수님이 던지셨던 질문처럼, 호스피스에서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의 존재 가치를 재고해봐야 되는 거 아닐까.

 

김은혜 교수님2.jpg

 


환자들이 길어 올리는 ‘희망’의 형태


제도적인 면을 살펴보면, 호스피스·완화의료 의료기관으로 지정받게 될 때 대부분의 수가가 ‘포괄수가제’에 귀속된다. 어떤 치료를 얼마만큼 하든 환자에게 청구되는 총 금액이 동일하게 묶여 있는 구조다. 


물론 수가가 조금 더 보완된다면 현장에서 한층 더 양질의 진료 여건이 마련되겠지만, 제도가 이토록 엄격한 틀을 유지하는 데에는 나름의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호스피스라는 공간에서만큼은 환자에게 고통을 연장할 뿐인 불필요한 소생 목적의 치료를 지양하고, 온전히 환자의 편안함과 남은 삶의 질에 집중하라는 무언의 메시지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제도적 틀 안에서, 일반적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암 환자의 평균 재원 기간은 2주 내외로 알려져 있다. 2주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턱없이 짧고, 누군가의 생을 정리하기에는 야속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다.


제도가 그어놓은 선과 평균 2주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우리는 매일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환자들을 마주한다. 완치라는 명확한 목표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이 짧은 여정 속에서, 환자들이 길어 올리는 ‘희망’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그것은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상을 마주하는 기쁨일 수도 있고, 미뤄두었던 가족과의 응어리를 푸는 대화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저 고통 없는 고요한 밤을 보내는 일상일 수도 있다.


저 마다의 언어로 구상해 나가는 ‘희망’


결국 호스피스라는 공간은 삶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무력하게 대기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짧은 2주일의 시간 동안,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가장 압축적으로 채워나가는 서사의 공간에 가깝다.


‘살리는 치료’가 부재한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매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존엄을 목격한다. ‘살리는 치료’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감히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완치라는 명사 뒤에 가려져 있던 그 수많은 여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 뜻 모를 단어에 어떤 숨을 불어넣고 저마다의 언어로 희망을 구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결국 이 짧고도 긴 시간을 채워가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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