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몸이 기후다』 저자
하늘, 인간, 본초
인간과 본초는 연결 가능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에 오장이 있다면 본초에는 오미가 있다. 필자는, 앞 문장을 『내경』의 「음양응상대론」을 생각하며 적어보았다. “하늘에 사시오행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오장이 있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1).
이 문장을 본초와 연결해 본다면, ‘하늘에 사시오행이 있고, 인간에 오장이 있고, 본초에는 오미가 있다’라고 표현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음양응상대론」은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본초를 논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남방생열(南方生熱) 열생화(熱生火) 화생고(火生苦) 고생심(苦生心)” 즉, “남방은 열을 생하고, 열은 화를 생하고, 화는 고미를 생하고, 고미는 심을 생한다”라고 하며, 하늘의 현상[남방생열]과 인간의 오장과[고생심] 본초의 오미[화생고]를 연결하여 말하고 있다.
남방에서 생기는 열뿐만 아니라, 동방에서 생기는 바람, 중앙에서 생기는 습기, 서방에서 생기는 건조함, 북방에서 생기는 한기가 고미, 산미, 감미, 신미, 함미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인간의 심, 간, 비, 폐, 신과도 이어져 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오기, 오미, 오장은 모두 연결될 가능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 인간, 본초는 관계적 존재로 존재한다. 이것은 연결성을 강조하는 동아시아의 존재 이해의 방식이다. 개별자를 강조하는 존재 이해의 방식과, 이 방식은 차이가 난다. 경계 지어져 있고, 그 성질을 알 수 있는 개별자들을 먼저 각각 특정하고, 그 이후에 그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방식은, 관계를 중심에 두고 존재들을 이해하는 방식과 차이가 난다. 동아시아에서 존재들은 관계를 전제로 한 물(物)이다. 오기(五氣), 오미(五味), 오장(五臟)에서 공통의 접두사처럼 붙어 있는 “오”가 그 관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연결될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지만, 여기에 도식(圖式)이 선행하는 것은 아니다. 한의대 예과에서 배우는 오행귀류도, 오행귀류표가 먼저 있고, 오기, 오미, 오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의 존재들의 연결성을 담아내다 보니 오행귀류표가 되었을 뿐이다. 한의대 교육에서 오행귀류가 암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오행귀류표가 먼저고, 봄여름장하가을겨울 오시(五時)가 나중일 수는 없다. 꽃피고, 염천인, 또한 비 내리고, 거두어들이고, 그리고 고요했다가 다시 꽃피는 생동과 흐름이 먼저다. 귀류표 안의 용어들도, 그 언어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실제 세계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과 상황에 관한 것이다.
세계의 존재들과 상황들에 연결의 가능성이 전제되어있는 것은 생명성 때문이다. 생명적인 것들로 세계는 가득 차 있어서,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서 다르게 표현되는 다섯의 이름들은 생명의 흐름을 공유하고 있어서, 서로 연결될 가능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하늘에 한서조습풍이 있고, 본초에 산고삼신함이 있고, 오장에 간신비폐신이 있어서, 이들 사이 연결이 배태되어 있는 것은 모두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적인 것들이 공유하는 내용이 있어서, 현현하는 상황은 각각의 조건에 따라 다양하지만, 결국 다섯의 양태로 돌아와서[歸] 그 방향성을 공유한 무리[類]를 이룰 수 있다. 그리하여 동아시아에서 만물들은 생명성을 공유하는 존재들이고, 이들 존재들은 그 생명성의 리듬을 공유하며 그물망을 이룬다.
인위생열(人爲生熱)
기후위기 시대에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본초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내경』에서 말하는 남방생열의 열은 지금의 열과 다르다. 남방생열은 방위적이고, 계절적인 열이라면, 지금 기후위기의 열은 남방생열이라는 표현을 무색하게 한다. 기후위기의 열기는 인간의 행위가 가해진 열이다. 남방생열이 아니라 “인위생열”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즉, 인간의 행위가 열을 만든다고 해야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 시대가 기후위기 시대이다.
“인위생열”은 지금의 기후위기 상황을 의미 있게 드러낸다. 인위는 인간[人]의 행위[爲]이면서, 또한 자연적이지 않은 인위(人爲)로도 풀어볼 수 있다. 자연스러움에 역하는 것들이 실은 문명이고 도시이다. 중력에 거슬러 비행기를 띄운다. 또한, 고층건물을 건설한다. 중력과 마찰력, 공기저항을 거슬러는 자동차를 대량 생산한다. 그 자동차가 시속 120km로 달린다. 열섬 현상의 도시에서 에어컨을 24시간 가동한다.
근대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 인위가 열을 생한다는 것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인위가 극에 달해서, 그 인위가 기후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그 인위가 가속화되고 일상화되어 그것을 멈추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기후위기에 대해 논하는 학자들 중에는 인류세를 자본세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간의 행위가(즉, 인위가) 지질학적 시대마저 변하게 하는 것이 인류세이다. 인위적 활동에 의해 많은 배출물을 쏟아내고,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닭뼈가 하늘에, 바다에, 땅에 부유하고 묻히는 것이 인류세이다. 암모나이트, 공룡이 지구의 역사에 흔적을 남기듯이, 인류세는 인간의 인위적 활동이 지구에 흔적을 남기는 시대이다. 자본세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흔적을 남기게 하는 동력이 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고 말한다.
지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위생열은 그것이 이미 과도한 인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과도하게 열을 내는 주된 활동이 인간에서 온 것이고, 그것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욕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 욕망을 지속하고 심화하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계속해서, 그리고 갈수록 더 많은 열을 만들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해진다. 자본세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의와 같이, 여기서 멈추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속도를 줄이는 것도 어렵게 하는, 계속해서 인위의 열을 생하는 지금을 자본세라고 부를만하다. 탈성장에 대한 논의도 있고, GNP(Gross National Product)가 아니라 GNH(Gross National Happiness)가 잘 사는 것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전한 이 인위적 생열(生熱)의 체계를 저속화, 연착륙하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본초의 위기와 인간의 위기
인위생열의 인위는, 순서(順序)와 정도(程度)의 순리를 깨뜨리고 있다. 인위생열은 남방생열과 합쳐져 심각한 여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록경신의 여름은 이제 “경신”이라는 말을 기후 논의에서 사어(死語)로 만들고 있다. 재작년의 더위 기록을 작년 여름이 경신하고, 작년 여름 기록을 올해 여름이 경신하는 상황에서, 기록경신은 일상이 되어, 경신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의미해지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단지 여름만의 문제는 아니고 이제는 동방생풍, 중앙생습, 서방생조, 북방생한에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강력 태풍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고, 일 년 치 강우를 쏟아붓는 집중호우, 심각하고 장기적인 가뭄, 때아닌 한기 등에 두루두루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천기의 변화는 인간에게도 본초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인간과 본초가 연결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어려움이 본초의 어려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 시대 인간 몸의 고통은, 기후위기 시대 본초의 고통이기도 하다. 인삼은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본초다. 열에 약한 인삼의 성정이 기록경신의 여름으로 줄지어져 있는 고온의 기후위기 시대에 치명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와 함께 인삼 산지가 계속해서 북상하고 있다. 2090년에는 남한에서 인삼 재배가 가능한 땅이 5% 정도밖에 남지 않을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2). 이것은 인삼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재배 지역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간이 지금 여름에 힘들어 하듯이, 인삼도 힘들어 한다. 제대로 자라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
본초의 위기는 다름 아닌 인간의 위기이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본초의 위기”II에서 계속)
1)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 중 “天有四時五行...人有五藏...” 참조.
2) 연합뉴스 “온난화로 인삼 재배 가능 면적 2090년엔 국토의 5%뿐” 참조. https://www.yna.co.kr/view/AKR20160725060700030