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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09일 (화)

산불은 숲만 태우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흔드는 기후재난

산불은 숲만 태우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흔드는 기후재난

한의의료, 지속가능한 재난의료 자원으로 자리매김돼야
대구한의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 김상호 부교수

김상호 기고문 산불1.jpg


[한의신문] 2025년 3월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북부 여러 지역으로 번지며, 5개 시·군에서 사망 26명, 부상 31명 등 57명의 사상자를 남겼다.

 

산림 피해 면적 역시 국내 산불 피해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보도될 만큼 유례없는 대형 재난이었다. 

 

전체 이재민이 5500명 가까이 발생한 가운데, 2026년 2월 말 기준 4010명이 여전히 임시 거주 상태였고 상당수는 임시 주택이나 임대주택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불 발생 약 11개월 뒤 피해 주민 400명을 평가한 결과 34.25%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처럼 산불은 삶의 터전과 건강, 공동체, 마음의 안전감까지 오랫동안 흔드는 복합재난이다.

 

기후위기가 키우는 초대형 산불

 

경북 산불은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2023년 캐나다 산불은 관측 사상 최악의 규모였고, 그 연기는 국경을 넘어 미국 뉴욕까지 확산됐다. 

 

같은 해 하와이 마우이 산불은 무려 102명의 사망자와 약 1만2000명의 대피·실향 주민을 발생시켰다.

 

기후변화로 인한 평균기온 상승, 장기 가뭄, 건조한 대기는 산불 발생 위험을 높이고, 강풍은 확산 속도와 피해 범위를 키운다. 

 

유엔환경계획과 노르웨이 소재 환경정보기관 GRID-Arendal은 기후변화와 토지이용 변화로 인해 극단적 산불이 2050년까지 30%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제 대형 산불은 기후위기 시대에 일상적인 환경재난이 될 수도 있다.

 

산불피해주민에 대한 영덕군 의료봉사 중 만난 어르신이 산불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png
산불피해주민에 대한 영덕군 의료봉사 중 만난 어르신이 산불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몸과 마음을 위협하는 산불의 후유증

 

산불 연기에는 다양한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초미세먼지(PM2.5)는 폐 깊숙이 침투해 기도 염증과 전신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최신 연구에서도 산불 연기 노출은 기존 호흡기질환을 악화시키고 응급실 방문·입원 등 의료 이용 증가와 관련된다고 보고된다. 

 

또한 심근경색을 포함한 심혈관 사건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근거도 축적되고 있다.

 

게다가 산불 연기는 바람을 타고 이동해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도시 주민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산불로 집을 잃거나 대피소 생활을 하고, 생계 중단과 공동체 붕괴를 경험한 주민들은 불안, 우울, 불면, 악몽, 외상후스트레스 증상을 오래 겪을 수 있으며, 이러한 정신건강 문제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

 

특히 노인, 소아, 임산부, 심폐질환자, 장애인, 독거 가구, 경제적 취약계층은 산불 연기 노출과 대피소 생활, 의료 접근성 저하에 더 취약하다. 

 

산불은 몸과 마음, 그리고 공동체의 회복력 전체를 뒤흔드는 재난이다.

 

재난 현장에서 함께한 한의계

 

경북 산불 당시 한의계는 이재민의 회복을 위해 신속하게 대응했다. 

 

대한한의사협회와 경북한의사회는 산불 발생 직후 안동실내체육관에 한의과 진료실을 설치했고, 이후 이재민들의 수요에 따라 안동 지역 학교와 의성실내체육관, 영덕 국민체육센터, 영덕 청소년해양수련원, 청송 진보문화체육센터 등으로 한의진료실을 확대 운영했다. 

 

동시에 8곳의 진료실이 운영된 것은 이례적인 규모였다.

 

한의진료실에서는 대피 생활로 인한 근골격계 통증, 피로, 불면, 소화불량, 불안 등을 호소하는 주민들에게 침, 뜸, 부항, 수기 치료, 한약 처방, 한방파스 제공, 건강상담 등을 시행했다. 

 

대구한의대학교 의료원과 한의학과 교수진 및 재학생들도 영덕군 산불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한의진료를 시행했으며, 세대통합지원센터와 함께 이재민 구호활동도 병행했다.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과 한방병원도 영덕 지역 이재민을 위한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또한 전국 여러 지역 한의사회는 성금과 의료물품을 지원하며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탰다. 

 

이처럼 한의학은 산불 재난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았으며 신속하고 이재민들의 고통에 직접 대응했다.

 

김상호 기고문 산불2.jpg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기후재난 시대, 한의학의 새로운 과제

 

기후위기 시대에 산불 재난은 다시 반복될 수 있기에, 향후 한의계의 대응도 중요하다.

 

산불 피해자는 주거 상실과 대피소 생활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으므로, 일시적인 외상과 통증만 볼 것이 아니라 주거와 생계 상황까지 고려하는 포괄적 접근과 장기적인 의료 지원이 요구된다. 

 

특히 고령자, 만성질환자, 독거 가구처럼 취약성이 높은 환자에서는 산불 이후 호흡기 증상, 근골격계 통증, 피로, 불면, 소화기 증상, 정서적 불안을 장기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재택의료에 강점을 가진 한의학이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한의진료가 재난 이후 통증, 수면, 불안, 피로, 삶의 질 회복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실제 현장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 

 

단순 봉사활동의 기록을 넘어, 재난 한의진료의 대상자 특성, 주요 증상, 치료 내용, 안전성, 만족도, 장기 경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난 발생 전부터 훈련되고 계획된 상시 대응 체계와 인력이 준비되어야 한다.

 

향후 산불과 같은 기후재난 발생 시 한의사가 공공 재난의료 체계 안에서 보다 신속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표준 진료 프로토콜, 현장 파견 체계, 의약품·의료물품 지원 체계, 정신건강 연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한의계는 재난 발생 후 일시적 지원 수준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의 지역사회 건강 회복을 담당하는 지속가능한 재난의료 자원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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